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우야

by 윤희웅

정우성, 신현빈 주연의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요즘 내가 흠뻑 빠져있는 드라마다. 정우성의 극 중 이름은 차진우였다. 초등학교 학기 초,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차진우는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본인 소개를 위해 올라간 자리에서 진우라는 이름을 디노라고 발음했다. 진우가 디노로 들리는 순간 아이들은 수군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차진우의 두 번째 이름, 디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힘껏 높여 갈라진 소리로 나를 불렀다. 히우야. 엄마에게 히우야는 내 이름이었다. 엄마는 이제 막 말에 재미를 붙기 시작한 꽃보다 여린 일곱 살에 열병으로 고막이 녹아내리고 소리를 잃었다. 소리를 잃은 엄마는 조금씩 말도 잃어갔다. 엄마의 들리지 않는 소리는 보이는 소리가 되었다. 어린 나는 엄마와 수화로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다. 남들에게는 청각장애인이겠지만 나에겐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나의 엄마였을 뿐이었다.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이해 못 하는 말이 있어도, 아니 엄마가 내 말을 이해 못 해도 나는 수어가 아닌 말을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손을 잡고,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한 단어, 한 단어 띄엄띄엄 크게 말하는 나의 모습에 사람들은 오묘한 시선을 보냈다. 엄마는 대답 대신 눈짓으로, 때로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솔직히 엄마와 자식의 대화에서 그다지 수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응, 어 하는 소리와 간단한 몸짓이면 엄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역할이 모호해졌다. 숙명처럼 다가온 영케어러(Young Carer, 돌봄을 짊어진 아동)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보호받고 싶었으며, 보호받아 마땅한 어린아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의 시선이 상처가 되었을 무렵, 나는 엄마와 간단한 말조차 안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엄마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길렀다. 이름은 나비였지만 엄마는 나미라고 불렀다. 엄마는 이제 히우야 대신 나미를 불렀다. 나미만큼은 엄마를 배신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미를 부르면 어디에 있든지 바람처럼 다가와 고롱고롱, 골골 송 소리와 함께 부비부비를 했다. 배를 보여주며 엄마 곁에 누웠다. 나미는 엄마의 또 다른 자식이 되었다. 나미는 엄마를 위해 쥐를 잡아 방문 앞에 진열했다. 엄마의 애정에 대한 나미의 보답일 것이다. 나는 고양이만도 못한 자식이었다.


길을 걷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본다. 흔들리는 나무에서도, 세찬 바람 소리에서도, 달리는 차의 소음에서도,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에서도, 히우야가 들렸다. 어디선가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엄마를 찾아본다.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또는 밝게 웃으며 이제는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끝내 대답하지 못하는 나는 그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며 괜스레 눈물만 글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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