조용한 사무실에 전화벨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보통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놓는 것이 암묵적인 사무실 매너였다. 끊어지지 않는 전화벨 소리에 슬슬 짜증이 밀려올 때쯤, 전화벨 소리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옆 동료가 알려줬다. 나의 전화벨 소리는 ‘펭수의 신이나’였는데, 깜짝 놀라 받아 본 전화는 영상통화였다. 종수는 상기된 얼굴로 인사도 없이 빠른 수어를 했다. 도저히 수어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영상통화를 끝냈다.
순댓국집에서 만난 종수는 음식이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술을 급하게 마시는 모양을 보니 속이 많이 상했나 보다. 나는 슬슬 걱정됐다. 종수의 고민보다, 술에 취한 종수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집 앞이라도 대리운전 할 거지? 음주운전 벌금이 많이 올랐어.”
“아들이 열 시까지 온다고 했다.”
치사하지만 대학생 아들이 온다는 이야기에 한숨 돌리며 우리는 이야기했다. 종수 회사에 물량이 줄어 생산직 직원들이 돌아가며 한 달씩 쉬는, 무급휴직을 결정했다. 문제는 첫 무급휴직자 대상이 청인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농아인이었다. 며칠 전부터 무급휴직 소문은 있었지만, 누구도 농아인들에게 무급휴직에 관하여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오늘 무급휴직자 발표를 보고 종수는 흥분해서 자제를 쏟아버리고, 기계를 발로 차고, 흔히 말하는 깽판을 쳤다. 종수는 회사가 한 달 만에 정상 물량으로 돌아오면, 무급휴직자는 농아인만 될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다. 종수는 한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면 생활에 문제가 많다며 걱정과 짜증을 목에 소주를 털어 넣는 것으로 풀었다. 내일 점심시간에 농아인끼리 모여 회사에 항의하기로 했다며, 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내가 가서 다 부셔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종수를 달랬다. 그제야 종수는 안심이 됐는지 스르르 쓰러져 잠이 들었다. 30분쯤 기다리니 종수 아들이 왔다.
“아들, 오랜만이네. 아저씨 기억나?”
“죄송합니다.”
“너 어릴 때 내가 볼 때마다 만 원씩 용돈 줬는데 섭섭하다.”
“용돈 만 원만 주시면 기억이 날 것 같은데요.”
“대학생인데 만원은 적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십만 원은 줘야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현금이 없다. 오만 원만 줄게.”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제 기억이 선명하게 납니다.”
“들어보니까 너희 아버지가 오늘 회사에서 화가 나는 일이 많았어. 너희 아버지니까 참았지, 나 같으면 회사에 불냈어.”
“요즘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셔서 너무 힘들어요.”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할까? 옛날에 너희 아버지 차를 탔지. 너희 아버지가 아들에게 동요를 들려주고 싶은데 볼륨 조절이 안 된다고 나에게 부탁하는 거야. 나는 아이가 자면 5, 깨어 있으면 10, 신나면 15에 볼륨을 맞추라고 알려줬지. 그때 나온 동요가 곰 세 마리였어. 너 어릴 때 잘 부르던 동요야. 기억나?”
“당연히 기억 안 나죠.”
“나도 코다잖아. 너 힘든 것 내가 조금은 알아. 너희 부모는 청인 부모보다 열 곱절은 힘들게 너를 키웠어. 기억 안 나겠지만 그것은 사실이야. 그러니까 너도 엄마, 아빠에게 청인들 자식보다 열 곱절은 효도해야 해. 나는 그러지 못해서 지금도 후회해. 그래도 술에 취한 아버지 모시러 오는 거 보니까, 너는 나처럼 후회만 하지는 않겠다. 마음에 들어. 아버지 힘들겠다. 빨리 모시고 가.”
곰 세 마리를 흥얼거리며 아버지를 업고 가는 종수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와 몇 시간이나 이야기해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 10시간도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혼자서 큰 것처럼, 건방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줬습니다. 내가 아버지 되니 이제야 알았네요. 잘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