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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안괜찮아.

무언가 준비한다면 읽어 보시길

by 마님의 남편



분명 여기는 우리 집인데, 사람 키보다 커져 버린 커피 박스들이 방에 못 들어 가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빈식스드립백커피 6종 박스



이 박스 안에는 이제 곧 회사에서 유통할 드립백커피가 들어 있다. 박스가 6층 탑을 이룬 것은 드립백커피 6종을 모두 내가 집으로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냥 확인용 샘플만 몇 개 가지고 오면 되었는데, 이왕 협력사를 방문한 김에 택배비도 절감하고, 가족과 지인들 선물로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아무튼 며칠 내 선물로 사라질 커피들이지만 집안 가득 쌓여 있는 커피를 보니 기분은 마냥 좋다.



박스에서 샘플을 뜯고 빈식스커피들 중 로열로스트 드립백커피를 꺼내 시음을 했다.


“음… 역시 맛있다.”


평소에 자화자찬식의 긍정적인 사고로 사는 나이지만, 이 녀석은 오늘따라 더 맛있게 느껴진다. 십여 년 전 스위스에 출장 갔을 때 어느 초콜릿 가게에서 먹었던 그 밀크초콜릿 맛을 커피의 풍미가 제대로 나타내는 것 같다.



빈식스 로얄로스트 드립백커피, 식어도 맛있다고 아내가 좋아한다.



혹자는 ‘무슨 커피에서 스위스 밀크초콜릿 맛이 느껴지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커피의 풍미는 음식이나 과일 등의 맛에 대한 경험을 단어로 표현한 것이기에 사람들의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사람들의 성격 성향을 분류한 MBTI로 나를 분석해 보면 나는 전형적인 ENTJ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업무 성향은 이성적 판단에 더 중심을 두고 처리를 하는 것 같다. 이런 이성적 판단이 없다면 영리 목적의 사업은 성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란 건 아니다. 나름 감성도 풍부하다. 다만, 감성이나 주관적 판단에서 오는 리스크를 최대한 제어해야 사업 목적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사업이라는 전쟁에서는 승리해야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담은 영웅담 같은 이야기이라도 생기는 거다. 전쟁에서 실패한 장군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물론 실패한 경험담도 주의 깊게 듣고 반면교사를 삼아야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 스토리에 반응하고 승자를 기억할 뿐이다. 이건 스포츠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승팀이 상금을 가져가지 패배한 팀에는 국물도 없다. '졌지만 잘 싸웠어'라는 말은 그저 자위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업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크던 작던 창업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공이라는 유토피아를 먼저 꿈꾼다. 나도 그랬고 미래의 창업자들도 이것 만큼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그 이유는 좋은 꿈을 꾸는 것이 공짜 행위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반드시 성공을 통해 자기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공이란 말은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소망의 정거장일 뿐이다.


실패해도 안괜찮아

그래서 나는 사업을 시작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가정을 이루고 나이가 있는 지인들에게는 이 말을 더 강조하며, 실패하면 생길 수 있는 다양하고 무서운 상황부터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면 파산이나 회생, 신용불량 같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 같은 거 말이다.


물론 어떤 이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사업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굳이 감정 상하는 말을 굳이 하냐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이 말은 그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염려 해주는 마음이 담긴 진정성 있는 엔딩 메시지다. 그만큼 그들이 사업할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주의하고 또 주의하라는 당부하는 거다.


사업에 실패하면 경제적 피해나 불편한 인간관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긴다. 물론 청년들의 도전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어른들은 실패는 성공을 향한 시행착오의 과정이며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라고 하지만, 실패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맞고, 나는 사업하다가 생긴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실패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갑자기 이런 말이 왜 생각났을까? 아마도 새로 시작하는 커피 사업에 대해 나도 셀프 점검 차원에 긴장감이 필요해서 생각난 것 같다. 나도 사업의 실패는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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