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얼굴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희웅 Mar 06. 2024

시계불알.

 나는 퇴직 후 브런치에 일주일에 두 번, 적어도 한 번은 꼭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지금까지 다짐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문제는 이번 주였다. 쓸 글이 없었다. 작가마다 글쓰기에 나름의 철학이 있겠지만, 나는 글에는 감동이 있거나 웃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주는 웃음도, 감동도 없는 일주일이었다.  달력을 보며 나의 일상을 돌아봤다. 3.1절에 영화 ‘파묘’를 봤다. 파묘를 본 소감을 글로 쓸까, 고민해봤다. 오컬트, 샤머니즘, 풍수지리까지는 좋았다. 쇠말뚝, 일본, 정령은 사골도 아니고 너무 우려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이 쉽게 해소될 만큼 가볍지 않으니, 이해도 되었다. 그러면서도 굳이 3.1절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너무 상업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감상문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이내 포기했다.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기적인 혈압약을 받으러 병원에 갔었다. 의사 파업 여파인지 병원에는 의사가 없었다. 간호사만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아침으로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전화라도 하고 갔으면 헛걸음을 피할 수는 있었을 것을 생각이 짧았다. 의사 파업이 동네 병원까지 미칠 줄 몰랐다. 이 문제를 글로 쓸지 고민하다, 말았다. 의사 파업이 사회적 문제인지, 정치적 문제인지 생각이 복잡했다. 오늘 아침, 새벽 배송이 왔다. ‘라면 그만 먹고, 귀찮아도 밥 해서 먹어’ 딸의 문자가 기특했다. 그래, 글로 쓰자. 한 달에 두 번씩 보내주는 새벽 배송…. 딱 요기까지 글을 쓰다 접었다. 혹 이 글을 아들이 본다면…, 섭섭할 것 같았다. 사이 안 좋은 남매를 둔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습작 노트를 뒤져가며 글감을 찾았다. ‘시계불알’이라는 짧은 글이 눈에 띄었다. 십 년 전에 쓴 일기였다. 십 년 전 일기를 읽으며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책상에서 일어나 거실을 서성였다. 창문을 열고 어두워진 하늘도 바라봤다. 꺼져있는 텔레비전에 나의 모습이 보였다. 텔레비전 앞에 서서 나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어깨를 다독였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너는 할 만큼 했고,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정말 수고했어’라고 말했다.    




시계불알 (20130510)     

 괘종시계는 매시 정각마다 종을 쳤다. 한 시에 한 번. 열두 시에 열두 번. 시계불알은 쉼 없이 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태엽이 다 풀릴 때까지 시계불알은 움직였다. 시계불알은 지칠 수가 없었다. 그가 쉼 없이 움직여야 시침도 움직일 수 있고, 분침도 움직일 수 있다. 시계불알은 시침과 분침을 위해서 항상 같은 거리를 반복하며 움직여야 한다.     


 한때 나에게도 새벽녘에 피어오르는 강가의 물안개 같은 파란 꿈이 있었다. 뭐든지 다 할 것 같은, 뭐든지 잘할 것 같은 청춘이라는 이름의 시간이 있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나는 시침과 분침을 위한 시계불알이 되었다. 여섯 번의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 여섯 번의 종소리를 듣고 퇴근하는 시계불알이 되었다. 이십일 년의 시계불알 생활, 앞으로 십여 년은 더 해야 할 생활이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 삶의 태엽이 다 풀리기 전 시계불알 없이 시침과 분침이 홀로 길을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 모습을 보기 전에, 그때가 오기 전에 태엽이 다 풀리면 안 되는데…….      

 오늘도 시계불알은 여전히, 쉼 없이 왕복운동을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분증 검사, 패스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