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없는 아이

자유롭게 신발을 벗는 정민이

by 제롬

북적이는 시내 학교에만 근무했었다. 그러다 시골의 작은 학교로 발령이 났을 때 마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근무했었다. 발령이 났다는 말을 듣고 친한 선생님은 '좋은 학교야!, 생활지도가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생활지도가 필요가 없는 학교가 어디 있어!..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중학교 특수학급에서 근무하면서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전교생이 3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는말 생활지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건 꼭 작아서 만은 아닐 것이다. 생활지도가 필요없는 그런 순수한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이미 6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고 따로 생활지도라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안정되어 있었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은 장애, 비장애라는 구분도 없었다. 시골아이들의 순수함은 서로 다름을 넘어설 힘을 갖고 있었고 빈틈을 공동체의 힘으로 채워가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건 나에게 신기한 경험이었고, 마치 풍경화 속에 나오는 학교에 내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그때처럼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지체장애학교는 지적장애를 동반한 아이들이 많다.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을 때 중복장애라고 하는데 우리 반 정민이(가명)도 그렇다. 모든 아이들이 다르듯 같은 장애명칭을 가졌어도 모두 다른 특성을 가진 건 당연한 일이다.


정민이는 타고난 기질이 편안해 보이고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이 더해져 중학교 1학년이 가질 수 없는 아기 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정민이는 자가호흡이 어려워 기도에 인공호흡기를 끼우고 자기 몸집만 한 가정용 호흡기를 작은 카드에 싣고 다닌다.


생명유지 장치를 매달고 다니는 정민이를 보거나 스스로 수저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지체장애학생이 많은 우리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답을 내릴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반은 새로 입학한 발달장애 친구가 2명이 있어서 교과학습이 가능한 몇 안 되는 학급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2명의 친구와 정민이의 학습력의 차이는 5~6년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무엇보다 정민이게는 두려움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정민이는 앉자마자 우선 크록스를 벗는다. 나는 수업 전에 바른 자세를 갖도록 신발을 벗지 않고 발을 바닥에 붙이는 연습을 시키지만 어느새 신발을 벗고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유연하고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두발을 바닥에 닿게 하는 그라운딩 자세는 집중을 하고 학습을 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치려 했다.


정민이에게도 우선 바른 자세로 앉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잘 안된다. 다시 강조해서 단호한 어투로 말을 할 때 정민이는 해맑은 얼굴로 기도삽입으로 잘 나오지 않은 목소리로 '바르게 앉아요!'라고 따라 말한다.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나중엔 정황상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그리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크록스를 벗고 발을 의자에 올리고, 때로는 크록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논다.


다시 강조한 어투로 '신발을 벗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크록스를 다시 신고 '신발을 벗지 않아요!'라고 거친 숨소리로 자음이 겨우 들리는 발음으로 따라 말한다. 너무 해맑은 미소를 하고서... 정민이는 두려움을 모르는 아이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 말고는 몸에 다른 감정이 없는 것 같다. 두려움이 없는 정민이는 자신만의 루틴을 하듯 수업이 시작되면 과제에 집중하기 보다 신발을 벗는다. 마치 장난감을 꺼내듯...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인다. 특수학급에서 만난 아이들은 너무 큰 두려움으로 위축되거나 지레짐작 선제방어로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두려움을 경험한 아이들의 모습은 안쓰러울 때가 많다. 정민이는 다르다. 내 말이 중요하지 않다.


감정지능에서 주의와 감정의 조절이 학습의 핵심요소라고 보며 적절한 긴장감이 동기를 자극하고 집중을 돕는다고 했다. 두려움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를 가르치기 어려운 이유이다. 굳이 '안돼!'라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은 긴장해야 하는 거야. 내 말에 집중해야 해...라는 듯 무언의 압박을 할 필요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가르친다는 것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회마다 다르고 지금 우리 교실에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민이는 혼난다는 개념도, 누군가의 말에 순응해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다. 그가 자란 환경, 타고난 기질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애써 각성시킬 필요도 없다. 그런 환경이 지금의 특수학교이다.


적당한 긴장감과 두려움을 이용했던 나의 가르친다는 방식은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편안함, 여유로움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것을 익힐 수 있는가. 어떻게 주의집중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간디학교의 교가처럼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정적 사고와 신념으로 긴장하며 살아왔다. 이를테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거야. 잘해야 하는거야. 관계가 틀어지만 안돼... 지금에 와서 '못해도 돼, 편안하게 살아, 좀 친구가 없으면 어때...'라는 말은 나에게도 낯설기 때문이다.


특수교사라는 직업 덕에 아주 원론적인 고민을 다시 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으려면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은 진심을 기가막히게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기 때문에 나의 삶도 변화되길 바란다. 좀 못해도 돼. 편안하게 살아도 잘될거야. 너는 잘 될거야. 지금 맞는 친구가 없으면 애쓰지 않아도 돼. 언젠가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사람이 생길 거야.


교사는 어쩌면 자신에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려면 자신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아이들에게 할 수 있어라고 말하려면 스스로 용기를 내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로, 오늘도 잘했다~!! ㅎㅎ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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