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의 여정.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경험을 한 일 년이었다.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 에서 시작해 내가 이것을 그래도 해야겠구나 라는 경험을 많이 했던 순간들이었다. 보스턴 심포니 오디션을 두 번 봤지만 두 번 다 슈퍼파이널에서 마지막 관문에서 떨어졌다. 그 후 휴스턴심포니 부악장 자리를 시험 보았는데 그것도 슈퍼파이널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많은 발전이었지만 눈앞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거의 다온 순간을 놓쳐버리니 내가 참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각되었다.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오디션으로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칭찬들은 계속해서 동정으로 들렸왔다. 뭘까, 그냥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탓했다. 물론 내가 부족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침대에 누워 생각만 하고 과거만 생각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문을 박차고 운동을 하러 갔다. 쉬지 않고 한 시간을 뛰다 보면 잠깐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지만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 순간부터 그때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내가 뭘 잘못했을까, 뭐가 부족했을까 끊임없이 생각했다. 악기도 손에서 놓고 쉬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눈을 떠서 눈을 감을 때까지 책만 읽어나갔다. 읽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증표같이 느껴졌다. 복잡하게 짓눌린 마음을, 과거로 꽉 막혀 있던 나의 머리와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가게 만들어 주는 일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실패했을까? 나는 왜 그들이 생각하기에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까? 안 먹던 우울증 약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속이 아주 더부룩했다. 머리가 아프고 누가 두피부터 찢어 갈기는 기분이었다. 역시, 우울은 약으로 해결이 안 된다 (나의 생각이다).
한 달을 그렇게 뛰고 읽고 잘 쉬고 좋은 사람 옆에 있다 보니 복잡하게 엉켜있고 짓눌려 있던 나의 생각과 마음이 후련해졌다. 여러 음악들도 들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말러 그리고 슈만을 제일 많이 들었을까 싶다. 부모님께서 항상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겸손하고 조용하라. 처음에 겸손이라는 것은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굽신거리고 나를 낮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겸손은 전혀 다르다. 나에게 겸손이라는 것은 이제 내가 경험했던 실패를 인정하고, 나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실패했지? 내가 어떻게 실패를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침대에만 있으며 눈물만 찔찔 짠 나 자신이 너무도 오만했다. 실패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자체가 나의 부족함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인지한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겸손함 인 것이다. 그 부족함을 이제 무한한 가능성으로 만드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목표이다.
이모의 추천으로 ‘ Future self ’라는 책을 읽었다.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동안 나는 무한한 목표를 가지고 정확한 추진력으로 다음 목표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실패를 눈앞에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것을 통해서 나의 다음 가능성을 보았고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가 책임져 줄 인생이 아니고 내가 책임져 나가야 하는 인생이다. 내가 제일 행복한 것을 하는 게 나의 목표라면 행복이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 스케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귀찮고 힘들 때가 있지만 우리 집 현관문에는 이제 한 글귀가 쓰여있다. ‘애벌레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비로 변했다’ 그리고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2-13. 오랜만에 글을 쓰니 살 거 같다. 너무 오랫동안 백지로 살아왔지만 이제야 적어본다. 다들 실패와 겸손으로, 많은 감정들로 하루가 빛났으면 좋겠다. 안녕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