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온도

잠식

by 윤슬
“나는 물고기가 아닌데,
널 따라 바다에 왔어.
살기 위해 아기미를 달고서 적응해 갔어.
네가 원하던거니까. “


햇살이 닿은 수면 아래,

너는 나를 감싸 안았고

나는 그 온도에 안도했다.


처음엔 숨조차 쉴 수 없었지.

물은 차가웠고, 네 손은 따뜻해서 더더욱 놓기 싫었어.

몸은 여전히 공기 속을 그리워했지만

너의 바다에 머무르기로 한 이상,

난 천천히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가미를 달고, 물속의 숨결을 배워가며

살아가는 법을 익혀나갔다.


물은 어느새 깊어졌고, 나는 방향을 잃은 채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넌 가라앉는 나를 보면서도 잔잔하다고, 그냥 천천히 숨 쉬라고 했다.


피를 흘려도 괜찮으니 낚싯줄이라도 던져줘.

목이 졸려도 좋으니 그물이라도 던져줘.

손 끝이라도 닿게 해 줘, 잠시라도 숨 쉴 수 있게..


나는 어느새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배웠고,

익숙해질수록 잊고 있었다.

내가 원래 공기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라는 사실을.

나의 모든 것이 너에게 잠식되었다는 거겠지.


물속에 오래 머물수록 나는 점점 흐려졌다.

내 생각, 내 감점, 심지어는 내 이름까지.

너의 바다 안에서 흐르는 물결처럼 번져가고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끝나고

너의 세계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모르게 되었다.


차가운 물속 너의 온기와 손길을 느끼고

내 숨이 그 안에 스며들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마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나를 붙잡는다.


이제는 물 밖이 두렵다.

너 없는 세상, 산소, 자유가 낯설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물속에서 웃으며

너의 바다에서 천천히, 조용히 가라앉는다.


“난 그대의 물속에 얼마나 더 있어야 벗어날 수 있을까. ”


나를 얼마나 더 잃어서야 너는 나를 놓아줄까.

나는 나로 남으려 애쓰며,

여전히 너의 바닷속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