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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Feb 22. 2024

신분증 검사, 패스입니다.

 “2차는 어디로 갈까?”

“2차는 가볍게 먹자. 좋은 곳 있으면 추천 좀 해봐.”     

 우리는 삼겹살에 소주 4병을 마셨다. 일 인당 소주 한 병 정도였다. 아무리 우리가 늙었어도 예전 가락도 있고, 소주 한 병 정도는 문제없었다. 오히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발걸음이 가볍고, 입도 술술 풀렸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아재 개그에도 우리는 빵빵 터지며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지금까지 2차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아무도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가본 곳인데 꽤 괜찮았어. 안주도 가성비가 있고, 젊은이들이 많아서인지 분위기도 좋아. 옥상에 루프톱도 있어서 야경을 보면, 꼭 외국에 나온 기분이야.”

“추워 죽겠는데 옥상은 무슨…. 싫어.”

“그럼, 룸으로 들어가면 돼. 룸이 쪽방촌 마냥 길게 줄을 섰는데 문을 닫으면 조용해.”

“거기 좋겠다. 나는 시끄러우면 싫거든. 요즘 애들은 왜 이리 시끄럽냐?”

“그런 말 하는 네가 제일 시끄럽거든,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냐?”

"귀가 먹어서 그런다. 너도 얼마 안남았어."

할아버지들,  그만 떠들고 2차 갑시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한 동네 친구들이다. 한동네에 살다 보니, 오며 가며 인사하고 친구가 되었다. 직업은 다르지만, 생활 형편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정치 성향이 같았다. 형, 동생 하며 지낸 지 십 년이 넘었다. 이제는 다들 이사해서 예전처럼 동네에서 가볍게 만나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십 년 전으로 돌아가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우리가 간 술집은 13층 전체를 쓰는 제법 규모가 큰 술집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만원이라는 버저 소리가 울릴 때까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우리가 마신 술과 삼겹살 냄새가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하였다. 우리는 숨을 참으며, 이 많은 사람과 함께 13층으로 올라갔다. 13층, 문이 열리며 하나, 둘 사람들이 내릴 때 우리는 참아왔던 숨을 토하며 이유 없이 키득거렸다.

“형, 방귀 나올 것 같아서 참느라 죽을뻔했어요.”

“나는 방귀 참는 너 얼굴이 웃겨서 죽을 뻔했다.”

“죽는다는 소리 그만해. 이제는 죽는다는 소리가 제일 무서워.”

“하긴,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은 카운터 앞에서 줄을 섰다. 왜 줄을 서는지 영문도 모르고 우리도 같이 줄을 섰다. 사람들은 가방에서,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술집 입장 시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었다. 신분증 검사를 마치면, 원하는 장소(룸 또는 옥상)와 인원수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종업원이 그곳까지 안내를 해주는 방식이었다. 우리 순서가 왔을 때 사장은 우리에게도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다.

“사장님, 우리가 그렇게 어려 보여요?”

“물론, 어려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분증 검사는 예외 없이 무조건 다 합니다. 얼마 전에 영업정지를 당했습니다. 가게 규모가 커서 영업정지를 또 당하면 월세도 못 내고, 바로 망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일일이 확인했다. 내 순서가 됐을 때였다.

“사장님은 안 보여줘도 괜찮습니다. 패스.”

“패스? 왜요? 예외가 없다면서요?”

“사장님은 그냥 봐도 액면가가 높은 신데요.”

“여기, 이 사람이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인데 이형은 검사하고, 나는 패스한다는 게 말이 돼요?”

“형님이세요? 보기보다 젊어 보이십니다.”

“그럼 나는 보기보다 늙어 보인다는 말이에요?”

아우님, 왜 그래. 그냥 들어가자.”

“난 못 들어가. 사장님, 나도 신분증 검사 해주세요.”     


 사장님이 마지못해 신분증 검사를 할 때까지 나는 반쯤 빠진 앞머리를 정리하며, 조금 더 젊어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나이 먹는 것도, 머리가 빠지는 것도 슬픈데, 형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야기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무튼 나에게는 이것저것, 모든 것이 슬픈 저녁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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