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참는 연습을 참 많이도 했다. 부모들은 자식을 참을성 있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교육들을 시킨다. 예를 들어 아기들 앞에 간식을 두고 부모가 눈을 비운 사이 참고 기다리느냐 먹어버리느냐 에 따라 참을성이 있는 아이, 없는 아이로 나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참 참을성 하나는 없었다. 성격이 불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을까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내가 ADHD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 아빠가 건강식품에 발을 들인 하나의 이유라고도 한다. 아빠는 건강식품을 거의 찬양하는 수준이다. 내가 어릴 때 건강한 몸이 아니었어서 항상 아프고 아토피와 피부질환을 달고 살았던 거 같다. 지금도 조금만 건조하거나 피곤하면 피부가 까슬까슬해진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건강식품을 잘 먹어야 해’라고 하신다. 내 키가 168이지만 어릴 때 한의원에 가서 미래 키를 잰 적이 있다. 충격적 이게도 158이 나와버려 엄마는 절대 우리 딸은 키 작으면 안 돼라고 해 비타민을 더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습관으로 아침저녁으로 항상 챙겨 먹는다. 사람은 내성이라는 게 있다. 약을 계속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일정치만큼 먹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이제 비타민은 내성이 생겨서 먹으면 덜 피곤하고 안 먹으면 더 피곤하고 이런 걸 못 느끼겠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 교수님들을 많이 상대했다 보니 물론 지금도 상대하고 있지만, 괜히 무서운 선생님께 레슨을 가면 겁부터 먹어 어떤 말을 들어도 참았다. 눈물 나게 서러운 말을 들어도 참았고 악기를 전공하는 것은 참는 연습을 동시에 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만. 사실 참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인간이라면 졸리면 자야 하고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울고 싶다면 울어야 하고 웃고 싶다면 웃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근데 언제부터 나는 참는 게 참지 않는 것보다 쉬워졌을까. 분명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밖에 나와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이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연애에서도 똑같다. 서운한 게 있다면 말을 해야 한다. 고마운 게 있으면 말을 해야 하고.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는가. 참고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다. 졸리면 자야 하고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울고 싶다면 울어야 한다.
요즘 들어 내가 ‘아 옛날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조금 성숙해졌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참지 않는 것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그냥 넘어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치유될 수 없다. 이것은 모든 관계에서 적용된다. 가족, 친구, 연인, 주변 사람들. 나를 위해 참지 않는 연습은 꼭 해야 한다. 묵혀놓은 상처는 언젠간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있으니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참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모두 졸리면 참지 말고 자기, 화나면 참지 말고 화내기, 울고 싶을 땐 울기, 힘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소중한 내 인생을 예뻐하며 살기. 이것만 연습해 나가면 적어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글 이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