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른이 되어도 될까요?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은 아몬드 만한 편도체가 없어서 감정도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엇이 되어도 좋다.
해리포터처럼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도 되고, 아몬드의 주인공처럼 괴물로 불려도 상관없겠지만 현실 속 아이들은 매 순간을 감당해내야 한다.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는 많다. 모두 다 주인공으로 부족하지 않다. 아이들만큼 선생님의 이야기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그렇듯이..
우리교실엔 가슴이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다. 가슴뼈가 자라지 않아 내부장기도 성장할 수가 없다. 정기적 수술로 조금씩 크기를 넓혀가고 있지만 그것으로 자가호흡이 가능할만큼 폐가 성장해진 못했다.
아이만큼이나 성장하지 못한 가슴이 내게도 있다.
내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면..,
주인공 제롬이는 가슴이 자라지 않았다. 어려서 아빠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제롬이는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잘 듣고 해내고 싶었다. 아마도 8, 9살 보다 더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이어서 누군가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건 제롬의 존재감과 동일시되었다.
어린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어른들이 하는 말이니 당연히 자신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못 할 때가 많아질수록 작은 가슴에는 불안과 두려움, 자책이 스며들었다. 이 감정들은 너무 강력해서 늘 가슴을 콩딱 거리게 만들었고 몸을 경직되게 만들었다.
장면이 바뀐 드라마처럼 어느 순간 제롬은 특수교사가 되어 있었다. 한 번도 장애를 가진 아빠처럼 그런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속마음은 더 멀리 멀리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반전영화처럼 어느새 더 가까이 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모태신앙처럼 깊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본인만 몰랐지 자연스러운 결과였을지 모른다. 불가능한 전제 앞에 희미했던 불안과 두려움은 특수교사가 되어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젠 어른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감'이라는 것이 수많은 생각 중에 한 가지 일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작은 가슴이 미어질 때까지 일을 했다. 작은 쉼도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은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책과 죄책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롬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이 자라지 않은 어른이 되어 버렸다.
가슴이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체장애학교에서 만난 데이빗 때문이다. 데이빗은 가슴이 자라지 않아 자가호흡이 어려운 아이다. 인공호흡기를 기도에 직접 연결해 호흡을 하고 있었다. 신체 발달이 안되어 가슴이 자라지 않는 데이빗과 정서 발달이 안되어 가슴 속 마음이 자라지 못한 제롬이는 한 교실에서 만났다. 학생과 교사로.
제롬이는 언제나처럼 커지지 않은 작은 가슴으로 데이빗을 책임지려 노력했다. 몸은 어른이었지만 전전긍긍할수록 가슴은 더 굳어지고 쪼그라들었지만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데이빗은 작은 몸을 가진 아이였지만 마치 세상 다 아는 눈빛으로 제롬이를 물그러미 바라볼 때가 종종 있었다.
제롬이는 데이빗에게 물어봤다.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지는 데이빗은 숨을 천천히 고르며 제롬에게 말했다.
"선생님 몸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져요... 신기해요"
나는 놀라서 물어보았다.
"너는 그게 보이니?"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제롬이는 언제부턴가 몸은 그대로 있는데 영혼이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걷고 있지만 팔다리가 없는 느낌도 들고 몸이 녹아 바닥으로 붙는 것 같기도 했다. 몸은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반복된 죄책감과 무력감은 상실감과 공허함으로 확장되었고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까지 심각해진 시점은 잘 알고 있었다.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 같은 아이, 별똥별을 만난 다음이었다.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집착으로 변해버린 지점을 기억하지 못했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자만한 순간 아이의 자해 행동에 얼마 남지 않았던 중심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 뒤였던 것 같다. 종종, 어쩌면 자주 몸이 이탈하는 것을 느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제롬을 무너뜨렸다.
새로운 학교에 와서 만난 데이빗은 작은 가슴에 주렁주렁 뭔가를 달고 있었다. 기도삽입을 통해 호흡을 하기 위해 몸집만한 카트에 인공호흡기를 싣고 다녔다.
호흡에 집중하듯, 일상을 명상하듯 천천히 살아가는 게 익숙해 보였다. 천천히 살아가는 데이빗은 그래서인지 남다른 무엇을 보는 것 같았다. 걷기만 해도 심장박동이 150이 되어서 걸음도 말도 빨라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데이빗은 입자가 아닌 파동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 같다.
어느 날 데이빗은 제롬에게 뜬금없이 말했다.
"선생님, 어른..이 되..세..요." 나는 웃었으며 말했다. "나는 이미 어른이야."
"진짜 어른은 할 수 없는 것을 무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래요"라는 말을 언제가 들었던 것이 이순간 떠오른 것은 데이빗으로부터 나오는 순수한 파동때문이었을까.
그 말은 금세 공기 속으로 사라졌는데 그 순간이 박제되었다. 굳어진 가슴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제롬은 그때부터 무서워졌다. 세상 비밀을 혼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책임지지 않고 살아가도 된다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가슴은 미세한 균열을 만들며 반가워하고 있었다.
제몸은 그 말을 들은 이후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정말 그래도 될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누가 들을까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내가 할 수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걸까?'
'같이 아파하는 것만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정말 그냥 내 삶을 살아도 되는 될까?'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막았다.
'정말 그대로 될까?'라는 의문은 정말 그러고 싶다는 바람과 절박한 용서가 묻어 있었다.
"이제 그래도 돼. 이제 그대로 돼. 이제 그래도 돼" 작은 가슴으로 나타난 데이빗은 제롬의 또 다른 모습 같았다. 가슴에 뭔가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낯설고 떨림이 있지만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어른이 되는 허락을 받은 것처럼,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존재했던 지난 허물을 벗고 새롭게 날아오르고 싶어졌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나에게 삶이란 처절하게 외롭고 처절하게 두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소설까지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성장 소설같은 이야기가 나에게도 필요해졌다.
지난 6월 대상포진으로 온 신경이 얼굴과 머리를 타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괜찮다고 다독이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나는 그것이 위로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몸은 나의 거짓 위로를 알고 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무서웠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미세한 신경이 지나가는 느낌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러다 머릿속 신경하나 끊어지거나 막히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느껴졌다.
'정말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서 '정말 이대로 살다 죽을래?'....라는 질책으로 이어졌다.
모든 것은 필요한 순간 만난다는 어느 책의 구절이 자주 떠올랐다. 나는 이곳에 왜 오게 되었을까? 내가 발령받기에는 지역점수가 있는 학교여서 어려운 곳인데 발령을 받았다. 아이들은 내가 어떻게 해도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없고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중증 지체장애였다.
그럼에도 나는 습관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생각이 갔고 마음을 써도 변화할 수 없는 것에도 마음을 쓰여졌다. 그 깊이가 예전과 달랐는지 아니면 이제 나는 힘이 없어졌는지 점점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몸이 점점 이상했다.
고통이 찌르듯 몸을 타고 흐르면서 그제야 멈춰서게 되었다. 신경계 통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의 삶의 패턴들이 반복되는 것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죄책감이 느껴져서 더 깊이 괴로워했고 미안해했고 뭐든 더 할 것이 없는지 생각했다.
장애를 가진 가족을 가졌던 나는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해야만 했다. 그것이 나의 책무 같았다. 내 마음은 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았다.
정재승 교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무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거예요"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8살 그때처럼 아빠를 챙기는 방법도 모르겠어서 무력감에 하늘이 무너진 것 같던 마음은 여전했다.
이젠, 이 무력감을 벗어버려도 되는 건가?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길 바란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되는 걸 허락해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