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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닥 Sep 04. 2021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황나라의 모닥불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이 대선경선후보들을 모아놓고 탄소중립 공약 발표회를 진행했다. 입에 붙지도 않는 대본을 읽어내느라 꽤나 고생이지 않을까 싶었다. 6명의 후보들이 홍보영상으로 떠들던 내용은 대강 흘려들어도 각자의 주장에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민주당의 탄소중립 공약 발표회가 아니더라도 기후위기대응을 한답시고 나서는 악당들은 매번 ‘성장’, ‘발전’, ‘개발’을 이야기하곤 한다. 일부 또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성장동력을 새롭게 바꾸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대한민국이 오롯이 중공업이나 반도체에 의지했다면 이제는 녹색미래산업을 이끌기 위한 신경제개발방식을 주창하는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마치 흠없는 대안인양, 기술만 바꾸면 되는 줄 알지만 결국 그 지향점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기존의 틀은 달라지지 않고 기술의 형태만 바뀌는 방식이 과연 식민화된 자연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는 좀 탈성장주의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겨우 1~2년으로 마무리될게 아닌 기후위기운동은 마라톤처럼 무척 긴 호흡이 필요하다. 42.195km 그 이상의 벅참과 지침을 느낄 수도 있는 기후위기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근본이 되는 사고방식을 다시 설정하는 건 어떨까.


지난 70년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해온 정언명령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자되세요~”가 아닐까싶다. 추억의 광고 멘트이기도 한 이 단순한 어절은 매년 사람들 간에 주고 받는 고전적인 새해 덕담이기도 하다. 부자는 시장에서 모든 것을 살 수 있으니 이 보다 무난한 덕담이 딱히 떠오르지도 않다. 우리의 삶은 소비, 생산과 연관되어 있고 시장을 통해 매개되어 있다. 우린 더 많이 사고, 쓰고, 쌓아두도록 애쓰곤 한다. 이런 집착은 큰 규모로 볼 때 더 징글하게 드러난다. 지난 7월에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대한민국을 개도국 그룹인 A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인 B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고, 당시 국내 이곳저곳 언론사에서 이를 보도했다. 개인뿐만 아니라 지역이나 국가 차원에서도 재화 축적에 일희일비한다. 우상향 그래프를 보고 환호하며 살던 우리는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 GDP를 늘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오롯이 경제성장률이란 지표로 정의하던 근대적 의미의 성장은 의심될만하다.


탈성장은 기본적으로 경쟁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경쟁하지 않는다는 건 당연히 어색하고 낯설만하다. 그렇지만 이를 법과 정책에 적용하고 삶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나라가 있다. 천연자원의 공급지로서 세계 경제에 통합된 라틴아메리카는 기존에 인간이 마음대로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주류 발전 태도를 비판하며, 대안적 발전 개념으로 등장한 ‘비비르 비엔(Vivir Bien)’에 주목했다. 좋은 삶, 공존 등의 의미를 가진 ‘비비르 비엔’은 자연이 인간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자연은 인간과 관계 맺는 주체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비비르 비엔’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적 권력 관계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볼리비아 정치인인 파블로 솔론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비비르 비엔’이라는 이상향이 채굴주의의 확장으로 이어졌다며 비판한다. 스스로 ‘비비르 비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는 두 나라의 경제는 원자재 수출에 의지하는 것을 이어갔고, 자연을 상대로 하는 식민성을 강화했다. 남미 정부는 ‘비비르 비엔’ 가치관을 성문화된 법으로 옮겼으나 정책실행 측면에서 끈기 있게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현재진행형인 ‘비비르 비엔’이 실패했다고 단정지어서도 안 된다. 파블로 솔론은 ‘비비르 비엔’ 정신으로 돌아가고 사회운동과 대안공동체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비비르 비엔’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단선적이지 않고 순환적이다. 그렇기에 성장과 진보라는 단선적인 개념은 ‘비비르 비엔’이라는 전망과 양립할 수 없다.


자꾸 비비르 뭐시기만 얘기해서 좀 글이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태도는 ‘발전하라’라고 말하는 지배적인 가치관을 거부하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간 중간급 관리자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다고 말하는 지배층의 속삭임을 거부하고, 잡음을 내며 서로 다른 채로 연결되는 개인으로 행동하기를 제안해본다. 물론 그렇게 어렵사리 걸어간다고 해서 악당의 목을 벨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어진 선택지를 벗어나 출구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삶..?>



           

모닥 불씨 | 황나라

매번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며 살아가는 황나라입니다. 긴급행동에서 활동한지는 8월 기준으로 4개월된 어리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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