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제나 Dec 31. 2020

컨피던스 맨의 직업윤리

애니 <그레이트 프리텐더>


 다들 그렇듯이 내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보는 화면 또한 홈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기보다 시리즈를 시작하는 마음을 먹는 데에 시간이 걸린 달까.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 너무 무거운 것은 피하고 싶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우면 아쉬우니 저절로 신중해진다.


 <그레이트 프리텐더>는 홈 화면을 돌아다니던 와중에 예고편이 흥미로워 별다른 고민 없이 클릭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비교적 짧아 드라마에 비해 쉽게 손이 갔다.

 (같은 맥락에서 <비스타즈>를 보고 싶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


https://www.netflix.com/kr/title/81220435


 예고편을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색감과 배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사기라는 범죄를 다루는 여타 애니들에 비해 색감이 다채롭고 밝다. 타겟이 마피아, 왕자 등 스케일이 큰 만큼 다양하고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해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그레이트 프리텐더>의 독톡한 그림체와 색체는 이 세계가 그림이라는 것을 전혀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건물, 하늘 같은 배경을 실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효과가 <그레이트 프리텐더>의 소재인 ‘사기’와도 닮아 있다.


 지금부터의 내용은 작품 리뷰이기에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불가피하므로 해당 작품에 흥미가 있다면 이 작품을 보고 오길 추천한다.     


CASE 1 로스엔젤레스 커넥션

 앞서 살짝 언급했듯이 <그레이트 프리텐더>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일본의 사기꾼인 에다무라가 로랑을 만나 컨티던스 맨을 시작하게 된다. 각 에피소드들은 사기 행각과 각 인물들의 과거사가 담겨 있는데, 로스엔젤레스 커넥션은 그 중에서도 주인공인 에다무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다무라는 일본의 사기꾼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서 돈을 빼낸다. 그는 한 외국인(로랑)을 타겟으로 사기를 치려다 되려 사기를 당하고 만다. 에다무라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외국인 로랑을 따라 로스엔젤레스로 떠나고 그의 사기극에 휘말리고 만다.




 <그레이트 프리텐더>의 가장 큰 재미는 스펙터클한 사기극이다. 그들의 사기 행각은 전 세계를 누비는 만큼이나 기상천외하지만,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는 요인은 주인공 에다무라의 시선에 있다. 이 에피소드는 주로 에다무라의 시선에서 사건을 전개한다. 로랑이 에다무라를 속일 때마다 시청자 또한 그에게 속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한 화에도 몇 번이나 놀리듯이 전개되는 사기와 반전에, 차라리 예측하기를 포기하려 하지만 우리는 무심코 다음을 예상해버리고 만다. 무조건 반사처럼 하지 않으려 해도 해버리는 즉각적인 예측을 피할 수 없고 또다시 로랑에게 속아 넘어 간다.

 에피소드를 보는 동안 우리는 순진한 에다무라, ‘에다마메’가 되어버린다. '에다마메'의  면모는 그의 첫 등장인 HOLLY WOOD 간판에 매달린 모습으로 예견된다. (불쌍한 에다마메는 Y의 끝에 매달려 있다.)





 로랑이 이끄는 컨피던스 맨들에게는 몇 가지 룰이 있다. 일당들은 필요에 따라 모이고 또 흩어지지만 서로의 목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사기극을 벌이는 상대는 일반인이 아닌, 사회의 악이 되는 검은 돈을 모으는 사람들에 한한다. 한 마디로 그들은 글로벌한 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한 의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애초에 의적 자체가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존재이다. 한 개인이 선과 악의 판단을 한다는 문제는 제쳐둔다해도, ‘사기’라는 범죄를 이용하여 처벌과 대응을 하는 것은 악을 이용하여 악을 처단하는 모순을 품고 있다.


  게다가 <그레이트 프리텐더>의 일당들은 홍길동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나눠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기친 돈을 자기들끼리 1/n로 나눈다. 좀처럼 부각되진 않지만 그들의 목적은 결국 이익인 것이다. 타겟만 검은 돈일뿐, 의적이라고 보기엔 그들은 너무 속물적이다.


 하지만 일당들은 자신의 입으로 의적이라고 칭한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책임을 강요하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다. 다만, '사기'라는 자신들의 생계수단에 의해 피해를 받는 이들이 아무 죄 없는 소시민은 아니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의식은 의적이라는 거창한 사명보다는 오히려 직업윤리나 직업의식에 가까워 보인다.




 로스엔젤레스 커넥션에서 에다무라는 모든 사기극이 끝난 뒤 로랑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몇 년만 기다려 줄 수 없겠냐고 묻는다. 그 사이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 경찰에 자수하며 사기극으로 얻어낸 돈을 내놓는다.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교도소에 제 발로 들어가 처벌을 받는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처벌받는 주인공들은 낯설지 않다. 악한 행동을 일삼는 악인 주인공의 말로가 교도소나 죽음인 경우는 익히 볼 수 있다. <그레이트 프리텐더>의 경우, 이것이 첫 번째 에피소드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는 어째서 자진하여 교도소로 들어가는 것일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내놓으면서까지. 에다무라는 로랑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사기를 완전히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이다.


 에다무라는 인생을 망쳐놓은 주 원인이 사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벌었다. 검은 돈에만 손을 대는 일당들과 달리 에다무라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 자신을 불행으로 이끈 사기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린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직업윤리도 갖추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발로 감옥을 향해 걸어간다. 에다무라가 자수를 한 것은 이 일당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격조건을 갖추기 위해서인 것이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이러한 해석도 바로 다음 CASE부터 완전히 뒤집히지만 말이다.)




 물론, 작품을 감상하며 타협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인 피규어로 뽑는 장면은 한국인으로서 납득할 수 없었고, CASE2에서 아비가 가진 이라크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쉽게 풀어내고 용서하는 전개는 특히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글로벌한 배경에 어울리게끔 영어 발음도 좀 더 기깔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영어가 나오는 장면은 CASE1 밖에 없지만 에다무라는 물론, 외국인인 로랑마저 일본식 영어 발음이다 보니 사기를 치는 완벽한 컨피던스 맨의 특성이 잘 살아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영어로 대화한다는 설정인 만큼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더빙하는 것이 훨씬 작품성을 살리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사건을 전복하는 전개와 작화 등에 있어서 <그레이트 프리텐더>는 수작이라 말할 수 있다.

 본인이 로랑에게 농락당하는 에다마메가 되어도 좋다면, 여느 날처럼 넷플릭스 홈에서 헤매고 있다면, <그레이트 프리텐더>를 클릭하여 전 세계를 누비는 컨피던스 맨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P.S. 일당의 조연인 시온 여사가 등장해서 그런지 한국어와 한국어 간판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게 된다면 한 번 체크해보시길.



사진참조 : https://www.greatpretender.jp/ 


작가의 이전글 청첩장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