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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아 Aug 29. 2024

[공정여행]_헤이리 예술마을

20240622

6월 22일 헤이리 예술마을을 방문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2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입구에는 헤이리역 4번 게이트라 쓰여 있었다.

그 글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으니 문득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걱정이 스쳐갔다.

첫 목적지는 여기서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있었다. 바로 한국 근현대사박물관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주차장과 함께 커다란 갈색 건물이 보였다.

입구부터 광고라도 하듯 옛날 풍이 물씬 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오는데 이 매표소는 80년대의 과자점 컨셉처럼 보였다.

입장 전에 지도를 받아 보니 관람층은 총 3층이었다. 3 발자국 정도 들어가 보면 이게 얼마나 넓은 규모였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공간이라는 이름이 초라해질 정도로 넓었다. 건물 내부를 전부 과거의 주거밀집구역처럼 꾸며 놓았는데 이게 상상 이상으로 사실적이라 보는 내내 감탄이 멎지 않았다. 또 곳곳에는 사람 인형이 상황에 맞는 일을 하고 있어서 당시의 상황이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종종 역사책에서나 보는 시대에 대해 향수가 오를 때가 있다. 이곳에 오니 그 기분이 점점 더 짙어져 갔다. 만난 적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정과 추억 등의 분위기가 온갖 곳에서 느껴졌다.

전시 테마가 80-90년대인 만큼 과거 우리나라의 생활상과 고됨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곳을 방문하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 세대의 생활 모습이 보고 싶다는 단순 호기심이었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두루뭉술하게 상상이나 해봤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현실감이 무섭도록 생소했다. 전당포나 잡화점 같이 지금은 찾기 힘든 장소들도 신기했지만, 집이나 분식집, 문구점, 교복점 등 지금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장소들은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관람을 이어가다 보면 그땐 그랬지 하고 추억할 수 있는 조형물들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곳곳에 서늘하게 녹아 있는 전쟁의 파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라 더 오싹하게 느껴졌는데,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아직 뒷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남은 불발탄이나 군수물품이 그 예였다. 아이들이 뽑기를 하는 문방구 바로 옆에는 ‘이상한 쇠붙이는 서로 주고받으며 놀지 말자’라는 무시무시한 글귀와 함께 지뢰를 친구에게 던지는 철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전단이 굴러다녔고 담장에는 ‘간첩을 보면 신고합시다’와 같은 선전 포스터들도 많이 붙어 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도 전쟁과 악재를 다시 한번 지났을 시대를 생각하니 그 시절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일으켜야 했을 어른들에게 경외심이 들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은 현재의 기성세대들에게 정치를 점점 내어주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현재 정치권들은 젊은 새대의 힘만을 강조하며 세대 간 갈등과 불화 문제에는 집중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젊음만을 내세워서 되는 것이 있었으면 우리가 성인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일이 있겠는가.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것은 결국 이전 세대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계속된 성장을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은 현세대의 사람들 또한 사회와 다음 세대를 위해 과거부터 내려온 잘못된 관념을 계승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람을 하는 내내 겨우 40년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 나중에는 내가 변화하는 나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까 두려움이 생겼다. 키오스크를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동시대에 살지만 아주 다른 환경에서 자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서로를 향한 존중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블루메미술관이었다. 이곳은 기간마다 전시를 새로이 하는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주제가 자연과 농부라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줄까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미술관 내부는 전부 하얀색이었다. 표를 끊는 내내 파도를 연상케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는데 관람을 시작하자마자 그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커다란 원형 판이 와이어에 걸려 기울어지면서 위에 흩어진 곡식들을 굴리고 있었다. 메인이 되는 전시는 바로 왼편에 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가전제품 여러 대가 위치해 있었다. 가전제품과 식물을 연관 짓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식물이 각각의 강점을 지닌 채로 진화해 왔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벽 뒤쪽으로 들어가 유리문을 열면 자연을 그대로 담은 디자인의 외부공간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다른 전시공간과는 달리 전시 주제가 바뀔 때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나무 가지는 벽에 있는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내가 건물 외벽에서 본 가지인 듯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건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산속에 데크로 만들어진 쉼터가 있었는데 그 쉼터 한가운데에는 아주 큰 나무가 한 그루 자라 있었다. 구조물은 그 나무를 해하지 않고 바닥에 구멍을 뚫어 조화하는 것을 선택했다. 자를 수 없어 그랬던 것도 맞겠지만 인간이 만든 건축 한가운데에 자리한 곧은 나무에는 울림이 있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천장이 뚫려 있었기 때문에 내리는 비가 그대로 들어왔는데 바닥에는 배수 구멍이 있어 공간이 깔끔하게 유지되었다. 다른 방 안쪽에는 흙이 놓여 있었는데, 흙 한 줌 속에는 지구의 인류보다 많은 미생물이 있으므로 땅은 우주 그 자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흙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까 식물과 가전제품을 보고 닮았다 하던 사람도 나름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일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정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존재인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사물은 바라보는 이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데 자연은 바라보는 이가 누구든, 그이가 어떤 해석을 내놓든 자연 자체로서는 변하는 것이 없다. 그 점이 자연의 경이로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연뿐만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가 이미 본연의 의미를 지니는 듯 보인다. 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더럽고 누군가에게는 집이니 인간의 해석과 이름 붙이기는 어떨 때는 참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주나 흙과 같은 단어도 인간이 지어낸 것이니 원천으로 보면 우주와 흙 중 어떤 것이 우주고 흙일지 아무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전시 공간에는  ‘자연 낚시꾼’이라는 테마였으며 여러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낚시는 공간에 머물며 대상을 기다리는 행위이고, 그 대상을 발견하는 데는 그만한 행위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 같았다. 낚아 올리기 전까지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올린 순간 발견한 대상은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하니까.  꽃과 나무를 보고도 비슷한 감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다른 그림들은 모두 추상적이라 어려웠지만 마지막 작품은 꽃봉오리들이 한데 모여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 마음에 들었다. 건물에는 형성된 녹지도 많고 자연 관련 서적도 많아 컨셉이 잘 드러났지만 관람 가격이 비싼 축에 속하고 구성 또한 많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빈약하게 느껴졌던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농부와 자연, 인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였던 것 같아 좋았고 농부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 장을 터준 것에 의의를 두면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편에는 자연물을 이용하여 만든 모빌과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안락하게 조성해 둔 책장이 있어 여유가 있는 날에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헤이리 무장애노을숲길이다. 무장애노을숲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어려움 없이 거닐 수 있게 조성해 둔 숲길이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장애가 있는 경우 휠체어를 사용하므로 데크로드길을 통하여 정상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왕복 3-40분의 짧은 거리였다. 무장애숲에 진입하기 전 인도에는 데크길 양옆으로 도자기 종이 줄지어 있었다.  위에는 사람들이 직접 칠한 듯 각기 다른 무늬를 지니고 운치 있게 흔들리고 있었다. 천천히 발을 내어 걸으면 불어오는 바람에 조용하면서도 맑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이 소리는 나중에 산속을 걸을 때에도 새소리 나 풀잎 소리, 청설모 소리와 같은 자연의 움직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관리가 잘 된 것인지 아니면 신축인 것인지 데크는 턱 하나 없이 깔끔했고 경사도 완만하였으며 가로폭도 넓어 휠체어가 다니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뿐만 아니라 잘 조성된 숲길은 이곳을 걷는 사람에게도 안정감을 주어 여기가 산길인지 정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30분간 걸어 도착한 정상에 올라서는 마을이 훤하게 내려다보였는데, 안개가 낀 탓에 선명한 하늘을 보지 못했던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원래는 노을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여 다음번에는 저녁에 걸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산을 걸으며 장애인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를 발상하고 실행한 사람들에게 존경심이 일었다. 장애 없는 숲이라는 발상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덕분에 길을 걸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장애인을 철저하게 약자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공동체가 존재하기에 다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나마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것도 공감의 역량 중 하나인 듯하다. 나는 사회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중 하나는 약자이며 약자를 배척하는 사회는 나에게 있어 같은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공동체나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있어 타자를 배려하고 수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자연과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도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길이었다.  다른 곳에 위치한 무장애숲도 방문해 보고 싶었다. 이후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버스와 지하철을 2번씩 갈아타 집에 도착했고 글을 쓰며 여행을 끝맺었다.

헤이리 예술가마을은 그 이름에 걸맞게 박물관과 공방, 문화관, 북카페 등이 굉장히 많았고 생소한 이름의 센터도 다양했기에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공정성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볼거리만을 생각하고 무작정 장소를 확정한 것이 후회되었다. 마을 자체가 유원지처럼 이루어져 있어 지역 상인은 물론 현지인을 찾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박물관을 관람할 때에도 부담스러운 소비가 계속됐다.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적었던 블루메미술관이 가장 아쉬웠다. 그리고 정말 의외의 문제도 찾았다. 바로 대중교통 이용이었다. 내 딴에는 공정여행의 본질을 지킨다고 실천한 것이었지만, 왕복 6시간의 이동시간을 겪어낸 끝에는 누구라도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보자는 나의 포부와는 엄청난 상성을 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공정여행과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글을 쓰려니 지역, 환경, 경제 어느 곳에도 적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마을 자체도 지역 사회 활성화를 목적으로 형성된 곳이겠지만 직접 방문해 본 나로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고 느껴졌다. 관광 코스가 나뉜 부분도 그렇고  다방면에서 산업화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근현대사 박물관에서 과거 시대와 공간을 같이하고, 블루메미술관에서 식물, 농부와 시선을 함께하고, 무장애숲길에서 자연을 통해 타인을 만나는 것과 같은 값진 경험들은 눈요기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단순 ‘재밌었다’는 감상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경험이었기에 만족스러웠으나 지역과의 유대, 자연과 같은 부분에 있어 부족했던 것 같다. 일방적으로 나의 감상만 줄줄 읊었을 뿐 그 지역과 이룬 유대는 민망할 만큼 적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해 찾은 부족한 점들은 보완하고 개선해 나간다면 분명 이로서 의미를 지닐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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