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생계형 타짜였다.

by 윤희웅

한국에서 요즘은 구락부라는 단어를 보기도, 듣기도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여기저기에서 구락부(倶楽部)라는 간판이 많이 보였다. 또한 1950년대~1970년대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장소는 구락부였다. 일본어로는 クラブ(쿠라부)라고 하며, 한자로 적을 경우 倶楽部라고 적는다. 영어의 CLUB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쿠라부, 그 발음을 한자로 적을 경우 倶楽部(쿠라부) 즉, 한국 발음으로 하면 구락부가 되는 것이다. 문학과 철학을 토론하고, 친목을 다지는 서양의 클럽이 우리의 구락부가 되었다. 경성 구락부, 제물포 구락부는 그 당시 지식인들의 대표적인 사교 장소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구락부는 농문화에서도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지금 농인들은 영상통화로 대화하며,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음성 전화만 있던 시기에 농인들은 전보, 편지 외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친목을 원하는 농인들은 교회(종교)로 모였다. 하지만 교회는 아쉽게도 일주일에 한 번 뿐이었다. 수시로 모이고 싶은 농인들은 지역별로 구락부를 만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구락부는 입구에 커다란 메모판이 있었다. 메모판에 메모를 남기는 방법으로 서로 소통하였다. 그 지역에 사는 농인들은 언제든지 구락부에만 가면 친구를 선, 후배를 만날 수 있고, 연락할 수 있었다. 영상통화가 일반화되기 전까지 농문화를 대표하는 곳은 구락부가 유일했다. 농인뿐만이 아니라 안산에는 외국인 대상의 구락부가 지금도 존재한다. 타국에서 연락 없이, 언제든지 고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구락부가 유일했다. 구락부는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였다.

어릴 적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구락부는 지역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났던 곳에 있었다. 아마 접근성이 중요했을 것이다. 교통이 편리한 곳, 허름한 빌딩 3층쯤에 위치했다. 허름한 빌딩 3층은 아마 월세 탓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구락부 안을 들여다보면 식당을 겸한 응접실과 남자들이 모이는 방, 여자들이 모이는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식당에는 식사와 안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응접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말그대로 사교의 장소였던 구락부였다. 하지만 구락부는 어느새 변질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한 쪽 구석에서 마작을 했다. 여자들은 민화투나 고스톱을 했다. 술과 마작, 화투가 성행한 구락부는 더이상 건전한 친목과 사교의 장소가 아닌 퇴폐적인 장소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놀이문화가 많지 않던 시기임을 참작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엄마는 구락부를 좋아했다. 구락부를 좋아했다는 표현보다는 엄마는 사람을 좋아했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엄마의 수화를 가만히 바라보면 다른 농인보다 표정이 많았다. 코미디언이 연상될 정도로 표정과 동작이 다양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도 잘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구락부에서 놀던 엄마는 자연스럽게 화투를 배웠을 것이다. 간이 작은 친구끼리 점에 십 원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화투를 조금씩 배우던 엄마에게 그동안 숨겨진 재능이 발견되었다. 엄마는 산수를 잘했다. 점수계산과 타인의 패를 읽는데 탁월했다. 또한 엄마는 포카페이스에 능했다. 고스톱에서 산수와 포카페이스는 강력한 무기였다. 산수와 더불어 포카페이스로 무장한 엄마는 어느새 구락부 여성 고스톱 세계를 평정했다.


“엄마, 내일 육성회비 내야 해.”

“엄마, 책을 사야 해.”

“엄마, 교복이 찢어졌어.”

엄마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비장한 얼굴로 구락부로 출동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어김없이 개선장군처럼 집에 들어왔다. 엄마를 기다리던 자식들에게 두둑한 지갑을 뽐내며 필요한 돈을 나눠줬다. 승률이 꽤 좋았던 엄마는 어느새 생계형 타짜가 되었다. 치매 걸린 엄마와 고스톱을 하던 날, 나는 엄마 몰래 손에 들고 있던 화투패와 바닥의 화투패를 바꿨다. 치매 걸린 엄마는 바닥의 화투패를 살피다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화투패를 조용히 내려 났다. 치매 걸린 엄마는 바닥의 화투패를 외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손모가지가 잘릴 뻔했다. 엄마의 화투 실력은 치매를 당당히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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