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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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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Mar 13. 2024

분위기 있어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도를 아십니까, 아니면 전도하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빠르게 시선을 거뒀다. 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들어와 길을 건너려는 순간, 아주머니의 질문이 예고도 없이 들어왔다.

“혹시 가수세요?”

“가수요? 아니요.”

“그럼, 뭐 하시는 분이세요?”

“왜요?”

“분위기가 가수 같아요.”

 노래방에서도 2절까지 노래를 불러본 적 없는 내가 가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도를 아세요?라고 물어봤다면 덜 황당했을 사건이었다. 황당한 사건은 또 있었다. 약속 시간을 잘못 전달받아 두 시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일이 있었다. 찻집에서 두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니 차라리 머리나 다듬자는 생각에 근처 미용실에 들어갔다. 머리를 다듬던 미용사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미용을 오래 하다 보면 반쯤은 관상가가 되죠, 제가 선생님 직업을 맞춰볼까요?”

“제가 무슨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예술 쪽에서 일하는 것 같아요.”

“틀렸어요. 저 회사원이에요.”

“회사에서 예술 관련 일을 하지 않나요?”

“전혀요. 라면 봉지 만드는 회사예요.”

“이상하다. 분위기가 예술 쪽 맞는데. 작가 아니에요?”

“작가요?”

“분위기가 글을 쓰는 작가예요.”

“그게 느껴져요?”

“작가 맞죠? 저는 두상만 만져봐도 알아요.”     


 사람들에게는 본인도 모르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 역시 사람들을 만날 때 분위기를 먼저 보게 된다. 분위기, 기운이랄까? 눈빛, 말투, 목소리, 때로는 등 뒤에서 분위기가, 기운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굴은 예쁘지만, 분위기가 없는 사람보다는 얼굴은 평범하지만,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나는 잘생긴 이목구비보다 분위기가 좋은, 매력적인 사람에게 호감이 갔다. 그럼,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린아이들은 다들 비슷한 기운을 뿜고 있다.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먼지가 쌓이듯이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켜켜이 쌓이는 것 같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분위기가 있다. 자신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도 분위기가 있다. 순수한 사람,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역시 분위기가 있다.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한 사람도 분위기가 있다.


 한때는 나만의 분위기를 갖고 싶어서 생활 한복을 입고 다닌 적도 있었다. 한참을 입고 다니던 생활 한복은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문소리의 대사 한마디에 벗어버렸다. 문소리는 환경운동을 하며 생활 한복을 입은 교수에게 ‘그거 활동하는 사람들 유니폼이잖아요.’ 이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며 옷을 벗었다. 또 있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수다를 좋아하는 나의 별명은 ‘윤 언니’였다. 남자인 나에게 아줌마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분위기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도 모르게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분위기가 예술가 같다. 분위기가 작가 같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의 그동안 삶이 엉터리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도 나만의 분위기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더 열심히 글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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