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남긴 선물같은 숙제

내가 아직 건너지 못한 강

by 제롬

오늘 '학생사안보고'라는 공문을 상급기관에 보고했다.

학생부, 요즘은 생활인성부라고 한다.

생활인성부장의 업무 중 하나는 학생사안 발생 시 즉시 유선보고 후 공문보고를 해야 한다.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서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며 '우리 학교는 학폭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다만 학생사안을 보고해야 하는 일은 생깁니다'라고 말했다.


학폭도 일어나지 않는 학교에서 무슨 사안이 있다고 보고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인수받을 일이 많았던 시기에 하나하나 물어보지 못했고 학교폭력, 아동학대, 안전사고등이 담당업무이니 관련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전임 생활부장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다르게 사안보고로 학생의 죽음을 보고 하는 일이 생긴다라고 꼭 집어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 먼 얘기 같았다. 학생이 죽는다니 말이 돼... 하지만, 한번도 어보지 못하고 평생 남이 먹여주는 죽을 먹은 아이들이 드물지만 하늘나라로 가는 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는 게 더 기적 같은 생명도 있다. 지금 보면 이해되지만 그때는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업무는 자세히 메모하면서 인계를 받았지만, 사안보고 절차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다.


오늘.. 학생 정원에 변동이 생겼다.


전학으로 떠났다면 좋겠지만 아이는 하늘나라로 적을 옮겨갔다. 몸이 안좋아 입원한 지 오래되었고 숨 쉬는 것도 힘겨웠다고 하늘나라에 가서 편히 쉬길 바란다는 담당선생님의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병원에 오래 입원했던 순회학생이라 얼굴도 모르지만 그 아이의 사안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제야 사안보고 양식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사안 보고 양식은 학교폭력,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의 사안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공용양식이었고 상황을 시간까지 적어야 하고, 관련된 사람들도 자세히 적게 되어 있었다.


오랜시간 입원생활을 한 아이는 뇌병변을 가지고 태어났고 직접 원인은 폐렴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 애쓰며 살았듯 보고서에는 적을 내용이 많이 없었다. 즉시보고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나는 담당선생님께 언제 사망했는지, 사망소식은 누구에게 들었는지, 정확한 시간까지 기입해 갔다. 사망소식을 전한 엄마는 하루가 지나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다음날 아침 7시 58분.


날 오전 10시에 아이가 떠나고 하루가 지나 선생님께 연락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자 자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문뜩 나는 아빠의 사망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내가 생각이 났다. 아빠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며 차마 아빠가 죽었어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아 남자친구에게 빨리 와달라고 말하면서 울기만 했었다.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선생님께, 아이의 가여운 죽음을 전하며 미어졌을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말에 목이 메었다. 가벼웠을 그 아이 몸무게 만큼이나 가벼운 한 장짜리 사안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고개 숙여 입술을 깨물었다. 흐르는 눈물이 참아지지 않았지만 우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고개를 흔들어 보았다. 담담히 적어지지 않는 사안보고서를 겨우 작성하고 나서야 교무실을 나왔다.


준영이(가명)가 알려준 것은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소중한 그 생명을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이제 숙제가 남겨졌다.


준영이 같은 아이가 우리반에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첫돌도 안 되는 어쩌면 3개월 정도의 반사기능만 있는 뇌병변을 가진 민이가 휠체어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교실 안에는 나의 죄책감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준영이가 알려주고 간다. 살아있는 것은 소중한 거입니다요.. 지능이 높고 낮고,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 상관없이 생명이 붙어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삶을 나누고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배우고 성장할 수도 있고 없기도 해요. 하지만 사랑과 평화를 위한 행동은 멈추면 안 돼. 그건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도 해....요.. 선생님인데 그것도 모르냐는 듯...


지체장애학교에 온 지 3개월이 되어서 내가 놀란 순간은 자원봉사자로 온 어느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분들은 퇴직을 했거나 그 연배쯤 되었다. 내가 잘난 머리를 굴려 따지고 따져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그 분들은 몸으로 마음으로 민이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민이 오늘은 기분이 좋아?'

'우리 민이 웃는 게 천사네'

'우리 민이 오늘은 뭐 하고 싶어?'


나는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 건너지 못한 강을 그분들은 훌쩍 넘어선 듯 보였다. 네 가지 질문의 저자 바이런 케이티는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라는 책에서 "우리는 모두 정확히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얻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이를 보며 주저앉는 내 마음은 사실 나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민이를 보며 나도 모르고 확인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자꾸만 들쑤셔진다. 대충 믿는 척 살아가고 싶고 다른 곳에서는 잘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이 앞에서는 적나라하다.


사람들은 특수교사에게 힘든 일을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은 이런 직면의 순간들이 많다는 것을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배우며 성장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나도 학생이다. 나에게 선물같은 숙제가 남겨졌다. 기꺼이 하고 싶지만렵고 중요한 숙제.


나와 우리가 존재만으로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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