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우리는 왜 지적 허영심을 경계해야 하는가?

by D Kim

미군에서 내가 하는 일은 내담자의 심적인 어려움을 듣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곳의 정신전문간호사 및 정신과 의사들의 중재에 진지한 고민의 순간이 녹아들어 있음을 몸소 옆에서 함께하며, 상대의 마음에 치유의 마중물을 붓는다는 것은 있는 힘껏 정성을 다해야 하는 과정이구나 깨닫게 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있다. 나그네들을 위해 극진한 대접으로 상대를 맞이한 다음 본인의 침대에 누워보도록 하여 그보다 키가 작으면 늘여서, 크면 잘라서 상대를 살해하는 도적이자 연쇄 살인범이었다. 결국 그의 악행은 테세우스에 의해 같은 방법으로 그 침대 위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잃으며 끝이 난다.




환자의 건강 증진에 힘쓰는 모든 직업은 끊임없는 지식의 습득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제아무리 부지런히 지식을 습득하려 마음먹어도 그 지식은 온전함을 향해 수렴해 갈 뿐이다. 그렇기에 남보다 한 뼘 정도 더 안다고 으스댈 이유도 없고, 부지런히 지식을 갖추되 자만의 손거울을 내려놓고 시선은 내담자에게 보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돌보는 직업이지 지식을 가진 멋진 나를 뽐내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본인의 지식에 한껏 취해서 타인을 자기가 만든 침대에 눕혀서 자르고 늘려서 맞추는데 삶의 보람을 느낀다면 나는 제아무리 화려한 언변으로 사로잡는데 그가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 침대에 눕길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지식이 쌓일수록 애석하게도 사람의 마음엔 오만함이 싹트기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나는 너보다 훨씬 우월하고, 그래서 너희에게 내 말은 정답이라는 태도를 가지게 되면 급기야 내담자를 내 지식의 침대에 눕혀놓고 마음대로 늘리고 잘라가며 희생시키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들 중 대부분은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어여삐 여기는 그 침대 위에서 결코 무사할 수 없다. 명확히 해야 할 것은 분명히 하되, 내가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새기기. 나에게 어떠한 사연을 가지고 찾아왔건 그 사람의 메커니즘을 존중해 주기. 그렇게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면 많은 부분이 저절로 해결된다. 그가 어떤 것을 가장 힘들어했을까? 그래서 지금 무엇이 가장 문제일까? 나는 판단하고 벌을 주는 사람이 아니기에 항상 답은 책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별을 보기 위해 망원경을 집어 들지만, 결국 답은 내 손안에 있는 값비싼 망원경이 아닌 하늘에 떠있는 찬란한 별들 중 하나이듯이.


그런 면에서 간호사가 아닌 군인으로서 현장에 존재하며 또 다른 배움을 얻는다. 우리 팀은 지식으로 내담자를 위한 판단을 내릴 때 응급한 상황이 아니고선 이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무게가 지워지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신중하게 판단한다. 때로는 그런 본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타인의 태도 자체가 내담자를 자연스럽게 바꿔놓기도 했다. 내 동료들은 질병에 관해 무수히 많은 시간 공부했지만, 환자를 질병 덩어리로 대응해서 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끊임없이 많은 이들을 어려움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어쩌면 군생활을 통해서 얻은 나의 가장 큰 소득이 이런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서 간호사로서 나는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다시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