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같던 할머니가 떠났다.
그저 공항을 간다는 것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이제 할머니와 이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된 것인지 설레었다. 우리는 봉고를 빌려 고모, 작은 아빠, 사촌들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갔다. 나는 난생처음 보는 공항의 웅장함에 압도되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보느라 신이 났다. 사촌 동생과 나는 여러 번 에스컬레이터를 탔고 멀미가 날 때쯤 멈췄다. 미국에 사는 사촌 언니는 할머니의 수속을 하느라 바빴고 고모나 삼촌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제 떠나는 것에 심정이 복잡해 보였다.
정작 나는 엄마처럼 키워주던 할머니가 떠나가는 것에 무감각했다. 이별이 실감 나지 않았다. 상상하지 못하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에 신나 하고 있었다. 이내 시간이 되었고 할머니는 티켓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가슴이 내려앉았다. 할머니 손을 붙잡고 놓을 수 없었다. 고모는 이러면 할머니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갈 수 없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 말에 나는 손을 놓았다. 어떻게 나를 두고 떠날 수 있냐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한참 후였다. 그 뒤로 인천에서 집으로 오는 세 시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집에 오니 노을이 마루에 드리워졌다. 마루에는 학교에 다녀온 오빠와 아빠가 앉아 있었다. 세상 어느 것보다 메말라 보였다. 기억 속 장면은 생명력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두 사람은 앉아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다. 눈물이 그렇게 났음에도 나는 아직 현실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가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순간에 애착의 대상이 없어진 나는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밤에는 유령이 나와 나를 쫓아다녔다. 도망가도 도망가도 결국에 잡혔다. 잡혀야 이 꿈이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너무 무서워 매번 최선을 다해 도망 갖다. 다리가 이불 밖으로 나오면 잘릴 것 같아서 움츠리고 잠을 잤다. 몸은 오래도록 이 시간을 기억하게 되었다. 몸의 긴장은 쉽게 내려가지 않았고 나는 긴장은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두 마음을 쓰며 살게 되었다.
무섭거나 화가 나거나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자주 왔다 갔다 했다. 순식간에 화가 났다가 힘이 빠지거나 너무 두렵다가 금세 무력해지는 느낌들이 자주 마음을 오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표현하지 못했다. 이 마음들은 내 한쪽 마음에 늘 자리하고 나는 다른 것들을 밖으로 표현했다. 그 상황에 어울릴만한 감정들을 표현했다. 주변이 즐거워 보이면 즐겁게 놀았고 심각해 보이면 함께 굳은 표정을 했다. 나는 영 관심이 없어도 함께 몰두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떤 마음이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진 못했다. 그게 상황에 안 맞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너무 심각하거나 힘들거나 절망스럽거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세상이 아무리 심각하거나 슬프다 해도 내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서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순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니 말할 생각을 안 했다. 굳이 내 짐을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내 어둠이 상대에게 묻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