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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닥 Sep 11. 2021

내 일과 네 일의 경계에서 우리 모두의 내일을 꿈꾸다

전영후의 모닥불

 



 모닥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한 뒤 글의 주제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특정 액션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쓰기에는 그 어떤 액션에도 깊이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긴급행동을 멀찍이 바라보며 느낀 점에 대해 쓰는 수밖에 없었다.


 기후나 환경 단체에 속한 사람은 대개 ‘활동가’라는 칭호로 불린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활동가’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라는 기후행동 단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활동가’의 이미지는 내가 가진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긴급행동의 일원으로서 액션에 참여하는 일은 어쩐지 ‘내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긴급행동은, 나보다 기후행동에 더 적극적인 사람들이 액션을 하는 데 있어서 그들이 다른 이들의 의견을 필요로 할 때, 인원수를 늘려야 할 때, 잠깐 ‘내 일’을 멈추고 먼지와도 같은 도움을 주기 위해 참여하는 단체였다.


 나는 어쩌면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열렬히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다. 기후행동을 당당히 ‘내 일’로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고, 미래세대 앞에서 떳떳하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새학기가 시작되고 책상 위의 전공책과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 그리고 교수의 존재가 내게 인지되는 그 순간부터 긴급행동에서의 활동은 남의 일이 된다. 오로지 공부를 잘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내가 훗날 훌륭한 연구자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데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긴급행동과 그곳에서의 활동은 기후위기를 모른 체함에 따르는 죄책감과 한 단체의 일원으로서 내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부채의식으로 나를 압박한다. 지구에 난 불을 꺼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불을 끄는 사이 다른 학생들은 공부에 전념해서 내가 그토록 되고 싶던 훌륭한 기후과학자가 되어 있고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한 우울한 미래를 맞게 될 것만 같다.


 기후위기 대응에 일조한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이 딱한 죄인은 오늘도 긴급행동 회의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에 전공 공부를 더 할 것인지를 저울질한다. 이렇게 늘 저울질을 계속한 결과, 1년 넘게 긴급행동의 구성원으로 있으면서도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참여했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활동은 단 하나도 없는 다소 답답한 상황에 이르렀다.


 다시 새로운 학기의 출발점 앞에 서서, 긴급행동의 구성원들을 바라본다. 그저 기후변화뿐 아니라 여성인권, 퀴어, 장애인, 동물권,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고민들, ‘나’라는 존재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남들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기를 꿈꾸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도 가끔은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그 불안함과 싸우며 공생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한없이 무해한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 새학기를 앞두고 단단히 경직된 내 마음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진다. 참석하지 않음에 투표했던 긴급행동 프로젝트 투표창에 참석함으로 몰래 다시 투표해 본다. 그들만큼 기후위기 대응에 열심이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학업과 기후행동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내 삶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오늘도 내 일과 네 일의 경계에서 우리 모두의 내일을 꿈꾼다.

나는 아직 기후행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닥 불씨 | 전영후

인스타그램 @whohoo5244


 욕심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지구 위 생명체와의 공생을 꿈꾸는 공생꿈나무입니다. 대학에서 대기과학을 전공하고 있고 기후과학자가 되어 미래 기후를 더 정확히 예측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일원으로서 느낀 감정이 너무 솔직하게 글에 표현돼서 혹여나 읽는 데 불편하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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