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7개 나라에서 온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지구인 수어 합창단 신년회를 했다. 지구인 수어 합창단이 2018년도에 시작했으니 벌써 7년 차에 접어들었다. 한국말도 서툰 이주 여성들이 수어를 배우며, 수어로 노래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주 여성과 농인들은 소수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둘은 서로 빠르게 친해졌다. 그동안 수어를 알려주신 농인 선생님의 격려사로 신년회는 시작되었다. 지난해를 돌아보고, 신년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2024년 수어 경연대회 참가는 쉬자는 의견과 한 해라도 쉬면 수어 합창단이 깨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매주 한 번씩의 연습은 직장생활과 가정이 있는 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대립하는 의견이 이해되는 상황이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본 곳에 농인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나에게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지 통역해 달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농인 선생님은 상호 토론하는 그들의 표정만 보고 있었다. 나는 먼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통역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도 한마디 하고 싶다며 일어섰다. 쉬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와 힘들어도 대회 참가를 목표로 연습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농인 선생님은 나에게 미안해하며 공손히 통역을 부탁했다. 나 역시 통역을 생각하지 못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청인들 속 농인의 소통 부재는 왜 서로의 ‘미안’으로만 끝나는 것일까? 물론 청인 사회에서도 들려도 듣지 못하는 외로움이 존재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말로써 장벽을 높이 쌓았다. 말로 쌓은 장벽의 두께와 높이는 결코 가늠할 수도 없고, 짐작할 수도 없다. 그것을 우리는 따돌림이라 말한다. 다수가 소수에게 하면 집단 따돌림이 된다. 오늘 모인 우리는 청인들 속에 둘러싸인 농인 선생님에게 집단 따돌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따돌림이었다는 것을 그곳에 모인 청인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오늘 일을 떠올리며 들리지 않는 자의 외로움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 청인들에게 둘러싸인 농인 선생님의 외로움은 배제며, 격리였다. 그리고 차별이었다. 차별과 따돌림은 우리 곁에, 나의 곁에 한 몸처럼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나는 농인 선생님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농인 선생님은 웃으며 오른손을 주먹 쥔 상태에서 새끼손가락만 편 후 턱 밑에 댔다가 떼는 동작을 2회 했다. 괜찮다는 수화였다. 그렇다. 농인 선생님에게 오늘 일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