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말에서 나 스스로를 놓아주기
세상에는 성숙한 사람이 참 많다. 그 진심의 깊이를 알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떤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하여도 그 사람의 입장에선 대부분의 상황이 쉽게 납득되곤 한다. 아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표현보다는 의도에 가까웠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따스함에 감화되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마음 떼주다 보면 어김없이 한 번씩 진흙탕에 발을 빠뜨리는 일들이 생긴다. 그렇게 생채기가 생기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며 내 성향은 나도 모르던 사이에 점점 웬만한 거에도 놀라지 않는 무던한 성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이민을 온 곳은 한국 사람은커녕 동양인 그림자도 보기 힘든 곳이었다. 차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면 어렵사리 한국인을 몇몇 만날 수 있을 정도인지라, 애초에 한국 음식을 먹거나, 한국의 물건을 구한다는 것은 명품을 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 터. 그런 상황에서 한국사람 몇몇을 만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이미 온갖 어려움을 겪어놨던 지라 그 한국사람 몇 명이, 나에겐 자유의 여신상 보다도 더 반가웠을 때였다. 그렇게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이 생기겠구나.”라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라 나는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우리는 순서대로 각자 주관해서 식사를 같이 하곤 했는데 식사자리의 주된 주제는 “내가 얼마나 미국생활에 무지한가”였다. 그때는 정착에 필요한 큰 부분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어, 조심스럽게 해결을 위해서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실 마땅히 답을 줄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너 미국에선 그러면 안돼. “ ”너 그렇게 해서는 절대 나처럼 신분 해결 못한다. “ ”그 직장은 너를 뽑지 않을 거아. 몇 년 후에 천천히 다시 도전해라. “라는 말들이 왜 그리도 나를 불편하게 했을까?
하지만 그 인연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미군에 입대하고 지역사회에서 그럴듯한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더 이상 나는 그들에게 효용가치가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조언이 나에게 통하지 않는 그 순간부터 그들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누군가는 마치 나의 초기정착을 물심양면 도와준 것처럼 주변에 꽤나 떠들썩하게 소문을 냈던 것 같다. 내가 그 소문대로 정말로 도움을 받았으면 괜한 시행착오로 없는 예산 짜내가며 수천불을 지출할 일이 없었을 텐데... 크레디트도 없으면서 집을 구하겠다고 온종일 비 오는 날 걸어 다니면서 간신히 냉난방도 안 되는 집을 비싼 월세를 주고 급하게 구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해 보니 씁쓸해지는 대목이었다.
긴 인연이 될 수 없음에 아쉬워했지만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화의 고독이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누군가에게 어떠한 호의도 기대하지 않는 순간부터 실망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인격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대하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기 그지없어 삶의 지혜를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을 다름이지만, 그들 역시 어떠한 계기로든 한 뼘이라도 더 따스하고 속 깊은 사람이 되어 누군가의 그 어려운 시절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랄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