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말에 다녀온 고교동기들의 중앙아시아 자유여행 키르기스스탄 편을 3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우리들끼리의 기록이기에 시시콜콜한 내용까지도 적어놓았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옛부터 이르기 어렵다는 그 칠십의 나이를 고교동기 6명 모두가 건강하게 맞아서 머나먼 서역 땅까지 함께 여행할 수 있었음은 크나큰 축복이다. 이 글은 여섯명의 부산고등학교 동기들이 70의 나이에 좌충우돌 다녀온 서역여행기다.
(1) 키르기스스탄 편 (曉霖 黃元奎)
2023년 10월 코이카(KOICA) 파견 자문관 연수훈련차 상경한 김에 23일 서울 인근에 사는 5명의 여우(麗友)들과 파주로 당일 여행을 갔다. 그 날 임진강 지류 황포돛배 위에서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 때만해도 나는 술김에 내 뱉은 덕담이겠거니 여겼다. 그리고 3년간의 제주도 살이를 정리한 후 2024년 1월 23일 새벽, 아내와 둘이서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자문관으로 일하기 위해 비슈케크로 건너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麗友들이 ‘한 번 한다면 해치우고 마는’ 독한 녀석들이다. 2월부터 문자가 오가더니 급기야 2월말 경 5명 전원이 중앙아시아 자유여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오메? 이 먼 서역 땅까지 진짜 오는가부다?” 싶으니 갑자기 고맙고, 보고픈 마음이 들어 옛 선비의 풍류를 흉내 내어 초대시를 적어 보냈다.
< 鵬程西域萬里行 >
白雪皚皚天山麓 (백설애애천산록)
천산 기슭에 흰 눈이 가득하니
春日遠著西域城 (춘일원저서역성)
서역의 도시에 봄날은 아직 먼데
老友遠訪古來稀 (노우원방고래희)
늙은 친구들이 먼 길을 찾아옴은 옛부터 드문 일이라
焦待北路馬蹄聲 (초대북로마제성)
북쪽 길의 말발굽 소리를 초조하게 기다리노라
허봉 길재성 서예가께서 써주신 <붕정서역만리행>
그리고 2024년 4월 25일 오후 6시, 5명의 여우들이 비슈케크 마나스(Manac)공항에 진짜로 나타났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한명씩 씩씩한 걸음으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이렇게 여우회의 서역여행이 시작되었다.
2024. 04. 25(목)
몇일 전부터 오락가락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춥고 긴 중앙아시아의 겨울이 지나고 돋아나는 신록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단비다. 그러나 여우님들을 맞아야하는 내 입장에선 이 비가 반드시 반가운 것은 아니다. 모처럼 찾아오시는 서역여정인데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탄저병이 돌아서 금사과로 불릴 만큼 비싸다는 사과와 꿀 선물을 주려고 미니버스를 타고 시장을 다녀온 후 목이 매캐하고 기침이 나오기 시작한다. 손님들을 맞아얄텐데...
오전에 사무실(PPP Center)에 나가서 근무한 후 점심 때 집으로 와서 오후 3시에 집사람과 같이 Air B&B를 통해 예약(이틀에 290달러)한 시내 중심가의 베이 타쉬(Bay Tash) 아파트로 가서 집을 살피고 키를 받아 두었다. 오후 5시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면서 이 곳에서 60만평 농사를 짓고 있는 듬직한 사나이 김철용 사장의 차에 동승하여 공항으로 향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 로터리에 물이 고여 통행차량이 얽혀있다. 다행히 마나스공항에 가까워지면서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입국장을 빠져 나온 여우들과 한바탕 재회의 기쁨을 나눈 후 김철용 사장의 차에 3명, 얀덱스(Yandex) 앱으로 부른 택시에 나 포함 3명이 분승하여 시내로 향했다. 공항 주변의 백양목 가로수와 비옥한 벌판, 그리고 후진국 치고는 잘 닦아 놓은 도로에 감탄을 하였다. 정확하게는 내가 설명을 하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유도하였다.
7시경 아파트 9층에 입실하였다. 방 3개, 침대 6개의 아파트라서 큰 불편없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벽에 걸려있는 이발소 그림 같은 유화가 유치해 보였지만 이건 상상화가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의 진경(眞景) 산수화다. 대략 짐을 풀고 저녁식사하러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뒤편의 백화점 비슈케크파크로 들어섰다. 후진국의 초라함을 연상했음직한 친구들에게 백화점의 휘황찬란함이 공간감각을 잃게 만들었으리라. 3층 푸드코트의 멋진 식당인 나밧(Navat)에서 여러 가지 전통 음식을 주문하여 맛보게 하였다. 키르기스인들이 모든 식단에서 함께 먹는 튀김 밀가루 음식인 ‘보르속’을 발효유인 ‘카이막’에 맛있게 찍어 먹는다. 다른 음식들도 입맛이 맞다고 하였다.
호텔 옆 슈퍼에 들러 키르기스스탄의 코냑과 맥주, 술안주 등을 구입하여 숙소로 돌아와서 술파티가 벌어졌다. 40년 가까이 전북대 교수로 봉직하다가 퇴직한 정학섭이 전라도식 건배사를 건넨다. “사랑과 우정을 디~질 때까지!” 우리 모두 힘차게 화답했다. “사우디!!” 먼길 오느라 피곤할텐데도 서역여행에 대한 기대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환담에 웃음꽃이 피었다. 대략 11시 가까이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2024, 04, 26(금)
아침식사를 함께하거니 생각하고 7시경 집을 나서 ‘똑도굴(Toktogul)로’ 서쪽 1km 직선상에 있는 친구들의 아파트로 갔다. 헌데 영감들이 부지런도하시다. 어떤 친구는 더 일찍 일어나서 동네 산보를 다녀왔고, 다른 친구들도 이미 아침식사를 마친 상태다. 나 혼자 남은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오늘은 인근의 국립공원인 Ala Archa산으로 가는 날이다. Yandex 앱으로 미니밴을 불렀다. 나타난 차는 그냥 4명이 타면 될 법한 오래된 중고차였다. 운전기사가 씩씩하게 뒷문을 열고 뒷좌석 2개를 펼쳐주며 앉으란다. 불편하지만 1대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기에 낑겨서 탔다. 뒷좌석에 탄 친구 둘이 고생스러웠으리라... 30분쯤 달려서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였다. 비가 와서 안개 속을 거닐다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날이 갰다. 우뚝 솟은 봉우리들에 친구들이 경탄의 함성을 지른다. 시작점은 해발 2,200m다. 잘 정비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산보처럼 걷다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이르자 여우들이 일제히 개울가로 달려가서 고개를 박고 물을 마신디. 수많은 세월이 지났건만 본질은 모두 촌놈들이다. 그래 그렇게 염원해 왔던 천산산맥의 눈녹은 물, 천산수(天山水)다. 싫컷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거라...
계곡 사잇길로 20여분을 올라가자 넓게 트인 개활지가 나오고 둘레의 산들이 더욱 높게 보인다. 봉우리 위에 잔설이 남아 있고 그 넘어 봉우리엔 만년설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알라 아르차 공원 내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4,860m 높이의 코로나(Korona)봉이다. 그 너머로는 4,900m에 이르는 봉우리도 있고, 어느 봉우리는 Free Korea란 이름이 붙어있다. 아마도 소비에트 시절 북한 정권에게 헌사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나라에는 레닌봉, 스탈린봉, 모택동봉처럼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명명된 봉우리가 곳곳에 있다.
1달 전에 다녀갔을 때는 허리까지 눈이 덮여 있어서 건너갈 엄두도 못냈던 개활지가 눈이 완전히 녹아서 자갈마당이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얼마 전까지 빙하로 뒤덮여 있던 곳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당초엔 이쯤에서 되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앞서 간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더 위로 걸어가기에 그네들 뒤를 따라 올라갔다. 한굽이 산등성이를 돌아가니 계곡 사이로 더 멀리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또렷히 보이는 멋진 지점이 있다. 해발 2,430m. 6명이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아래 개울가에 맑은 물이 콸콸 흐른다. 모두들 개울가 바위에 앉아 누군가는 탁족을, 누군가는 눕다시피 자세를 낮추고 사진을 찍는다. 들고 온 코냑을 한모금씩 나눠 마시며 “참 좋다. 댓낄이다! 지겨준다!”를 연발하였다.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흥분된다.
약 20여분을 개울가에서 즐기다가 하산길로 나섰다.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산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개활지 자갈마당은 멀리 보이는 우뚝 선 봉우리들과 어울려 더욱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였다. “야호~” 함성을 지르고, 이리 저리 사진을 찍으며 공원 입구로 내려왔다. 이제 제법 빗줄기가 내려치기 시작한다. 대기 시켜둔 미니밴 택시를 타고 산중턱쯤 내려오면서 문득 내 배낭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과 즐거워하다가 개울가에 배낭을 두고 온 것이다. 두고 온 물건이 무엇일까 따져보니 가벼운 덧옷, 꿀 1병 그리고 색안경 케이스가 다다. 그것 가지러 친구들의 소중한 시간 2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그냥 도시 외곽의 유명한 샤슬릭 고기구이 본점(Shasylyk 노미르 아진, No. 1)으로 갔다. 김철용 대표가 가르쳐 준대로 양고기 갈빗살(앙트리코트, 바라니나 러브라)과 조지아식 치즈피자(핫차푸리)를 시켰다. 두 달 전에 내가 느꼈던 그대로 여우들도 “양고기가 어찌 이렇게 부드럽고, 냄새도 안나고, 맛이 좋으냐? 피자도 어찌 이다지 담백하고 맛있냐?”라고 감탄하면서 먹는다. 평소엔 매우 붐비는 식당인데 금요일 오후 모스크에 가는 시간이라서 한산하였다. 이 식사는 따님이 미주리대학교 교수 임용을 받은 수산 김석진공이 한 턱 냈다. 연전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해산 신도철공의 따님을 잇는 여우회 여식들의 쾌거다. 밖으로 나서려니 빗줄기가 그치지 않았다. 꽃차를 시켜 나눠 마시며 빗줄기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김철용씨의 안내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오르토사이(Orto Sai) 시장에 갔다. 비슈케크 4대 시장의 하나로 남쪽에 위치한 시장이다. 크기는 제일 작지만 그래서 장보기 편한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수산공은 운동복을, 유계공은 카우보이 모자를, 담곡공은 속옷을 산 후 다같이 꿀 상점에 가서 키르기스스탄의 유명한 하얀색 꿀을 샀다. 1병에 400솜(약 6,000원 상당). 한국에서는 당뇨환자가 먹어도 되는 신기한 꿀로 15만원 쯤에 팔린다고 한다.
시내버스를 체험해 보고 시내로 들어가잔 생각에 195번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벤츠버스를 카피하여 만든 중국산 전기버스인데 유리창도 크고, 저상버스로 한국 시내버스보다 승차하기 편리한 구조다. 1인당 차비도 20솜(약 300원)으로 저렴하다. 매 정차장마다 맑고 굵은 남성 목소리로 키르기즈어 안내방송을 한다. 들을 때마다 뜻은 몰라도 참 듣기 편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당초에는 에르킨딕 가로공원을 걷고 시내 구경을 할 예정이었으나, 퇴근시간 교통체증에 막혀 시간이 너무 걸려서 그냥 아파트로 가기로 하였다. 그것도 하차장을 잘못 알아서 정거장을 한참 지난 후 먼 길을 돌아서 가야만 했다. 당초 터키식 물담배 체험도 하는 멋진 카페를 선정해 두었는데 집에 들어 온 여우들이 피곤하여 다시 나가는 것을 꺼린다. 정학섭과 옥한석 그리고 나 3이서만 근처의 큰 식품점인 Globus 슈퍼에 가서 몇가지 먹을 것을 사서 들어왔다. 우리들 만류에도 한석이 스파게티면과 소스를 주섬주섬 담더니 집에 와서 끓여서 내오는데 맛이 꽤 괜찮다. 역시 재주꾼이다. 맥주도 한잔씩 나누며 담소하다가 문득 다른 일로 출장 왔다가 내일 귀국하는 지인 생각이 나서 나 혼자 8시쯤 일어나서 20분 떨어진 City Stay Hotel에 가서 한재광씨에게 꿀 1병을 건네고 11시까지 얘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