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법칙, 욕망의 도구로만 쓴다면.

채워진 다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by 조유희

유튜브에 '끌어당김'을 검색해 보면 이런 제목이 주르르 나온다.


확언 10번만 해도 돈이 쏟아집니다

잠자는 동안 부자 되는 주파수 (틀어놓고 자세요)

전 남자친구 돌아오게 만든 끌어당김 루틴

3일 안에 원하는 직장 끌어당기는 법

아파트 당첨된 썰 — 끌어당김 실제 후기


우주의 법칙이 쇼핑 목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쇼핑 목록을 들고 다닌 적이 있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관계, 더 나은 몸.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루어질 때마다, 원하는 물건을 가질 때마다,

목록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끌어당김은 원래 어떤 법칙인가


끌어당김의 법칙을 단순하게 말하면 '내가 집중하는 것이 현실로 온다.'이다.

하지만 이 법칙에는 사람들이 잘 말하지 않는 이면이 있다.

끌어당김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그것은 내가 어떤 에너지 상태에 있느냐의 문제다.


결핍감으로 돈을 끌어당기면 돈이 와도 결핍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될 뿐이다.

두려움으로 안전을 끌어당기면 안전해져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 높은 담을 쌓고 싶어질 뿐이다.

끌어당김은 외부를 바꾸는 법칙이 아니라, 내 내면의 주파수를 현실로 투영하는 법칙이다.


그래서 무엇을 끌어당기느냐보다 어떤 상태에서 끌어당기느냐가 진짜 핵심이다.


두려움의 진동수에서 끌어당기면 두려움을 강화하는 현실이 온다.

연결감과 충만함의 진동수에서 끌어당기면 그 감각을 확장하는 현실이 온다.


끌어당김 콘텐츠들 중에 간혹 이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시각화하고, 확언하고, 느끼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의 토대 위에서 그것을 원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결핍감으로 돈을 끌어당기려 하면 돈보다 결핍이 먼저 온다.

"아직도 부족해"라는 감각이 돈이 오기 전에 현실을 먼저 채운다.


두려움으로 사랑을 끌어당기려 하면 사랑보다 두려움이 먼저 온다.

떠날 것 같은 사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관계가 먼저 당겨진다.


분노로 인정을 끌어당기려 하면 인정보다 무시가 먼저 온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끌어당김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법칙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감정의 상태를 증폭시키는 법칙'이다.


그래서 무엇을 끌어당기느냐보다 어떤 상태에서 끌어당기느냐가 진짜 핵심이다.



얼마나 채워야 멈출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돈 걱정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월급만으로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 더 저렴한 것을 고르는 순간,

갑작스러운 지출이 생겼는데 통장 잔고가 부족한 경험.

그건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이걸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처음부터 돈 없이는 숨쉬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 당장 생계가 막막한 사람에게 "돈만 바라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고, 폭력에 가깝다.

일단 먼저 살아남아야 하고, 먼저 채워야 하는건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의 상황에서 의문점이 든다.


채워진 다음에도 왜 우리는 계속 채우기만 하는가?


의식주가 해결되고, 여행을 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예뻐지고, 사랑받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돈, 더 좋은 것, 더 자극적인 경험끝없이 끌어당기는 것.


그건 더 이상 생존이 아니다. 그건 중독이다.


감각은 언제나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영혼의 목소리는 그 소음 속에서 점점 들리지 않게 된다.



폭탄 돌리기


어릴 때 하던 게임이 있다. 음악이 멈추기 전에 폭탄을 옆 사람에게 넘기는 것.

"중요한 건 폭탄을 넘긴 사람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믿는다."

잠깐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폭탄은 사라지지 않고, 단지 자리를 옮길 뿐이다.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이 이것이다.


첫 번째 폭탄.


나는 더 싸게 사고 싶어서 최저가를 찾는다. 시장은 그 욕망에 응답하며, 공장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임금을 줄인다. 누군가는 같은 시간을 일하고 더 적게 받는다. 나는 그저 싸게 샀을 뿐인데 그 선택이 누군가의 결핍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쌓인 결핍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범죄, 혐오, 사회 불안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폭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다.


두 번째 폭탄.


나는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밟고 올라서거나, 혹은 그냥 외면했다.

굳이 해치지 않아도, 그냥 모른 척하는 것으로도 폭탄을 넘기는 행위다.

하지만 주변에 결핍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가 살아가는 세계도 그에 맞게 형성된다.


쌓인 결핍은 언젠가 터진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전쟁이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혐오범죄가 되고, 일상 속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갈등이 된다.

그 세계 안에서 나는 더 높은 담을 쌓고, 더 많은 경비를 세우고, 더 깊은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안전해지려고 했는데 내가 만들어낸 세계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역설이다.

폭탄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다.


세 번째 폭탄.


예를 들어 끌어당김으로 내 현실을 바꾸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걸 먹고, 좋은 곳을 여행한다.

그리고 그 콘텐츠를 올린다. 나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 그냥 내 삶을 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누군가는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며 결핍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 결핍감이 다시 세상에 퍼진다. 질투, 증오, 분노로.

폭탄은 이렇게도 돌아간다. 의도하지 않아도.



나를 복제한다면


조금 이상한 상상을 해보자.

내가 있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나 자신을 복제하기로 했다.


한 명에게는 모든 걸 준다. 똑똑함, 돈, 능력, 기회.

다른 한 명에게는 결핍을 준다. 느린 머리, 가난, 자꾸 길을 잃는 운명.


하지만 둘 다 나다.


이 게임에는 끝이 있으며, 둘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그 순간,

풍요로웠던 내가 '외면했던 결핍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회피했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무시했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아직 내 차례가 안 된 것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한쪽은 끝없이 채우고 다른 쪽은 끝없이 비워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타인을 위해 쓰는 것이 가장 정교한 나를 위한 투자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지금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은 왠지 의무처럼 들린다.

'죄책감에서 나누는 것', '참아가며 베푸는 것'은 내가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건 거창한 영적 개념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이 작동하는 구조다.

타인의 결핍이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생계가 막막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범죄율이 올라가고, 박탈감이 쌓인 사회는 혐오와 갈등으로 터진다.

이것이 극단적으로는 전쟁이 된다. 그건 뉴스에서 매일 보는 일이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은 언젠가 반드시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영적 관점에서) 존재가 스스로를 나누어 경험하는 거라면,

지금 누군가가 삼키는 눈물, 누군가가 느끼는 수치심이 결국 내가 경험하게 될 것들이다.

영적인 믿음이 없어도 괜찮다. 현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같은 곳에서 나왔고,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타인의 경험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내 차례가 안 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위해 돈을 쓰는 것,

타인의 고통에 잠깐 눈을 돌리는 것,

내가 가진 것을 조금 흘려보내는 것.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나를 위한 투자다.


폭탄을 넘기지 않는 것.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이기심, 회피, 무관심

다른 형태로 나에게 돌아오기 전에 그 흐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채워진 다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나를 위해 끌어당기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충만함을 경험하고 더 많은 감각을 누리는 것.

그건 잘못된 게 아니다. 먼저 채워야 흘려보낼 수 있고, 먼저 살아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채워진 다음에는 잠깐 멈추고 바라봐야 할 것이 있다.


그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바라보야 한다.

나만을 향해 고여 있는가. 아니면 연결된 존재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흐르는가.

고인 물은 썩는다. 아무리 맑은 물도, 고이면 썩게 된다. 흐르는 물만이 살아있다.


끌어당김을 배운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 질문까지 온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오늘 당신이 끌어당기려는 것 그것이 채워졌을 때, 그 다음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더 많은 돈과 더 자극적인 경험인가, 아니면 그 충만함이 어딘가로,
누군가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인가?


우주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고, 언제나 그래왔다.


하지만 우주는 동시에 아주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받은 다음, 당신은 이 세계를 어떤 곳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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