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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허리야!

마흔아홉 서핑이 하고 싶어서

by 제롬

왠? 서핑이야!


'서핑하러 발리로 갈 거야'라는 말에 남편은 눈이 똥그래진다. 예상과 같은 반응이 재밌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선택한다는 건 나조차 낯선 일이라 말하면서 심장이 쪼그라든다. 그럼에도 최대한 고개를 들고 눈을 피하지 않고 원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던 사람인 양 호기롭게 말했다.


'나, 서핑하러 갈 거야!'


남편의 대답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그래라~'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애초에 그런 고민도 없었다. 남들에게 보기 좋은 것, 남들이 원할 것 같은 행동들로 내 삶을 채워왔.


지금껏 '해야 하는 것들'속에서 살아왔다는 답답함과 후회가 울화통으로 모아져 있었던 것인지 나를 무서울 정도로 과감해져 버렸다. 아주 결연하게 말했지만 남편과 친구들은 웃으며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말했다. 허무할 정도로. 정작 검열은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운동도 안 하잖아!

허리도 아프잖아?

마흔아홉, 이제 와서 왜 서핑이 하고 싶은 거야?

하던 대로 해~


나는 단호함을 보이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따스한 수용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껏 수고했어...'

조용히 마음에 시선을 두니 금세 마음속 아우성이 멈추는 것 같다.


이제 내 마음을 알아주겠어. 하고 싶은 거 다 해!



베르샤체 립스틱을 버리던 어떤 날. 뭔가 이상하긴 했다. 친구가 신혼여행으로 사다 준 선물을 받고 마음이 이상했다. 또 다른 어떤 날 샤넬 파운데이션을 선물 받았을 때... 또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유통기한이 다 지나도록 사용하지 못하고 선반 위에 놓아두었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소소한 선물도 내 것으로 받지 못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슬프거나 무섭거나 힘든 감정에 익숙해지면 행복한 기분이 들 때 두려움이 몰려온다. 기대는 실망을, 행복은 외로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내 것이 아닌 느낌.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어색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행복한 느낌을 한편에 치워두고 곁눈질을 하며 바라보았다. 슬쩍슬쩍 기뻐하고 욕심이 났다. 나도 내 것으로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어진 화려하고 예쁜 케이스의 물건을 버릴 때마다 내 행복도 그렇게 버려졌다.


행복이라는 게 나에게 그랬다.



지난 6월., 잠을 잘 못 잔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대상포진이 생겼다. 신경을 타고 흐르는 고통 속에서 허무함이 몰려왔다.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 잘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고, 그보다 더 알게 된 것은 상대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과 연수, 전문 상담 공부와 개인상담을 통해 아는 건 많아졌는데 안다고 저절로 해결되진 않았다.


내 마음이 변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세상 진리 같은데 나는 알아차림과 체념 사이에서 살았다. 그 경계에서 떠나가지 않던 생각은 "나는 제대로 해야 해"라는 생각이었다. 나의 제대로에는 여러 기준들이 있고 이상적인 생각과 올바른 가치들은 덕지덕지 묻혀 놓고 내 마음은 외면했다.


"교실에서 좋은 선생님으로 있어야 해"


이 듣기 좋은 말은 늘 좋은 아이여야 했고, 좋은 딸이어야 했던 지난 삶의 연장선이다. 늘 어려웠다.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고 상황에 좋은 것들을 한다는 것은 기준도 목표도 모호하고 끝없는 것이어서 결국 무력감과 죄책감으로 마무리되었다.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이 반복되자 우울감과 상실감, 자책감이 다시금 찾아왔다. 글조차 쓰지 못하는 시간이 두 달간 지속되었다. 다행히 이번엔 진절머리가 났다. 이제 견딜 힘도 애쓸 에너지도 없어져서 그랬을까 이제 지긋지긋했다.


마흔아홉은 견딜 힘도, 이유도 없어져 참 다행이다.


문뜩, 나에게 물으며 웃음이 났다. 뭣이 중헌디?


고급진 노예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거야? 삶을 향유하는 그런 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잘 쓰이고 싶어 거야. 밤새 나무에 묶어 놨던 낙타가 아침에 그 끈을 풀어놔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나도 어딘가 묶여 있는 거 같았다.


이제, 나도 자유롭고 싶다.


그것은 유치하게도 언젠가 정재형과 엄정화가 함께 나온 유튜브를 보고 나서였던 것 같다. 참 자유로워 보인다.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 한 것만으로도 그들의 자유로움을 내가 따라갈 순 없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서로가 추구하는 삶과 일을 함께 나누는 우정도 부러웠다. 언제 봤는지도 잘 모르는 그 영상이 마음에 남아 있는 줄도 몰랐다. 짧은 숏츠보다 더 오래 부러움이 마음에 남았다.


내 것 같지 않은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쯤 알고리즘을 타고 나타난 정재승교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무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숏츠. 인생이 전환점은 책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삶은 그 순간 이후로 변화되었다. 순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래도록 기다렸는지 모른다. 내가 정말 내 삶을 선택하기를..


나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오늘부터 어른 1일!


'뭐래?'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지만 혼자 하는 선언은 너무 진중해서 웃길 정도다. 이제 안 되는 것에 미안해하지도 무력감에 땅 끝으로 꺼지지도 않고 나는 자유롭게 내 삶을 살아갈 거야. 정말이야...


누가 말리냐?라는 말이 동시에 올라왔지만 더 이상 흔들릴 시간도 아까운 나이다. 내 안의 감독관은 시시때때로 나를 검열한다. 감독관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나의 세상을 만들었지만 자유롭지 못했다. 한 걸음도 나의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정말 오늘부터 1일이 된 연인처럼 설레었다. '어른 1일'이 된 것은 반복된 무력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에 올라탄 것 같았다. 한순간 마음이 이렇게 되다니 신기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나는 왠지 자유로움에 올라탄 것 같았다. 파도에 기대에 서핑보드에 올라타는 것처럼. 그런 상상 때문이었을 까 그날 밤 남편에게 말하지도 않고 항공권을 끊었다. 서핑이 하고 싶어서..


그냥 하고 싶어서..


여행을 마치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만족하니?"라는 만족도 조사가 남았다. 주관식이어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허리 아파 죽을 뻔했다는 말이나, 그럼에도 웜스톤 마사지로 다시 힘을 냈다는 것도.. 작은 서핑보드 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도 발란스였다는 것이 삶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었다.. 일렁이는 수많은 감정들이 보드를 부여잡은 손바닥의 상처처럼 나에게 남아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부러웠던 감정들은 뿌듯함으로 변해있었다.


자연이 만들어준 파도에 기대에 서핑을 하던 날의 자유로움과 보잘것없는 미약함이 반가웠던 이유도 잘 모르겠다. 서핑을 하며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그 단순함에 가볍기도 하고... 단순한 일상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서퍼의 말에 할 말을 잃기도 했다.


그 많은 순간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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