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

by 윤희웅

명절이면 항상 만나는 친구가 있다. 서로 지방에서 살다 보니 명절 때가 되어야만 만날 수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 친구와 나는 매우 비슷했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농구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것도,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했다. 우리는 자주 책, 걸상을 화장실에 숨겨두고, 땡땡이를 쳤다. 한 반에 6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복작거리니 빈 책상만 없으면 누가 땡땡이를 쳤는지 아무도 모른다. 담임선생님만 아니라면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고, 월미도에서 바다를 보며 놀기도 했다. 주로 가는 곳은 만화방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가격 백 원에 열 권, 만화방을 좋아했다. 그곳에서 먹는 고춧가루 팍팍 친 안성탕면도 좋아했다.


땡땡이를 같이 친 어느 날, 친구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오늘 집에 아무도 없으니, 아버지가 담근 인삼주를 먹자는 말에 나는 따라나섰다. 그 친구의 집은 인천에서 유명한 사창가 근처였다. 사창가를 질러가는 길과 돌아가는 길이 존재 했지만, 그 친구는 항상 사창가를 질러 집에 갔다. 나는 친구의 옷깃을 부여잡고,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사창가를 훔쳐보며 길을 걸었다. 낮에는 지나다녀도 괜찮지만, 밤에는 지나다닐 수 없다는 이야기에 대문 열린 마당에 씻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집이 보이는 골목에 들어섰을 때 친구는 이야기했다.

“저기 보이는 끝 집이 우리 집이거든. 너 먼저 가 있어.”

“너는?”

“작은엄마가 집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올라갈게.”

“작은엄마?”

“우리 아빠 둘째 부인. 바로 밑에서 살거든. 집에 없으면 냉장고에서 먹을 것 좀 가져오려고. 그 집에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먹을 것이 많아.”

“그렇구나.”


잠시 후 친구는 검은 봉지에 과자와 과일을 가득 담아왔다. 우리는 그것을 안주 삼아 아버지의 인삼주를 마셨다. 국자를 넣어 한 잔씩 떠먹다 보니 인삼주는 어느새 반이나 줄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들키겠는데 어쩌냐?”

“보리차 담아 두면 몰라.”

“그걸 왜 몰라, 술맛이 다를 텐데.”

“아버지는 작은엄마 집에서 살아. 우리 집에는 제사나, 생일이나 그럴 때 오시지. 그럴 때는 항상 취해 있어서 잘 몰라.”

“나는 너, 막내인 줄 알았어.”

“막내 맞아. 누나, 형, 내가 우리 엄마 자식이니까. 작은엄마는 아들 둘이 있기는 한데, 우리와 나이 차도 많이 나서 어울리지 않아.”

“너 괜찮아?”

“뭐가?”
“엄마가 둘이잖아.”

“나에게는 엄마는 한 명이지. 아버지가 부인이 둘일 뿐이야. 나는 오히려 좋아. 아버지 하고 안 친하거든.”

“나도 비밀이 있어.”

“무슨 비밀?”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농아인이야.”

“그게 무슨 비밀이야?”

“남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으니까 비밀이지.”

“별 희한한 비밀도 다 있다. 내가 엄마가 둘이던지, 너희 부모님이 농아인이던지 그게 우리 잘못이야? 그게 왜 비밀이야?”

“내 잘못은 아닌데 나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 어렸을 적에 우리 부모님 보고 멀어진 친구들이 간혹 있었거든. 아마 그때부터 말을 안 한 것 같아.”

“너는 내가 엄마가 둘이면 친구 안 할 거야? 너희 부모님이 농아인이라서 내가 친구 안 할 것 같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물어보지 않으니까, 말을 안 한 거야. 숨긴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야. 우리는 다른 가정과 조금 다를 뿐이야. 그것도 우리 잘못도 아닌데 별 신경을 다 쓴다.”


다름과 틀림을 알려준 친구, 만난 지 40년이 되어 가는 친구를 나는 내일 만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가슴이 콩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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