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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닥 Sep 11. 2021

같이 균형을 잡아봐요

지미의 모닥불




 서울의 한 중간에서 많은 사회 이슈들을 빠르게 접하며 공부하고 연대하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대학 입시와 무관한 교육과정으로 공부했고, 내가 비주류라 느끼며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하고 싶은 건 공부였고 여러 타협 속에 졸업 후에는 4년제 대학에 사회학부로 입학했다. 입학하고 만난 사람들은 나와 꽤나 닿아 있었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재밌게 공부했다.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이 보고 느끼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욕심과 과도한 책임감이 함께 하면서 밤을 새는 일이 많았다. 내 몸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에는 열심이지 않았고 탈이 났다. 어느 것도 집중이 안 됐다. 공부가 좋고 좋은 사람들이랑 즐겁게 그 과정을 보내고 싶은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게 너무 싫었고 계획도 없이 1년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을 다짐하던 학기에 우리가 마주한 생태위기가 이제는 집단적 운동을 통한 구조적 변화를 강력히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강의를 들었고, 어쩌다보니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불법의 경계를 고민하며 액션을 준비하고 사회와 우리를 연결짓는 토론을 했고 그 속에서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 계획이 없어서였는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사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들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해야 될 것 같은 것들을 했고 그것들을 다 할 수는 없었기에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다. 의식적이지는 않았는데, 지쳐 도망가고 싶어지기 전 적절하게 춤을 추며 사람을 만나 놀았다. 일 년 간의 휴학이 끝날 때 자연스레 복학했다. 막상 정말 내가 푹 쉬었는지 내 생의 지속성과 평화를 위한 균형을 맞춰보고자 시간을 썼는지는 이제와서야 돌아보고 있다.


 누군가의 제안이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함께 계획하며 주어지는 나의 일이 없으면 불안해 했다. 다시 일이 넘치게 될 땐 부담과 책임감에 멘탈이 덜컹거렸고 뭔가를 하고 있든 아니든 그런 에너지 속에서 매일을 보내는 일은 나를 지치게 했다. 이를 걷어내줄 외출, 만남, 새로운 상상 등 다른 요인이 온라인 환경으로 차단되면서 더욱 그랬다. 수면시간은 짧아지고 소화는 힘들어졌다. 불안과 지침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다 잠깐씩 균형이 맞을 때 스스로 나 요즘 좀 건강한 거 같다-고 느꼈지만 사실 그 기간은 너무 짧았다. 아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는 마음은 아니다. 음 그렇군, 하며 되돌아본 후에는 그럼 어떻게 다르게 살까-가 있었다.

 

 균형이 맞는 잠깐동안의 그 과도기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나를 돌아보고 처한 조건과 상황을 바꿔보고 다르게 선택해보고 했다.

 이번 여름 내 새로운 시도는 ‘재지 말고 일단 하자’였다. ㅎㅎ 단순하다. 학기가 끝날 때쯤 내가 너무 겁먹고 쫄아 있어서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는 까먹어버리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민폐는 아닐까 너무 못나 보이면 어쩌지, 해서 뭐가 남을까, 시간낭비 돈낭비인 거 아닌가, 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만 물어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필요 없다고, 일단 하면 자신감과 자기 이유는 만들어질 거라고 얘기해줬는데 나한테는 안 그랬다. 단순한 다짐에 힘입어 춤을 췄고,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주제들로 강의를 찾아 들었고, 흠모하던 것에 내 취미라 이름 붙여주었고, 다시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해야 할 거 같은 것 대신 하고 싶은 것에 시간과 마음을 썼다. 처음으로 늦은 저녁에 혼자 밖에 나가 편의점에서 간식도 사먹었고(사서 먹는 순간 처음이라는 걸 깨달으며 스스로도 충격적이었다), 숨이 찰 때까지 달리기를 해봤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위시리스트에 추가하는 것 대신 먹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마감을 넘겨 문서를 보냈고,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며칠씩 못 본 척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것을 이유로 나에게 너무한 말을 하는 일은 줄었다.

 

 이런 무겁고 우울하게 찐득대면서도 사실 하나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지 않은 건조한 글을 나누는 것이 내 기억에는 오랜만이다. 사람들을 안 만날 수록 밝고 활기차게 화이팅을 건네고, 괜찮냐는 물음표에 완전 멀쩡하다고 걱정 말라며 느낌표를 찍어보냈다. 그런 나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가끔은 가만히 있다가 신호도 없이 눈물이 토독 떨어졌다. 병원 가는 지하철에서, 멍하게 폰으로 세상 소식을 보다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다가, …. 눈물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순간마다 토닥여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이 시국에 목적없이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SNS에 올려 알아봐주길 바라는 방법도 있지만, 이 글을 보는 누군가들도 나만큼 힘들 거라 생각했다. 서로에게 당장 달려갈 수 없는데 괜히 걱정끼치고 부담스럽게 만들까봐 사렸다. 그래서 오랜만이다. 모닥 진행팀이 정해준 날짜가 이 시기였고, 지금 나는 이것만큼 꺼내놓고 싶은 이야기가 없고, 덕분에 지면을 빌려 내가 나의 공간 속에서 오롯이 혼자 체감하는 나의 요즘을 솔직하게 쓸 수 있었다. 괜찮다는 말을 하거나 듣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손을 내민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급박한 전환을 안팎으로 요구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동료들과 발견한 가능성은 선명한 상상을 남기고 강력한 힘을 준다. 그 와중에 의무와 책임을 동반한 결정의 순간들은 점점 빠르게 다가오고, 선택과 집중을 요구한다. 얇고 다양한 뿌리를 곳곳에 내리며 내 종착지를 확정짓지 않은 채로 지금을 살고 싶다. 불안과 희망 속에서 요동친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성미산마을의 청년축제에서 춤 공연을 했다. 위의 글은 청년으로서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의 생각과 고민을 소개하며 쓴 글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 내 삶과 타자들과의 연관의 구조가 다른 세상이라고 답할 것이다. 경쟁과 낙오의 구조가 아닌 신뢰와 포용의 연결로 구성되는 사회. 친밀한 관계 속에서 충분히 숨 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위에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선명한 상상을 남기고 강력한 힘을 주는 내 동료들과의 관계를 글로 적어보고 싶었다. 그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든든함은 누적된 마음들인데, 막상 할 수 있는 말을 꺼내 놓고 나니 이는 글보다는 글을 나누고 있는 모닥 프로젝트에 그 힘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내가 우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사회와 우리는 연동되어 있고 나아가 우리가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못 박아 두고 싶다.

 


흔들리고 주저하고 남에게 해주는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을 어려워 하며, 꽤나 자주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과 행동의 시간보다 나와 싸우는 시간이 많은 나 같은 사람도 청년기후긴급행동에 있다. 활동가는 내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고 나를 그렇게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나를 자꾸 끌어들이는 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고 내가 다시 누군가를 잡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우리’ 속에서 나의 균형을 다시 맞추며 오늘을 산다.





모닥 불씨 | 김현지 (지미)  

인스타그램 @gim_hyeonji_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대화와 토론, 수다와 위로가 오가는 우리의 시간과 장소들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함께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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