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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아 Sep 04. 2024

[공정여행]_하남

20240901

9월 1일 하남에 방문했다.

원래는 간디학교의 교장선생님을 만나러 제천에 있는 학교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정 문제로 하남에 소재한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학교를 방문하지 못해 굉장히 아쉬웠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시설과 배움 방식, 지역과의 유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여태까지의 공정여행에서 미달했던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달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 방문하려던 의왕지를 가지 못하게 된 점도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하남에 나무고아원이 있다 하여 방문할까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무고아원의 목적은  도시개발사업으로 버려질 나무들을 옮겨 심는 것이었는데, 환경을 생각한다면 개발을 지연하고 자연 그대로와 조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내게는 그다지 의미 있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라 느껴졌다. 즉 환경 보호와는 조금 상반되는 목적성을 띌뿐더러 자칫하면 이전에 방문했던 무장애숲이나 습지와 주제가 겹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결정한 장소는 선성군 묘역이었다. 이곳은 하남 덕풍동에 위치한 묘였다. 주변에는 관광지라 할 것도 없었기에 그냥 하남이라는 도시의 길거리를 걸으며 자연스러운 풍경을 구경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내가 원래 지내던 동네가 아닌 아주 다른 지역의 동네를 마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다른 지역을 가도 방문하기로 점찍어 두었던 장소만 이곳저곳 쫓아가기 마련이지 여유롭게 걸으며 발길 가는 대로 산책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번 여행의 목표는 선성군 묘역과 하남 거리기행 그리고 간디학교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한 학교와 지역의 유대 알아보기 정도가 되겠다.


9월 1일 당일, 미금을 거쳐서 약속장소까지 도착하는 데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는데, 일찍 나왔던 탓에 약속 시간보다 2시간이나 이른 11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한 점이 생겼다. 내렸던 정류장은 이상하리만큼 깨끗하고 한산했던 반면 시내로 들어갈수록 오래된 건물들이 가득 모여 있었으며 동시에 늘어난 노년층이 눈에 띄었다. 그와는 상반되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수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학원도 많고 학교도 근처라 나가기만 하면 또래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어색함이 느껴졌다. 나아가서는 경기권이 맞나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재개발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꽤 부피가 있는 큰 건물들도 흉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며 동네 곳곳에서는 담배 냄새와 하수구 악취가 났다.


원래도 길치 기질이 있었지만 이 날따라 뭔가 들린 것일까 싶을 정도로 헤매었다. 위성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절벽을 맞닥뜨린다거나, 보도블록을 따라 걷다가 막다른 곳에 도착한다거나. 유난히 길을 잘못 드는 일이 많았다. 나중에는 근처 학교를 가로지르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오 분 거리를 다시 돌아와야 했다. 결국 몇십 분의 긴 걷기 끝에 선성군 묘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 이무생과 그의 부인 정 씨, 김 씨, 한 씨를 비롯 그의 후손인 병산군, 지산군, 풍산부령, 이원군, 대구도호부사, 이준도 동복동 등 선성군과 종문 10 여기의 묘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선성군 신도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제작된 여러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안치되어 계신 선성군의 본명은 이무생이며 조선시대 왕자 묘의 규모나 규범을 참고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며 동시에 석물의 변천과 형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동시에 하남시의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단다. 묘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밖에서 볼 수 있도록 정면으로 길을 내어 두었다. 오른쪽에는 묘역을 관리하는 관사가 있었다. 청색 기와와 잘 조경된 작은 덤불들의 조합이 어딘가 청와대를 연상케 했다. 지금 와서 사진으로 보면 또 아닌 것 같은데 직접 보며 느낄 때와는 다른 기분이 든다. 정종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신기한 정보를 하나 발견했다. 정종의 둘째 부인의 차녀가 해주 오씨에게로 출가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내가 해주 오 씨이기 때문이다. 성씨 안에서도 향파가 갈리므로 자세히는 따질 수 없지만 익숙한 단어가 나와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묘를 볼 때면 그 주인이 어느 누가 되든 간에 항상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어릴 적에는 묘를 볼 때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죽으니 지구가 무덤으로 뒤덮여 버리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걱정도 해 본 적이 있을 정도이다. 실은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죽으면 모든 게 끝나고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이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묘를 만들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관련한 업적과 이야기를 계속해서 거론하는 것을 보면 죽은 이들도 산 자와 다름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남긴 것들을 통해 아직까지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보자면 사람 간에는 죽음이 무효한 연결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이는 제사를 지낼 때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허공에 잔을 바치는 것이 아니므로 그 행위를 할 때만큼은 잔을 받을 상대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선성군(이무생)은 마땅한 업적이 없어 그다지 각광받지 못한 듯했다. 검색을 하려 해도 배우 이무생과 이름이 겹쳐 미리 보기에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묘 이름에 선성군이 들어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곳은 다른 묘와는 달리 넓고 깨끗한 것에 더해 고라니나 고양이, 까치도 드나들어서 전과 같은 출처불명의 불안감이 들지 않아 좋았다.


약속 장소인 청소년문화의 집까지 걸으며 거리를 구경했다. 어느 시대에서 멈춘 것일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돋보여 신선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색감도 쨍하고 분위기도 밝아 별 것 아닌 것도 예쁘게 보여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



평소 보던 것이 아닌 새로운 풍경을 본다는 게 상상 이상의 자극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은 안정감을 주고 그로서 축복이지만 동시에 쉽게 질린다. 매일 등하교를 하며 같은 풍경을 보는 것은 자칫하면 우울한 루틴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동네에서의 발 가는 대로 가는 길거리 산책이란 고요하고 개운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넓은 장소에 사람이 없어서 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복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다른 곳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는 기분전환쯤으로 생각하고 내 주위에 있는 사물들의 어색함을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사계절에 따른 변화를 느끼기 위해 매달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나무의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색 잎이 나왔으며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이 담겼고 겨울엔 소복한 눈 때문에 눈이 아플 만큼 하얘 보였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사진은 종종 보다 보면 가지가 하늘에 금을 낸 오묘한 착시까지 더해져 나중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이 다 되어 센터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에서 많게는 중1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화를 읽고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다. 이어 교장선생님이 도착하셨고 가벼운 통성명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장선생님은 들리는 바와 달리 매우 인자한 인상이셨고 어투도 친절했으며 유쾌함도 지니고 계셨다. 무뚝뚝한 분일 거라 오해했던 내가 다 죄송스러울 지경이었다. 인터뷰 내용에 대해 소개하기 전 먼저 간디학교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안교육을 실행하는 중고등학교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기관이라 할 수 있겠다. 나도 대안학교인 이우를 다니는 입장에서 간디와 이우가 어떠한 차이를 가졌을지, 일반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배움이 무엇일지,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계속해서 언급되었던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매우 많았다. 간디학교를 시작할 당시에 어떠한 희망을 가졌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비폭력 저항 생태 경제 자립주의라는 방대한 느낌의 가치관으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간디의 정신에서 물려받은 설계였던 것이다. 말씀에 따르면 아이들은 현재 공동체 파괴 상태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 채 진로설정 이슈로 방황하며 내면의 폭력성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자립 공동체를 통해 함께 살아감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부에저 정한 치수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대안교육 또한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듯 보였다. 국가는 내신망을 통해 평가의 권한을 가졌고,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교육을 편성할 수 있는 것은 대안학교의 의의라 하셨다.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할 수 있었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무너져가는 상태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사교육의 영향 범위뿐만 아니라 자퇴학생이 급증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학교에 앉아 의미 없는 교과를 들을 바에는 차라리 일찍 자신의 전공을 정하고 이에 매진해 검정고시로 통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일종의 전략에 의한 현상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닐 터,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인재, 영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데 가장 기초인 시민을 건강히 키워내는 것에 있다. 힘을 갖춘 시민을 키우는 것, 바로 대안교육의 목표이다.


인터뷰 전과 후에 생각이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 있다. 나는 일반학교의 관계 맺기와 대안학교가 말하는 관계 맺기가 어떠한 차이를 지녔는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친구를 만나고 모둠활동을 하고 의견을 나누고 같이 성장하는 것은 대안학교가 아닌 다른 학생공동체에서도 볼 수 있는 양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관계를 성장과 동일시하고 이 속에서 동기 이상의 유대를 이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하나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바로 간디학교의 지역사회와의 연결과 행동력이다.

간디학교는 마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심지어는 어르신들이 비누를 만들 수 있는 공방뿐만 아니라 음식점 등도 마을 한쪽에 운영하고 있었다. 간디공동체와 마을공동체는 같은 한 조직에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었고 때문에 간디학교와 제천은 이우학교와 성남에는 없는 유대를 갖추고 있다 보였다. 기후평화행진, 지역단체와 문화단체 적극 참여, 타 지역 대안학교와 간담회를 통한 교류 등 직접 나서야 하는 일에도 서슴이 없었다. 게다가 이우학교는 교육과 사회 문제에 대한 거론은 의식적으로 하면서도 이에 대한 행동력은 매우 부족한 것에 반해 간디학교는 문제가 보이면 신속히 행동으로 옮기는 대안교육진행에 있어 매우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이우는 거의 일반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이 이를 알고 문제제기를 한다면 이우도 바뀔 수 있을지 조금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간디의 학생들과 학교를 보지 못한 것은 한이 되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 대안교육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다주기에는 미미하다고 판단하셨다. 이 말에 나는 간디와 같은 대안교육이 자칫 독립성을 띄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지역사회와 여러 문제들에 대해 열린 소통을 하는 간디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질문이라 생각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나는 학생으로서 이 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고 사람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건 발전의 고점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생 동네 마실 나왔을 때처럼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면 좋겠지만 이것도 한때이고 결국에는 내 주변의 여러 문제를 다 같이 고심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참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날 때부터 사회의 구성원이고 어느 구성원이 옳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잘못된 방향을 바라본다면 사회와 나 또한 그것과 발을 같이하게 될 것이므로 나와 구성원들이 옳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와 여러 어려움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남일로 여겼던 것들이 점점 나의 문제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학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더 다양한 사람과 대화해 나의 시야를 넓히고 싶은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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