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울면서 세상에 태어난 그날,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새하얀 눈을 볼 때면 기분이 마냥 좋다.
하지만 어느새 땅 위에서 더럽혀진 눈을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싫을 것 같다. 하얀색 눈이 사람들의 발이나 자동차 타이어 등에 수없이 짓밟히고 더러워져 본연의 깨끗함이 사라져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빈식스커피의 심볼도 하얀색 코끼리다. 이 로고를 만들 때 아내와 코끼리의 색상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던 그때의 기억이 새삼 스쳐 간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의 타당성 있는 컬러 컨설팅을 받으면서 하얀색의 매력에 대해 알아 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나는 쉽사리 하얀색 코끼리 로고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냥 백색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도 않았지만, 하얀 코끼리 로고가 내가 생각한 마케팅 방향성과 이미지 등에 잘 매칭이 안되어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얀색이라는 단순한 이유가 로고 컬러의 결정을 주저하게 만든 원인은 아니었다. 훗날 아내에게 이실직고하고 면책받은 솔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흰 코끼리는 불교에서는 굉장히 귀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동물이다. 불교의 존엄자인 석가모니의 모친이 태몽을 꾸었는데, 6개의 상아가 달린 하얀 코끼리가 자신의 옆구리에 들어왔다는 종교적 전설도 있었고, 특히 태국 및 동남아 등 일부 국가들 경우에는 이 하얀색 코끼리가 수호신 격으로 대접을 받기도 했다고 하는 배경 지식을 검토하던 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런 종교적인 이야기가 내 개인의 신앙 문제와 연관되어 신경 쓰이게 했다.
코끼리를 선물로
또한 고대 왕국 중 일부는 이 하얀 코끼리를 정치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당시 왕은 이 코끼리를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신하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본래 선물이란 좋은 것인데 왜 왕은 자신이 미워하는 그들에게 이런 선물을 했을까?
선물이 무엇이든 간에 왕이 주는 것은 개인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의 경우 좀 다른 문제가 있는듯 했다.
이걸 선물로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왕에게 받은 의미 있는 것이라 동물로 일조차 시키지 못하고 무작정 돌봐야 하는 비용만 막대하게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코끼리는 선물이 아닌 매우 부담스럽고 난처한 존재 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 같다.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에 대한 이런 역사적인 배경은 시간이 흘러 서구권의 경제계까지 전달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흰 코끼리는 비용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애물단지 같은 기업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브랜드를 론칭을 앞 둔 창업주 입장에서 향후 정체불명의 적들의 타겟이 될 수도 있는 이 단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애물단지
바로 이 단어가 나의 종교적 신념과 더불어 선입견 되어 로고 컬러를 정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불필요한 관점을 훌훌 털어 버렸지만, 그때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방면으로 너무 신경을 쓴 것 같다.
아무튼 코끼리의 로고 색이 하얀색이면 어떻고, 검은색이면 어떻냐? 커피만 맛있으면 되는 거 아냐!
따뜻한 디카페인커피를 한 모금 할때 왠지 코끼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겨울 밤이다.
빈식스 브랜드를 곧 론칭하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시간은 술술 갈 것이다. 그리고 지나버린 세월의 흔적을 따라 브랜드 리뉴얼은 할 수밖에 없겠지...
그때 실력 있는 디자이너와 인연이 닿아 하얀 코끼리 ‘크레이지 펀트’를 더 멋지게 업그레이드해 주고 싶다.
그때까지 열심히 파이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