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지난 글에서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만 사용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 한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의식 성장'도, '영적 성장'도 없이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돈만 끌어당긴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역설적이게도, 그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소유는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다
사람들은 돈을 끌어당기면 행복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그 경향이 더 심하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게 뭔가요?"라고 물었을 때 해외에 비해 한국은 유독 돈, 물질적 풍요라고 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모른다. 지금 당장 먹고 자고 살아남는 데 돈은 필수이기에.
그런데 생존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여행을 가고 싶고, 자기 관리를 하고 싶고, 옷도 사고 싶어진다. 음식은 간단한 집밥에서 점점 더 고급진 것을 찾게 되고, 옷도 더 화려하고 비싼 걸 입고 싶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쁘고 잘생긴 이성과의 만남, 더 강렬한 쾌락, 더 자극적인 경험을 바라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명품 옷 몇 벌, 외제차 한 대, 고급 아파트 한 채, 유럽 여행 한 번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고.
근데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상황으로 한번 알아보자.
일단 먼저 수집가들을 보자. 나이키 한정판 스니커즈를 200켤레 모은 사람이 있다. 신발장을 넘어 방 하나를 가득 채운 박스들. 그런데 새로운 콜라보 제품이 나오면? 또 산다.
가방을 수십 개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이미 평생 다 들지도 못할 만큼 있는데 신상 시즌이 오면 또 줄을 선다.
피규어 수집가는 어떨까. 방 한 칸을 진열장으로 만들어놓고 한정판이 나오면 밤새 오픈런을 한다.
이건 그들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소유로써 만족할 수 없는 구조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행 아이템, 끝없이 쏟아지는 신상품들. 과거에 샀던 물건들은 금세 시들해지고, 또 새로운 것이 생기면 갖고 싶어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유럽 10개국을 다 돌았다고 쳐보자. 그래서 끝날까?
이번엔 남미가 눈에 들어온다. 페루의 마추픽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남미를 다 돌고 나면 이번엔 아프리카 사파리가 당긴다. 아프리카를 가고 나면 남극이 보인다.
그리고 유럽은? "나 거기 가봤어"가 아니라 "요즘 포르투갈 알가르브 지역이 뜬대, 다시 가야겠다"가 된다.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다 가도 새로운 축제가 생기고, 새로운 유행 여행지가 등장하면 또 가고 싶어진다.
음식도 다르지 않다.
오마카세를 먹고,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가고, 제주도 흑돼지부터 교토의 가이세키까지 섭렵했다고 해서 "이제 음식은 다 경험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또 새로운 팝업 레스토랑이 생기고, 또 새로운 나라의 음식이 유행하면 또 먹어보고 싶어진다.
막상 수백억의 돈이 생긴다면 "이제 충분해, 더 이상 바라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수십 년을 수행한 스님 정도가 아니고서야 거의 없다.
우리는 이제 이 구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소유는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욕망을 느끼되, 채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어느 정도는 내려놓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을.
돈만 끌어당긴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진 않는다
돈이 많으면 더 안전할 것 같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다.
전쟁이 나면 부자도 피난을 가야하며, 폭탄은 통장 잔고를 보고 떨어지는게 아니다.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면 부자도 피해자가 되며, 고급 아파트에 살아도 갖가지 사고는 일어난다.
기후 재난이 오면 부자도 폭염을 피할 수 없고, 산불은 고급 주택가도 집어삼킨다.
전염병이 돌면 돈이 많아도 바이러스는 비행기 퍼스트클래스도 탄다.
결국 내가 사는 세상이 안전해야 나도 안전하다.
내 옆 사람이 평화로워야 나도 평화롭다.
돈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주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같은 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노예가 된 사회는 어떻게 되는가
모두가 돈만 끌어당기고,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쾌락만 우선시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지금 이미 그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한 번 입고 버린 패스트패션 옷들이 매년 9,200만 톤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그 옷들은 가나, 칠레, 인도의 쓰레기 산으로 쌓인다.
우리가 싸게 사고 쉽게 버린 옷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마을을 덮고 있다.
배달 음식 하나를 시키면 플라스틱 용기가 5개씩 딸려온다. 편리함을 위해 쓰고 버린 것들이 바다 한가운데 악취가 나는 쓰레기 섬을 만들었다. 새로운 전자기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멀쩡한 스마트폰을 바꾼다. 매년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수천만 톤의 전자 폐기물 중 약 80%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으로 향한다. 그 폐전자기기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손으로 분해된다. 납, 수은, 카드뮴이 아이들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상위 1%가 전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요트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누군가는 오늘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고, 가난에 고통받는 끔찍한 격차가 더 심해진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에만 좋은 일자리가 있고, 좋은 병원이 있고, 여러 기회가 있다.
그러니 청년들이 서울로 몰리게 된다. 고향을 떠나 반지하에 살면서도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지방은 텅 비어간다. 가게가 문을 닫고, 학교가 폐교되고, 병원이 사라진다.
하지만 서울에 모인 청년들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월세는 오르고, 취업 경쟁은 치열해진다.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포기하고, 내 집을 포기한다.
하나씩 포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꿈도 포기하게 된다.
그 박탈감은 온라인에서 터진다. 지역 혐오, 세대 혐오, 성별 혐오.
그 박탈감이 쌓여서 혐오가 되고, 혐오가 쌓여서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느라 정작 이 구조를 만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
그 생각들이 모여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
모두가 '자신만의 풍요'를 끌어당기는 동안 세상의 온도는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말 그대로, 빙하가 녹고, 바다가 차오르고, 여름이 길어지는 것.
비유적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온도가 높아진다.
분노가 쌓이고, 혐오가 끓어오르고,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사회가 된다.
돈을 끌어당기는 것과 세계평화를 끌어당기는 것의 차이
돈을 끌어당기는 사람은 묻는다. "내가 얼마나 더 가질 수 있을까."
세계평화를 끌어당기는 사람은 묻는다.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돈만 끌어당기는 사람의 성공은 다른 누군가의 결핍 위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세계평화를 끌어당기는 사람의 성공은 주변을 함께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흐른다.
돈을 끌어당기면 그 돈이 나에게 고인다.
세계평화를 끌어당기면 그 에너지가 세상으로 흐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흘려보내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이 들어온다.
고인 물은 썩는다. 흐르는 물만이 살아있다.
세계평화를 끌어당겼을 때 세상은 어떻게 바뀌는가
상상해보자, 모든 사람이 돈 대신 연결, 나눔, 의식 성장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면?
기득권층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권력을 붙잡고 이기심만 채우던 사람들이 국민을 생각하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게 된다.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서는 부자들이 생기고, "내가 이만큼 가졌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CEO가 나온다.
땅을 독점하던 사람들이 공공을 위해 내놓기 시작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쉬는 것이 당연해진다.
최저임금을 두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 또한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 없이도 사람들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돕는다. 사장이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 배달기사가 안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간호사가 번아웃으로 쓰러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변화한다.
패스트패션 대신 오래 입는 옷을 만든다.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남은 것은 나눈다. 쓰레기 산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남은 음식은 필요한 사람에게 가고, 굶는 사람이 줄어든다.
마트에서 팔리지 않은 음식이 노숙자 쉼터로 간다. 고급 레스토랑의 남은 재료가 결식 아동의 도시락이 된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헐뜯는 대신 서로를 칭찬하고 아끼고 보듬어준다.
댓글창에 악플 대신 응원이 달린다. "당신 덕분에 오늘 하루가 괜찮았어요"라는 말이 낯선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길을 잃은 할머니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게 어색하지 않아진다.
SNS에서 남의 삶을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대신 "나도 저렇게 해봐야겠다"는 자극이 되고,
유명인이 실수했을 때 수만 개의 돌을 던지는 대신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고, 더 큰 변화가 자리잡는다.
전쟁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전쟁은 결국 누군가의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더 많은 땅,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권력.
하지만 모두가 연결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면 (적국의 시민도 나의 또 다른 조각이라는 걸 안다면) 방아쇠를 당길 수 없고, 폭탄을 투하할 수 없다. 국경을 넘어 탱크를 몰 수 없다.
내가 저 사람을 죽이는 게 결국 나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기 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쟁이 없으면 무기가 전혀 필요 없다. 무기를 만들던 공장은 사람을 살리는 것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국방비로 쓰이던 돈이 교육으로, 의료로, 기후 위기 해결로 흐른다.
난민이 사라진다. 전쟁이 없으면 고향을 떠날 이유가 없고,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
낯선 나라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도 없어진다.
핵무기가 해체된다.
서로를 믿을 수 있고 신뢰하게 되면, 지구를 수십 번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쌓아둘 이유가 없어진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의 전쟁도, 지금의 빈부격차도, 지금의 환경파괴도
전부 사람들이 무엇을 끌어당기느냐에서 시작됐다.
이기심을 끌어당긴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반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연결을 끌어당기고, 나눔을 끌어당기고, 세계평화를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반드시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주는 우리가 집중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게 거창한 이상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게 결국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내 통장 잔고만 끌어당기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세계평화를 끌어당긴다는 게 멀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오늘 옆 사람에게 건네는 한마디,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는 선택, 내가 가진 것을 조금 흘려보내는 용기.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세상의 진동수를 바꾼다.
모두가 결핍을 끌어당기면 결핍의 세상이 오고,
의식성장과 연결을 끌어당기면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
나라면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돈을 끌어당기는 것에서 멈추지 않겠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라면 세계 평화를, 의식 성장을, 영적 확장을 끌어당기겠다.
사람들이 이기심을 내려놓고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그렇게 되면 풍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모두가 하나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상처받으면 나도 상처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고통받으면 나도 고통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간단한 해답을 모르고 돈만 끌어당겼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끌어당겨야 할 것은 명품도, 집도, 멋지고 예쁜 이성도 아니다.
세계 평화다.
이걸 끌어당기면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나에게 온다.
이제 생각해보자.
당신은 무엇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돈만 끌어당기는 것에서 멈췄는가,
아니면 더 나아가 집단 의식의 확장과 세계 평화를 끌어당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