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의 정체성

by 윤희웅

'코다'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아직은 많지 않을 듯하다. '코다'라는 말보다 '농인'이나 '청각장애인'이 비교적 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에서 앞 글자를 따와 만든 단어로, 청각장애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을 뜻한다. 음성언어를 주로 주고받는 '청인'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농인, 혹은 코다는 다소 낯선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다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면서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코다라는 정체성은 어느 정도는 환경을 통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부모의 농은 그들을 사회에서 분리한다. 그런 부모들에게서 농문화와 수어를 배우고 더불어 음성언어 세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두 세계 '사이를' 횡단한다. 어떤 이들은 코다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양쪽 모두에 속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둘 다이면서 둘 다 아니다." - 우리는 코다입니다, 374쪽 중에서


코다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들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도 가족을 돌보는 처지에 자주 놓인다는 것이었다. 황 씨는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아동·청소년’을 뜻하는 영케어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보다 코다 아동·청소년을 더 잘 설명할 말이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 코다 실제 조사 결과서 중


나는 코다였다. 코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 코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 그리고 코다를 연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을 무렵, 동창 찾기 사이트를 통해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시기가 있었다. 나에게도 초등학교 동창들의 연락이 왔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동안 나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봤다. 몇 명의 친구의 이름은 기억났다. 동창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나를 기억하고, 소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렸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상실증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기억을 지웠다. 어떤 기억을 지웠는지, 언제 지웠는지, 왜 지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는 어린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을 지우다 보면 그 과정에서 기억 자체가 변하기도 했다. 물론 처음부터 자기 중심성 등으로 인해 편향된 기억을 했다. 또는 기억의 일부가 완전히 바뀌기도 했다. 기억을 지우다 보면 더 이상 내 문제로 느껴지지 않고 바로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어린 시절은 나쁜 기억이었으며, 남의 이야기였다.

코다라는 단어에 관심이 생겼고, 코다를 연구하는 그들은 코다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만든 책을 읽었으며, 우연히 이길 보라 씨도 만났다. 그와 코다 이야기를 나누고, 코다 실태조사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기꺼이 실태조사 면접에 참여했다. 면접자 11명 중 50대 남자가 나였다. 내가 면접에 참여한 이유는 코다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코다의 정체성이 궁금했다. 그렇다. 나는 내가 궁금했다. 면접은 3시간이나 이어졌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코다라는 단어로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럼, 선생님이 생각하는 코다의 정체성은 뭘까요?”

“며칠 전 농아인협회 행사에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죠.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넘어질 듯 뒤뚱거리며 걸어왔어요. 나를 툭 치며 검지를 코 오른쪽에 댔다가 떼며 검지를 접고 새끼손가락을 폈어요. '엄마'라는 뜻이었죠. 나는 그 아이를 안고 엄마를 찾으러 다녔어요. 얼마 후 엄마가 달려왔죠. 아이는 엄마를 만나자, 소리 내어 울었죠. 이상하죠? 아이는 엄마를 잊어버렸음에도 왜 울지 않았을까요? 그 어린아이는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코다의 정체성이요? 제가 생각하는 코다의 정체성은 생존입니다. 살기 위해서 수화를 배우고, 살기 위해서 경계선에 섰고, 살기 위해서 통역을 했죠.”

내 주위에는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농인, 이주 여성, 외국인 노동자, 소수자들, 그들은 그들과 다른 친구가 가끔 필요했다. 나는 가끔 생존에 지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재미나게 놀고 있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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