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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산우인 Jun 24. 2024

Deja Vu


  화창한 토요일 아침이다. 내가 배속된 기관(PPP Center)이 주최하는 부처 대항 축구시합엘 갔다. 길찾기 앱을 켜 놓고도 더듬더듬 물어서야 Total Football Club이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철망으로 둘러쳐진 2면의 풋살 경기장이 제법 단아하다. 또 한번 1인당 소득 2,000불 미만인 저소득국가의 복지시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마다 자기 기관을 대표하여 나온 싱싱한 젊음들이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고 인조 잔디 구장 위에서 통통 튀어 다니고 있다. 여기저기서 공차는 소리와 젊음의 함성이 뒤섞여 초여름의 하늘아래 싱싱한 소음을 만들고 있다. 슬그머니 나도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서 원형대열 한 켠에 섰다. 낯선 이방인이 서있으니 일부러 내게 공을 패스한다. 소시적에 했던 것처럼 앞 축이 지면과 45도 각도로 비틀려서 스치듯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힘차게 공을 찼다. 순간 웬 공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무릅이 시큰해진다. 내 발을 떠난 공은 대각선 저 멀리 있는 젊은이에게 시원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대신 내 옆에 있는 선수에게 쪼르르 굴러간다. “아~ 나도 한 물 갔구나”하는 낭패감에 휩싸였다. 시합은 치열했다. 첫 경기에서 우리 팀은 나중에 우승팀이 되는 에너지부와의 경기에서 0:7로 유린 당했다. 나도 나가서 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자제하였다.

      

  돈도 없으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배너도 만들어 걸고, 금은동 메달에 큼지막한 황금빛 트로피까지 준비해서 제법 그럴듯한 축구시합을 하고 있다. 문득 40년 전 KDI 잔디밭에서 야구를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땐 우리도 정말 진지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많은 직원들이 잔디에 앉아서 환호하고 웃음을 나눠주었다. 영문 에디터로 일하던 학벌 좋고 집안 짱짱했던 젊은 미국인도 함께 배팅을 하곤 했다. 1980년대 초 좁은 잔디밭에서 테니스공으로 진지하게 야구를 하던 한국인 연구원들이 미국인들의 눈에 얼마나 소박하게 비쳤을까?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 연구원이 40년 후 중앙아시아 산골국가 정부의 정책자문관으로 와서 이 나라 엘리뜨 공무원들의 소박하나 진지한 축구시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새삼 감회가 무량하다.  

    

  개발협력의 현장엘 가보면 종종 기시감(Deja Vu)에 빠져든다. 이젠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졌던 어릴 적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나곤 한다. 그래서 개발협력활동은 인생을 여러 번 되살게 해주는 것 같다. 물끄러미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축구공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선글라스가 완충작용을 하여 그저 “퍽”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선글라스 알에 금이 가고 표면이 깎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새삼 큰일 날 뻔 했단 생각이 든다. 아들이 선물로 준 진품 Ray Ban 안경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번 경기는 “Hwang’s Cup”이 될 수 있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직원 술탄(사람 이름)이 모금에 힘들어 하기에 1등 팀 상금 몫인 10,000 솜(약 15만원 상당)을 내가 희사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수여하겠다기에 극구 사양했다. 웬지 그래선 안될 것 같았다.   

   

  어릴 적 국민학교 미끄럼틀 위에서 바라보던 흰구름과 파란 하늘을 생각나게 만드는 청명한 하루였다.

                                                                                          (2024년 6월 15일, 비슈케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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