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엄마
결혼식이 있기 전부터 결혼식을 하고 몇 년은 대면대면하면서, 시집살이라도 시킬까 경계하였고, 엄마여서 하는 잔소리여도, 시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일부러 더 꼬을 수 있을 만큼 꼬아서 들었다. 서운하실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가 더 중요했기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
그때는 지금이 올 줄 몰랐던 나는 엄마가 늙어가듯이 시어머니도 늙어갈 거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시어머니도 누군가의 엄마인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뵌 시어머니는 살이 많이 빠지셨고, 주름이 깊었으며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다 보니 손가락에 병이 생겼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집을 해주지 못한 한으로 버스비도 아끼느라, 무릎에 관절염이 생겨 수술을 해야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가까우면 가깝다고 할 수도 있고, 멀면 멀다고 할 수도 있는 사이인지라, 친자식처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낳아주신 엄마와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주신 두 번째 엄마로 점찍어 잘해보려고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하는 행동, 말 말고 '아들 가진 엄마는 그럴 수 있지'라고, 며느리로서 생각하지 않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기면, 그래도 낫지 않을까. 내 나이 여든다섯까지 살겠다고 하면, 여든다섯의 봄, 여든다섯의 여름, 여든다섯의 가을, 여든다섯의 겨울을 보낼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잘해보려고 한다.
우리 앞으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먹어요 내 어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