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사십에 수화를 배웠다.

by 윤희웅

20여 년 전, 30대 후반이었다. 턱관절부터 시작한 통증이 후두부로 옮겨간 지 오래되었다. 오른쪽 후두부가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다. 어느 날은 둔기로 때리듯이 아팠다. 또 어느 날은 식사를 못 할 정도로 턱관절이 아팠다. 통증은 간헐적으로 1분 남짓 찾아왔다. 통증의 빈도가 잦아질 무렵 끝내 나는 병원을 찾았다. 집 앞 병원에서 시작한 순례는 마침내 대학병원 두통 클리닉까지 왔다. 마침내 의사는 삼차 신경통이라 진단하였다. 삼차 신경통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뇌혈관이 압박되어 발생한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외상이 없다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남기며 설문지를 권했다. 설문지는 두꺼운 노트 한 권 분량이었다. 설문지는 앞에서 물어본 것을 중간에 또 물어보고, 뒤에서 또 물어보고, 여러 번 묻고 또 물었다. 마지막으로 의사와의 문진이 길게 이어졌다. 마침내 결과를 통보받는 날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선생님을 누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무의식이라는 말은 조금 무책임하게 들립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닌,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라고 하면 이해되십니까? 선생님은 일찍 결혼해서 자녀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치료 방법은 있습니까? 통증이 간헐 적에서, 수시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진통제를 처방하겠습니다. 그리고 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일기요?”

“일기를 쓰듯 아버지 이야기를 써보세요. 선생님 아버지 이야기도 좋고, 아버지인 선생님 이야기도 좋습니다. 아버지라는 화두로 일기를 쓰듯 글을 써보세요.”


어릴 적 교회를 다니며 기도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말하게 해 달라는 기도만 열심히 했다. 예수님은 장님도 눈뜨게 만들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신다는 데 말하는 것쯤은 어렵지않게 들어주실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기도를 했을까? 아버지, 어머니와 더 친밀한 소통을 하고 싶어서일까? 친구들 보기에 창피해서 그랬을까? 아버지, 어머니가 말하면 지금보다는 덜 가난해질 것 같아서일까? 나쁜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인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열 시가 넘는 시간, 나는 버스 안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아버지를 봤다. 지금의 나라면 버스에서 내려 아버지와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차비를 아끼려고 걷고 있는 아버지는 나에게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능력한 가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24살의 아이 둘의 아빠는 부지런해야만 했다. 퇴근 이후에 알바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그림자,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가 오랫동안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진정 아버지처럼 무능력한 가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두려움과 무게는 무의식적으로 삼차 신경통으로 재현될 만큼 무섭고, 무거웠다.


노트북 앞에 앉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를 적으며 많이 울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수화를 배우기로 했다. 엄마, 아빠와 말 한마디 다정하게 나눠본 적이 없던 내가, 두 분 다 돌아가신 이후에 수화를 배워서 어쩌려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수화를 꼭 배우고 싶었다. 농아인협회 수화반 수업 첫 날, 협회에 행사가 있었는지 농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던 중,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농인이었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하고, 심지어 사진첩을 들고 와 젊은 시절의 부모님을 내 앞에 소환했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고마우신 분이었으며, 어머니는 따뜻하신 분이었다. 나는 오직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로만 아버지를 평가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단지 농인이었을뿐,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농인들과 웃고 떠들며 오랜만에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이후로 수시로 찾아오던 삼차신경통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 사십에 수화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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