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물

by 윤희웅

마지막 선물은 치매 걸린 엄마의 이야기이다. 10여 년 전 희곡으로 썼으며 부끄럽지만, 연극 올림피아드에서 희곡상을 받은 작품이다. 치매라는 병은 가까운 기억부터 잊기 시작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로 돌아가 끝내 아이가 된다. 나는 치매라는 병은 하나님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생을 마칠 수 있는 선물, 또한 극 중에서는 간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스스로 가출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마지막 선물은 그렇게 두 가지 의미를 담은 희곡이다. 지역 극단에서 마지막 선물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연습실에 모인 배우들에게 작가로서 간단한 작품 설명을 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으니까요. 그 당시 치매라는 병은 가족들의 몫이었죠. 식구들이 많이 힘들어했죠. 그 이야기를 썼습니다. 마지막 선물의 주인공은 엄마입니다. 아들도 모르는 엄마의 삶이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나옵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마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여러분 중 한 명의 이야기도 될 것입니다.”


엄마의 치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느 날 변기의 물로 손을 씻는 엄마를 봤다. 그때부터였다. 조금씩 어긋나는 행동들을 무심코 넘겨 버렸다. 빨리 병원에 갔었으면 조금이라도 치매 속도를 늦출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수소문 끝에 치매 주간 보호 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농인이었고, 치매 환자였다. 당혹스러워하는 담당자의 눈빛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농인 치매 환자인 엄마는 갈 곳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소변을 보는 등, 자기중심적 사고, 감정 기복 등 성격 변화가 생겼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거울을 보며 이야기했고, 때로는 거울 속의 모습과 싸우기도 했다. 엄마가 거울을 깨뜨린 이후 집 안의 거울들은 모두 치워졌다. 엄마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일어나 돌아다녔다. 집 안 곳곳을 헤집어놨다. 그때 엄마는 반지를 찾고 있었다. 어렸을 적 나도 기억하는 엄마의 붉은 루비 반지였다. 엄마는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붉은 루비 반지는 전당포에 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찾아간 전당포에서 주인은 값이 없다며 반지를 맡아 주지 않았다. 어린 나는 엄마 대신 이야기하며, 끝내 붉은 루비 반지를 전당포에 맡겼다. 엄마는 생각보다 적은 돈에 아쉬워하며 그 돈으로 쌀을 샀고, 나는 과자 한 봉지를 얻었다.


엄마에게 기저귀는 소변용이었다. 대변은 기저귀 안에서 꺼내 벽과 장롱 사이 좁은 틈에,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넣었다. 손에 묻은 대변은 벽에 발랐다. 아마 대변을 본 자신이 부끄럽고, 직접 치우고 싶었던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장롱을 옮기고, 똥 묻은 빨래를 하고, 똥 묻은 벽을 물걸레로 훔쳤다. 온 가족이 일어나 새벽에 청소할 때 엄마는 꿈 많은 소녀가 되었다. 다소곳이 벽을 바라보며 앉아 노루잠을 잤다. 조금씩 야위어 가는 엄마는 끝내 어린아이가 되어 나비잠을 잤다. 단잠에 빠진 엄마를 바라보며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작가님, 생각해 보셨어요?”

“폐가 안 된다면 하고 싶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제가 예전에 작가님 공연도 봤잖아요. 정말 연기 잘하세요.”

“연기를 오랫동안 쉬어서 걱정입니다.”

“작가님은 잘하실 거예요. 저는 걱정 안 합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리딩 할까요?”

배우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아들 역을 맡았다. 내가 쓴 희곡으로, 내가 직접 연기를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생각지도 않은 배우를 권유한 연출이 고마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배우들과 희곡을 같이 읽었다. 희곡을 읽던 배우들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며 훌쩍거렸다. 나는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엄마를 만났다. 그때는 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했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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