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0
8월 10일 안산 갈대습지를 방문했다.
지난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한번 숲길을 찾았다. 목적지인 갈대습지는 안산에 있는 인공습지이다. 이번에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2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을 잘못 들 뻔했지만 동행해 준 아빠가 지도를 잘 읽어준 덕에 무사히 ‘갈대습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 쓰인 현수막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오래 걷는 것은 싫어한다. 게다가 날이 무더웠기 때문에 눈앞에 끝없이 이어진 기나긴 인도를 보곤 우두망찰 했다.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길은 하나라 안쪽으로 쭉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습지를 찾는 것은 금방이었다. 본격적으로 숲길을 산책하기 전에 얻을 만한 자료가 있을까 싶어 갈대습지박물관에 들러 전시물을 살펴보았다.
팸플릿 하나를 챙기며 건물 내부를 쭉 훑어보았다. 자연광이 들어 잔잔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휴일인데도 수업이 있는 것인지 아이들과 강사님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1층에는 정말 다양한 동물 박제와 곤충 견본들이 있었다. 까치는 기본이고 왜가리, 다람쥐와 같이 평소 가까이 볼 수 없던 야생동물들이었다. 더 안쪽엔 뭐가 있을까 싶어 코너를 돌았는데, 웬만한 사람보다 큰 괴생명체 박제와 코앞에서 눈이 마주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름이 돋는다는 말이 와닿았다. 검은 털로 온몸이 뒤덮인 박제는 뱀도 아닌 것이 몸만 길어선 물고기의 꼬리를 하고 사람 안면을 쓴 채 이를 드러낸 모습이었다. 다 그러려니 하는데 반짝이는 인형 눈이 가장 불쾌했다. 겨우 진정하고 설명을 보니 그물에 잡힌 물개란다. 물개는 다 이렇게 생겼나 걱정되어서 검색해 보니 다행히도 비슷한 물개는 없었다.
다 같은 지구에 사는 동물들이지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곁에 두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동물과 인간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때로는 아주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이들을 하등 하게 여긴다. 나는 동물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세계와 살아가는 힘, 삶의 태도에 대해 알려는 사람은 얼마 없다. 세상에는 고양이, 강아지, 새와 같은 동물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동식물을 만나는 것은 자연의 또 다른 피조물을 마주하는 것으로, 평생 다 알지 못할 지구에 대한 탐구와 결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평생 실감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결국엔 지구 또한 담을 수 있는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넓은 땅과 깊은 바다도 무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육강식, 먹이 피라미드가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교감과 유대를 만들 수 있다. 야생에는 귀한 여유가 인간에게는 넘친다. 가진 것은 나누고 배울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호존중의 기본 태도일 것이다. 여유와 믿음과 기댈 수 있는 든든함을 주고 지혜와 시야와 철학을 배운다. 인간과 동물, 식물이 공통적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대화이다. 모두가 동물과 자연을 사랑한다면 분명 평화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마저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부러 물개 주위를 서성였지만 비대했던 망상과는 달리 온몸에 뻗친 소름은 내려갈 생각을 않았다. 물론 물개는 습지에서 볼 수 없었다. 대신 수달과 각종 새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생이, 원앙, 참매와 같은 천연기념물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오자마자 처음 보는 새들이 나무 주위를 날아다녔다. 색도 화려해서 다른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노란색, 파란색 심지어는 적색의 새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챙긴 팸플릿에 동식물 도감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서둘러 꺼냈지만 이미 새들은 날아가고 없었다. 평소에도 그랬다. 등하교 시간에 가끔 마주치는 까치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 있잖은가. 좀 찍으려 카메라를 들면 다 도망가 버렸는데, 남는 건 아쉬움뿐이지만 매번 이를 잊었다. 항상 일말의 기대를 걸며 카메라를 꺼냈었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는지 역시나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그래도 눈으로 열심히 담자는 마음가짐을 하고 길을 나섰다. 한 장의 팸플릿이 산책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한창 길을 습지를 따라 걷다 보면 푸드덕하는 날갯짓 소리, 물소리, 바람에 스치는 풀잎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원래도 이런 소리들이 좋았기 때문에 공원 산책을 할 때도 이어폰은 쓰지 않았지만 그때와도 느낌이 달랐다. 사람이 없으니 확실히 더 새롭고 다양한 소리들이 느껴졌다.
내가 걸음을 하면 새들은 인기척에 날아오르고 매미는 울음을 멈추었다. 내가 바람을 맞을 때 수풀과 나무도 바람을 맞고 너울거렸다. 나와 자연이 공간을 같이한다는 것이 실감 나게 와닿았다. 비록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못할지언정 가까이에서 이들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순리와 날것과 본능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내가 이런 것에 전율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도 든다.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삶에 있어 엄청난 가치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처럼 감상을 생각하고 스스로와 나눌 수 있는 활동을 할 때면 왠지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산 없이 평평한 습지와 숲길을 걸으니 분위기도 있고 여름의 싱그러움과 공기가 잘 느껴졌다. 습지도 습지지만 흠없이 맑고 넓은 하늘도 아름다웠다. 바라만 봤는데도 나의 잡념을 덜어가 주었다. 3시간가량 길게 걸었기 때문에 덥고 습한 것이 힘들었지만 눈앞에서 활강하는 왜가리도 봤고 물속에서 노니는 붕어 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이름 모를 화려한 나비와 진짜 뱀도 목격했기 때문에 다른 여한은 없었다. 다음번 방문할 때는 꽃이 많이 피어 있을 봄에 와보고 싶었다. 이번에도 걷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여행을 할 때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30분쯤 걸었을까 음악을 틀고 조깅을 하는 할아버지를 지나쳤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사람 말소리가 이것이었다. 앞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박물관에는 걷기를 할 때 유의해야 할 점들을 일러 놓은 문구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음악 크게 틀기, 소리 지르지 않기, 뛰어다니지 않기와 같이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쉽게 연상이 가능한 사람들의 모습이 설명되어 있었다. 산길을 걷다 보면 트로트와 옛 가요를 크게 틀어 둔 채로 걷기를 하는 어르신들이 종종 있잖은가. 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누구도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연을 배려하며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우면서도 동시에 어려울 수 있는 것 같았다.
걷기를 하며 알게 된 것도 많은데 이곳은 수질 정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습지란다.
나는 습지라고 하여 이전에 갔던 곳을 바탕으로 갯벌과 닮은 땅에 등섬등섬 솟아 있는 갈빛 풀들을 상상했었기에 물이 많고 초록색 잎 식물이 많았던 것도 의외였다. 전 여행과 같은 맥락의 걷기였기에 감상이 겹치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했지만 무장애숲과는 다르게 여러 동식물을 만나볼 수 있었기에 오히려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이제는 바다를 갈 때도 지금과 같은 감상을 남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 기 때문에 지금보다 힘들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니만큼 제대로 된 감상을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머릿속으로만 그렸는데도 금방 설레었다.
습지에서 왔던 길로 나오는데만 30분이 걸렸다.
그늘만 밟아 걸었는데도 온몸이 끈적했다. 어떡해야 빨리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꼭 들러야 할 곳이 아직 남아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습지 한 곳이 아니다. 안산에는 세월호 기억관이라는 곳이 있다. 나중에 바다로 공정여행을 떠날 때 팽목항에 간다면 연계할 수 있을 것 같아 방문했다. 이곳은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다녔던 교실을 재현해 옮겨 둔 공간이다.
짐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가방은 카운터에 맡기고 3층부터 아래로 이동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분이 설명이 필요한지 물어왔다. 교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교실 내부는 학생의 신변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교실 내부를 묘사하면 그 시절 학교와 별 다를 것이 없었는데 칠판에 떠난 친구들을 향한 고백과 그리움이 잔뜩 적혀 있는 것이 안타깝고 절절했다. 각각의 자리에는 꽃과 인형, 책, 음식 모형 그리고 초상화 등이 놓여 있었다. 교실 앞에는 백화점에서 지도를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기기가 있었는데 이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취미, 사진, 글을 열람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봤던 얼굴들이 보였다.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의 개성이 묘사된 글을 한 개 이상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울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한 명만 봐도 슬픈데 이런 학생이 반마다 몇십 명씩 있었다. 전체 보기를 하니 그 수가 너무 많아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빈 교실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급에 영정사진이 그것도 자리마다 올려져 있는데 봐선 안 될 것을 본 기분이었다. 어쩌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시간표도, 교과서도, 사물함도 목적을 잃고 정리만 되어 있었다. 주인을 잃은 인형과 필통이 가지런히 놓인 것도 봤는데 사용감이 묻어난 것이 빈자리를 더욱 쓸쓸하게 했다. 뉴스와 매체로만 접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허함이 몰려왔다.
반 뒤쪽으로 걸어가 교실을 한눈에 담아보았다. 책상 위에 놓인 액자로 가득한 교실을 보니 가슴이 죄여왔다. 한 책상 위에서는 ‘아들이 너무 그리워 찾아간 어머니의 품에 편안히 안겨 계신가요’ 하며 간접적 피해자들까지 감싸안는 위로의 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세월호는 수성펜으로 쓴 글자 같았다. 바닷물에 번져 비극을 낳았고 눈물에 닿아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보기 싫다며 이를 덮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울 수는 없지만 가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이제는 아니다. 텅 빈 6개의 교실, 250개의 영정, 떠오른 세월호는 그 부피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도저히 가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피해자와 세월호를 향해 세상 어떤 비난이 오든 간에 그것은 세월호로 생긴 얼룩을 가리기는커녕 키우는 일밖에는 되지 않았다. 언론은 세월호의 자극성과 정치적 갈등, 유가족을 이용한 질 나쁜 뉴스를 매년 흘릴 것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과 어른들의 책무를 묻고 2차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진실된 기사만을 전해야 할 것이다.
기억관 밖에는 학생들을 그린 그림들과 추모글들이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잊을 권리가 없다”는 짧은 문구였다. 세월호가 길이 기억되고 추모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가 단순 비극 참사로 치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속옷바람으로 도망 나온 선장 또한 사회가 말하는 나쁜 어른이지만 그 외에도 진상은 여러 가지이다. 일본에서 헌 배를 가져온 것이 문제였을까, 중량을 초과로 적재한 것이 문제였을까. 정원 넘게 티켓을 팔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 말해서일까. 게다가 이 모든 일은 어른들의 일이 아닌가. 이들이 유기한 책임들은 단원고 학생들이 대신하여 받고 떠나니 사회와 어른은 떠나간 이들을 안고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지겹다는 이들에게는 먼저 떠난 학생들과 그 주변인들, 그리고 여러 피해자의 존재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 기억관은 언제나 유의미하게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