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닥 Sep 04. 2021

정의감 넘쳐서 기후단체에 들어온 건 아닌데요...

조남훈의 모닥불

안녕하세요. 저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약 1년동안 활동을 해온 조남훈이라고 합니다. 잠시 활동을 쉬게 되었는데, 마무리 겸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함께 있었는지 적어보려고 합니다.     


처음 들어온 계기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어요. 작년 초에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 공연이 다 취소되고 (당시 겨울방학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엔 비가 계속 내리길래 뭐 때문에 이런 걸까 단순히 궁금했었습니다. 어떤 인류 문명에 대한 위협이나 내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이런 말하는 게 맞나 싶지만..  저는 정치에도 경제에도 관심이 먼저 잘 안 가요. 다른 나라의 홍수나 산불로 인한 피해에 금방 마음이 아파지는 편도 아니고요.. 그만큼 기후위기라는 게 저에겐 정말 체감하기가 어려워요. 휴대폰 화면 너머 텍스트와 사진으로 마주하는 이 소식들이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감이 잘 안 와요.     


거기서 드는 생각은, 저는 평소에 뭘 잘 못 느끼는 편이고 그런 자신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터라, 그럼 이 문제에 나를 더 끌어들여야겠다 싶었어요. 잘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해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한 몫을 했구요. (같이 하는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운영위원분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작정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김공룡과 친구들’에 함께 하고 싶다고 DM을 보낸 게 첫 시작입니다.      


활동 초기엔 학교 과제 제출과 함께 카드뉴스 제작 마감을 지키느라 새벽 4시에 눈물을 살짝 훔쳤지만 SNS에 게시된 걸 보고 새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책을 E-Book으로 사놓고 뒤늦게 페이지 수를 본 뒤 충격받아 금방 덮어버린 적도 있고..      


한 번은 직접행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는데 (모순적인 문장이 웃기네요). 포스코 센터 입구에 빨간 물감을 뿌리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액션을 촬영하는 일이었어요. 처음 뵙는 분들과 새벽부터 서울의 한 야외 주차장에서 체조를 하고, 센터 앞 버스정류장에서 출동 연락을 기다리다가 봉고차에서 내리는 활동가분들을 쫓아가면서 액션캠을 들이대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시청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처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경험, 기자회견을 기획했다가 여럿 고생시킨 경험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은 사람들과 함께 한 순간들이에요.      


대가도 의무도 없지만 모여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나눴던 이야기들. 문제 해결의 진전은 안 보이는데 주제는 확장시켜가며 논의의 논의를 거쳤던 온라인 회의들. (결코 장시간 회의가 좋은 건 아닙니다만..) 처음 맡은 발제가 끝난 후 바로 걸려온 지혁의 안부 전화. 청연이 짚어주는 세가지 제안이나 윤석이 표하는 우려. 은빈의 엄청난 체력이나 미어캣님의 업무 디톡스 실패. 난설헌님의 웃음소리와 의견 피력 때 대조되는 목소리 등. 제가 비록 모든 분들과 관계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일단 제게 남아있을 기억들은 이 기억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기억들이 저를 조금씩 바꿔놓아요. 나도 이만큼은 더 관심을 가져야지. 나도 이만큼은 다른 사람을 도와야지. 나도 누군갈 챙길 줄 알아야지. 힘든 일을 웃으며 할 줄 알아야지. 더 좋은 사람이 돼야지.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그런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함께 더 알고 싶고 더 움직이고 싶은 의지가 생겨나요. 저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었던 의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진실한 마음을 모아 소중히 다루는 분들 곁에 있었던 덕이에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절실함이 내면에서부터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느껴졌기 때문에 꾸준히 행동하는 사람. 굳이 정의감이나 기후재난의 피해로 인한 직간접적 상처나 분노를 체감하지 않았더라도, 처음엔 알고 싶다는 궁금증만 있어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어떤 조건을 스스로 다는 게 기후행동은 정의로운 소수의 활동가가 도맡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가벼운 마음으로 긴급행동에 들어왔지만 점점 이 문제를 직면하고 싶다는 진심을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기후위기와 긴급행동에 막 관심을 갖게 되실 분들도 이 안에서 사람을 통해 문제를 다시 보고 움직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어요.     


이렇게까지 솔직한 글이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요. 기후단체 운영위원이란 사람이 기후위기를 잘 체감하지 못 한다고 쓴 점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열정과 절실함이 담긴 글을 써보려고 고심하는 것보다 이게 분명 나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모닥 불씨 | 조남훈  www.instagram.com/nhkcot/

안녕하세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약 1년간 활동했으며, 홍보팀장 및 1기 운영위원을 맡았던 조남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라지지 않는 작은 불씨가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