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짐을 찾아서
이름만 들어도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도시가 있다. 내겐 아메리카 대륙의 지명이 그러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아름다운 공기), 로스 앤젤레스(천사), 라파즈(평화), 그리고 리우데자네이로(1월의 강)... 2024년 초 도착한 키르기스스탄엔 멋있는 이름이 없다. “안개 낀 파리”는 낭만적인데 “안개 낀 비슈케크”는 습기 찬 비스킷이 연상되어 어감이 영 푸석하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카라콜(Karakol)이다. ‘검은 호수’라고 했다. 게다가 ‘카라’가 ‘위대한’이란 뜻도 있노라고 했다. 그리고 보니 대몽골제국의 수도가 ‘카라코룸’이었고 내 인생 버킷 리스트에 올라있는 파키스탄의 세계 최고(最高)의 도로가 ‘카라코람(검은 돌) 하이웨이’였다. 그러고 세계 최고 마에스트로의 이름도 ‘키라얀’이다. 이리하여 카라콜은 뭔가 신비함이 깃든 도시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여름, 집사람 친구들이 왔을 때 산속 살레에 예약하고 리프트를 타고 산 위에 오르자는 낭만적인 계획을 짜고 카라콜엘 갔었다. 그런데 산 초입에서 도로공사를 한다고 차량통행을 금지하여 리조트에 근접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카라콜 시내의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에서 불편하게 자고 돌아 온 적이 있다. 그 후 카라콜 스키장은 친구들에 대한 아내의 심리적 짐이 되었다. 난 금년 여름쯤에나 알틴 아라산 가는 길에 들러 볼까하고 있었는데, 비슈케크에 다니러온 유니스 선교사께서 불을 질러 버렸다. “카라콜 스키장은 눈 쌓인 겨울에 오셔야 예뻐요.” 눈 녹기 전에 얼른 다녀오자는 아내의 채근에 짐짓 못이기는 척하고 여행계획을 짰다. 현지어 문맹인 늙은 영감이 짜는 계획이 어디 쉬웠으랴. 좌충우돌 사무소의 여직원까지 괴롭히면서 버스표와 숙소를 겨우 예약했다. 금요일, 토요일은 이미 만석이라서 예약이 되지 않았다.
2025년 2월 23일(일)
드디어 출발이다. 일요일 오전 11시 출발하는 Go Bus에 탑승했다. 지난겨울 내내 혼탁한 공기를 마시며, 동면하는 곰처럼 비슈케크에 갇혀 지내다가 약 100일만에 처음 도시 밖으로 나가는 길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드물게 보는 대형버스라선지, 스키철이라선지 만석이다. 6시간 이상 걸리는 길 운임이 1인당 600솜. 비싸지 않은 요금이다. 행복한 미소를 띈 젊은 여성이 한 아름 꽃다발을 들고 우리 뒷 켠 좌석에 앉았다. 그 옆에 얌전하게 생긴 사내가 수줍은 듯 조용히 따라 앉는다. 프로포즈라도 한 것일까? 우리가 예약한 좌석은 중문 오르는 계단 바로 뒤라서 바깥 조망이 방해 받지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우측으로 들판 넘어 웅장한 설산 풍광이 펼쳐진다. 설산은 늘 봐도 지루하지 않다. 올라가지 못하는 산이니 온갖 상상을 담을 수 있는 신비한 공간이다. 제법 화창한 햇볕을 맞으며 떠나는 상쾌한 여정이다. 바깥 구경하는 재미에 졸음도 끼어들 틈이 없다. 2시간 후 도로변 휴게소에서 약 20여분 정차했다. 후진국에선 할 수 있을 때 미리미리 화장실을 다녀와야 된다. 10솜을 내고 화장실을 갔다. 수세식 변기가 제법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으나 칸막이 높이는 고개를 들이밀면 다 보일만큼 낮다. 측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인심이 다르다더니,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문득 너무 비싸단 생각이 든다. 10솜? 150원? 한국에선 다 공짠데... 그런데 결과적으로 참 잘 다녀왔다.
주차장 한가운데서 반팔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 둘이 눈에 익은 요란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 겨울에 반팔? 게다가 뭐 저리 방정맞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야? 쟤들 한국 애들 아냐?하고 있는데 한국 젊은이들 맹랑도 하다. 자기들이 먼저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죠?”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보통 애들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대표적인 21세기 신한국인 여성들이다. 둘이서 제한된 경비로 이러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1주일 여행 코스를 짜달라고 Chat GPT에게 부탁해서 받은 여정에 따라 휴가 내고 키르기스스탄에 왔단다. 알틴 아라산을 찾아가는 길이란다. 알틴 아라산? 거길 겨울에 간단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눈이 많이 쌓였을텐데 어떻게 가시려구? 태연하다. 말타고 갈건데요? 산장에 예약도 해놓고 말과 마부도 수배해 놓은 상태란다. 우와~ 용감타, 앳된 처녀 둘이서. 우리 세대라면 상상도 못할 모험이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갔다. 이젠 휴게소도 없다. 내리 3시간을 더 덜컹 거리며 달렸다. 그래도 설산과 설원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풍광이다. 이제 카라콜이 1시간 남짓 남은 도시인 뚜프(Tyup) 시내로 들어섰다. 서쪽 하늘이 살포시 물 들어가는 시간이다. 갑자기 차가 쿵쾅거리더니 뒤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차가 멈췄다. 몇 번 시동을 걸어봐도 소리만 요란하고, 시커먼 연기만 피어오를 뿐 움직이지 않는다. 운전수 2명이 한 명은 담요를 끌어안고 얼른 차량 밑바닥으로 기어 들어가고, 또 한명은 버스 복도 바닥의 해치를 열어 제치고 다급하게 수리에 나선다. 열심에 비해서는 진척이 없다. 한 명이 부품을 구하러 택시를 잡아타고 나선다. 그리고도 2시간을 더 길에서 서있었다. 우리도 짐칸에 맡긴 가방을 찾아서 택시로 떠나려했지만, 시동이 꺼지니 에어 밸브가 작동하지 않아서 짐칸 트렁크도 열지 못한단다.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한국인 4명에 짐칸에 짐을 맡긴 현지인 7-8명만 어두워진 버스 칸에 어정쩡하게 남아 있다. 우린 산속에 있는 리조트를 밤길에 찾아 가야되니 어쩌지 하고 안달하고 있는데, 젊은 한국인 여성 둘은 초행길임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자신감, 담대함. 이게 후진국세대와 선진국세대의 차이다. 점점 난감해지고 있을 때, 아까 꽃을 안고 탄 여성이 다가와서 제법 유창한 영어로 전화번호를 건네면서 이것이 버스회사 매니저의 연락처니 염려말고 카라콜로 가서 나중에 짐을 찾으란다. 자기네들도 그럴 것이니 따라오란다. 미인이 친절도 하니 더욱 예뻐 보였다. 저 앞에 미니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 여성 둘이 먼저 잽싸게 버스로 올라탔다. 걸음 느린 아내를 독려하여 따라가니, 먼저 온 꽃 든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더러 먼저 오르란다. 안으로 들어가니 남은 좌석은 딱 둘뿐이다. 어물쩍 서있는데 활짝 웃으며 자기들은 다음 버스타고 가면되니 그냥 먼저 가시란다. 천사를 만난 것 같다. 옳게 인사도 못한 채 버스가 출발했다. 빼곡 들어찬 미니버스 안에서 뒤돌아 봐도 어두컴컴한 밤만 보일 뿐 천사는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다시 덜컹덜컹 어두운 밤길을 헤쳐서 카라콜 시내의 썰렁한 정류장에 우릴 내려 주었다. 버스 기사도 차비를 받지 않는다. 그냥 가란다. 웬 사람들이 이리 친절한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밤 8시 30분. 카라콜 버스 정류장에는 한국인 4명만 달랑 서있거니 했다. 그런데 한 명이 더 있었다. 웬 중년 남성이 비닐봉지를 들고 서있다가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더니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이 분 또한 몇일 전에 키르기스스탄에 온 한국인이었다. 무작정 혼자서 떠나온 여행이란다. 용감한 한국인 방랑객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젊은 여성 둘은 벌써 버스 안에서 택시를 불러 놓았단다. 내리자마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택시를 확인하고 떠났다. 노파심에서 결코 무리하지 말고, 안전한 여행을 할 것을 당부했다. 젊은 여성들은 오히려 우릴 걱정하는 눈치다.
우리도 앱(Yandex)으로 택시를 불렀다. 18km 거리에 1,170솜. 나이 지긋한 기사가 모는 아우디 600 택시가 왔다. 물론 한참 오래된 차지만 그래도 명색이 아우디니 힘은 세리라 믿고 올라탔다. 시내를 벗어나서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 초입에서 입장료로 1인당 300솜씩 징수했다. 리조트로 가는 제법 가파른 산길은 이름난 스키장이라선지 의외로 포장도 잘되어 있고 눈도 말끔히 치워져 있다. 산 중턱까지 부드럽게 올라갔다. 삼거리 길에 설치된 큰 광고판이 길라잡이로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왼쪽으로 돌자 이내 가파른 길이다. 응달인지 눈길이 미끄럽다.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헛돌기 시작한다. 몇 번을 시도해 봐도 헛바퀴돌기는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아우디 600이지만 눈길에선 아무 소용없다. 할 수 없이 살살 뒤로 후진하여 광고판 앞에 차를 정차했다. 그리고 보니 또 다른 승용차 1대도 올라가지 못하고 비상등을 켠 채 우리 차 옆에 주차해 있었다. 운전기사 얘기론 500 미터만 걸어가면 리조트호텔이란다. 이 춥고, 캄캄한 밤중에, 이 미끄러운 길을 걸어가라고? 난감해하고 있는데 다른 차의 부부가 호텔에서 특수차가 데리러 오기로 했노라고 알려준다. 택시비를 주고 기사를 돌려보냈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언제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아삼삼하다.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10여분 별을 헤아리며 기다리노라니, 과연 허머(Hummer)급 군용차 같은 큰 찦차가 나타난다. 우릴 태운 후, 견인줄로 다른 승용차를 끌어서 산길을 올랐다. 기사가 얘기했던 500m보다 두 배는 멀게 느껴졌다.
Kapriz Ski Resort는 산악지형에 어울리게 삼각형으로 지은 제법 거창한 5층 높이의 리조트 건물이다. 호텔방값은 두명의 조식 포함 8,000솜으로 미화 약 90불 정도니 이 아름다운 장소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외딴 산골의 스키장 호텔답게 입실이 19:00, 퇴실이 17:00다. 이용객들의 동선과 시간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운영방식이다. 로비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넘친다. 체크인을 하고 내친 김에 리셉셔니스트에게 Go Bus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짐을 호텔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직도 짐칸을 열지 못했단다. 두터운 외투도 그 안에 있고, 세면도구, 온천에서 사용할 수영복도 거기 있는데... 암튼, 시장기를 덜기 위해 1층 식당으로 갔다. 지금이 2월말인데 여기는 아직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점등되어 있고, 온갖 장식들이 연말연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비기독교도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축복의 계절이고, 파티의 계절이다. 누군가는 성탄절이 타락했다고 개탄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크리스마스만큼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도 없다. 그 엄숙한 이슬람의 금식기간인 라마단도 알고 보면 한 달 동안 밤새 벌이는 축제다. 인간의 본성에 맞게 성(聖)과 속(俗)이 적당히 섞여서 21세기 물질만능 세상에 맞는 종교적 기념일로 진화(혹은 세속화)된 것이 아닐까? 늦은 시간이라선지 대부분이 러시아인 같아 보이는 서양계 단체손님들이 좌석을 차지하고 왁자지껄하게 술도 마시며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린 겨우 남아 있는 입구 초입의 4인석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라이브 공연을 즐겼다. 검은 옷 차림의 키 큰 러시아 여인이 바이올린으로 ‘O Sole Mio’를 연주하고 있다. 느린 템포로 연주해선지 뭔가 잔뜩 힘을 들여서 억지로 소리를 지어내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전자 키보드를 연주하며 영어 팝송을 부르는 젊은 여성도 그저 아르바이트하러 온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이 완연했다. 가족을 따라온 어린 아이들이 작은 공을 발로 차면서 식탁 사이를 오가고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라선지 부모들도 제지하지 않고, 손님들도 그저 귀엽게 봐주고 있다. 내 눈에도 자연스럽고 귀엽게만 보인다. 리조트에 와서까지 정장을 입고 엄숙한 분위기로 식사에 집중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호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텔 바로 옆으로 스키 슬로프가 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니 리프트도 운행하지 않고, 스키를 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숲속의 바람이련가 저 멀리서 스르르 스치는 소리만 아득하고, 깊은 산속의 고요함이 사방을 감싸고 있다. 음력 1월 26일. 그믐 사나흘 전, 아직도 달이 떠오르지 않은 밤하늘은 여전히 캄캄하다. 사위가 어두운 중에 조명을 받은 스키 슬로프만 하얗게 반짝이며 흑백의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운 밤 풍경이다. 세면도구가 없어서 어쩌나 했는데 일회용 치약치솔이 구비되어 있다. 더운 물도 콸콸 잘 나온다. 심산유곡의 청계수라선지 물로 샤워만 하고 나와도 피부가 매끄럽다. 에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잠이나 자련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 온 카라콜 천산산맥 기슭의 고요한 호텔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 들었다.
2025년 2월 24일(월)
새벽에 아내가 별 구경하러 나갔다가 왔다. 호텔 조명이 밝아서 엊저녁같이 별이 또렷하진 않다고 한다. 느지막이 잠에서 깼다. 짐 가방이 없으니 뭔가 서둘러 해야할 일도 없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느긋함이랄까? 침대에 누워서 버스회사 매니저에게 여기 호텔 명함을 사진 찍어서 문자로 보내고, 아침이라도 급히 짐을 보내줄 것을 정중하게, 혹은 간곡하게 요청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아침 식사하러 가는 길에 리셉션 근무자에게 전화를 부탁하였다. 이번엔 전활 안 받는다. 허긴 짐 못찾은 승객들의 항의와 문의 전화가 빗발 칠테니 담당자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으리라. 조찬은 뷔페로 차려져 있다. 우리는 뷔페 King & Queen. 먹을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많이 먹었다. 식사 후 다시 호텔 주위를 산보했다. 멈춰서 있던 리프트가 운행하고 있고,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벌써 슬로프에서 할강하는 원색 복장의 멋쟁이 스키어들이 눈앞을 휙휙 스쳐 지나간다. 스키장 가득 젊음의 활기가 넘친다. 고개를 위로 돌리니 새하얀 설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저 산 아래론 눈 덮인 들판이 제법 광활하다. 리조트 호텔 지붕 위로는 완벽한 삼각형 설산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더욱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래 이곳이 그 유명한 카라콜 스키장이로다. 구 소련 시절 소비에트 최고의 스키장으로 올림픽 국가대표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고, 어디서 흘러나온 말인지 모르겠지만 세계 3대니 5대 스키장 중 하나라고 뽐내는 그 스키장이로구나. 우리 머리 위로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리프트가 움직이고 있고, 형형색색 복장에 스키를 장착한 탐승객들의 환호성이 공중에 가득하다. 우리는 스키는 언감생심. 그저 리프트 타고 산위 경치 구경이나 하러 온 늙은이들이지만 그마저도 두터운 외투가 없어서 으스스한 몸짓으로 바라만 보고 있으려니 처량하였다. 다시 호텔 리셉션으로 와서 다른 근무자에게 Go Bus로 전화를 부탁하였다. 역시 전화를 안받는다. 괘씸하게도 가져다 줄 의향이 없음에 틀림없다. 방으로 돌아와서 뒹굴뒹굴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수영복이 없으니 사우나도 못간다. 당초엔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숀-유니스 선교사님께 도움을 청해봐야겠다. 전화를 드렸다. 너무나 흔쾌히 리조트로 오시겠단다. 역시 부산 싸나이다. 두 분은 일찍 이민 간 미국 시민권자들이다. 숀(Sean)선교사님은 경남고 출신으로 나보다 두해 밑이다. 그러니 부산고 출신인 나와 행님-동생할만한 처지다. 미국에서 치과의사로 잘 살다가 부르심을 받고 이 외진 나라의 외진 도시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 한심한(?) 사나이다. 이 분의 부인도 어리석기(?)는 남편 못잖다. 글쎄, 서울음대 재학중 중앙일보 콩쿠르 우승자였다는 재원(才媛)이, 모든 것 다 포기하고 남편 따라서 이 산골짝에 와서 살고 있으니... 그러나 두 분은 소명을 실천하는 위대한 어리석음에 연신 싱글벙글하고 지내고 있다. 그러니 나같은 속물이 바라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부인할 수 없는 멋쟁이다. 비록 후진국 시골에 묻혀 살지만 그 풍기는 멋은 어쩔 수 없다. 이름만 해도 그렇다. 직접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이 분의 영어 이름이 우리 젊은 시절의 인기 폭발 영화 『007 James Bond』의 주연 배우였던 ‘숀 코넬리(Sean Connery)’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럼 부인은 ‘Bond Girl’이 되니 멋져도 한참 멋진 부부 아닌가?
정오 무렵 숀선교사님 내외가 외투에 목도리, 장갑까지 차에 가득 싣고 스키장으로 올라 오셨다. 반갑게 해후하고 다 함께 리프트를 타고 산꼭대기로 가기로 했다. 리프트는 1인당 400솜을 받는다. 다행히 햇살이 따스하다. 호텔이 있는 2,300미터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한번 갈아타고 3,040미터까지 약 25분 올라가는 제법 긴 리프트다. 우리 모두 애들처럼 즐거워하며 “하나, 둘, 셋”하고 두 명씩 리프트에 올랐다. 난 앉은키가 큰데다 동작이 굼떠서 리프트 안전장치를 내리다가 머리통이 쥐어 박혔다. 하마터면 좋은 경치 보러가다가 자칫 뇌진탕 일으킬까 걱정될 정도였다. 리프트는 높게 자란 삼나무 숲 사이로 한참을 오르다가 이윽고 가파른 설원을 치고 올라갔다. 숲 사이로 스키를 타고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분들도 있고, 가파른 언덕 능선을 따라 질주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나 상쾌할지 이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지경이다. 좌우로 바라다 보이는 경치가 점점 장엄해지기 시작하였다. 호텔에서 바라보던 경치보다 한 차원 높은 절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절벽을 약 80도 정도의 각도로 힘겹게 올라가자 이윽고 저 언덕 위에 나무로 지은 휴게실 건물이 보인다. 리프트 종점이다. 이번 겨울에 완공된 건물이라고 한다. 조심스레 리프트에서 내려서 100미터 쯤 완만한 경사길을 올라가니 3,040m 정상에 키르기스스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이 봉우리 좌우로는 가파른 협곡이 깊이 파여 있고, 대안의 산줄기가 깊은 주름이 새겨진 듯 흘러내리고 있다. 절경이다. 서북쪽으로 넓은 광야 같아 보이는 움푹 파인 설원은 이시쿨호수고, 그 너머로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을 이루는 천산산맥의 지맥에 있는 설산들이 띠를 이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동북쪽으로는 가장 높은 험산준령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이쪽 방향이 7,435m 천산산맥의 최고봉인 승리봉(Pobeda)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동북쪽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흐르는 산맥(Engilchek-Too Range)이 천산산맥의 주맥이고 눈에 보이는 봉우리들 마다 대략 5-6,000m급이다. 스키장의 주봉은 ‘카라콜봉’으로 5,216m이고 그 옆으로 5,170m, 4,273m의 두 봉우리가 스키장을 둘러싸고 있다. 스키 슬로프는 4,237m의 ‘프르세바르브코고’봉의 오른쪽 사면을 이용하여 개발되었다. 리프트는 3.040m에서 그치지만, 고난도 스키를 즐기는 매니아들은 3,450m의 슬로프 최정상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2,300m 지점까지 할강하고 있었다. 정작 달리는 스키어들은 얼마나 장쾌하랴만, 멀리서 바라보면 아슬아슬한 절벽 위를 쏜살같이 미끌어져 내리고 있기에 보는 이들은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절경의 경치에 몰입되어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데, 문득 어디서 “아파트, 아파트...”하는 익숙한 음률이 들린다. 근간에 세계적으로 히트하고 있는 블랙핑크 로제의 노래다. 국기봉 아래에 빙글빙글 도는 회전판을 설치해 놓고 관광객들이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나면 마치 여럿이 국기를 휘감고 춤을 춘 것 같은 동영상 파일을 만들어서 파는 장사다. 한국 노래가 카라콜 산봉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니 다시 한번 K-Pop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그렇지, 이 신령한 천산산맥 꼭대기에서 속세 탐욕의 상징인 아파트란 단어가 반복해서 울려 퍼지니 재미있다기 보단 천박한 느낌이 들어 부끄럽다. 청정한 하늘 아래 설산산맥의 준봉들이 공중을 나는 기차, ‘은하철도 999’처럼 줄지어 펼쳐져 있다. 중국 고전 속 신선들이 산다는 상상의 공간이었던 천산(天山)을 오늘날 우리는 하늘을 나는 ‘근두운(觔斗雲)’ 케이블카를 타고 순간이동하여 맘껏 호연지기를 함양할 수 있으니 옛 선조들이 바라본다면 우리는 모두 다 신선들이다. 3,000m 고지대지만 햇살이 따가워서 큰 추위를 느끼지 못하겠다.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산 후 야외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마시며 주변 풍광을 감상했다. 우리야 처음 보는 경치니 준봉과 설경에 압도되어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지만, 유니스 선교사도 감탄을 연발하고 너무 즐거워하신다. 그런데 뭐라고요? 여길 처음 와보셨다고요? 아니 어떻게 한번도 안 와보신 분이 카라콜 리프트 타러 오려면 겨울에 오시라고 우릴 불 질러 버립니까? 모두들 한바탕 웃어 제쳤다. 선교사팀들이 올 때마다 차량 자리가 부족하여 늘 양보하다보니 10년을 살고도 리프트를 처음 타봤노라고 하신다. 당연히 다음 순서는 숀선교사님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렇게 절세가경(絶世佳景)을 바라보며 고산준봉(高山峻峰)에 앉아서 잠시 속세를 잊고 유쾌한 담소를 나누었다.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내려오는 리프트는 또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을 굽어보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삼나무 통로를 지날 때는 손을 뻗으면 솔방울을 딸 수 있을 만큼 가깝게 스쳐 지나갔다. 카프리스 리조트의 삼각형 지붕이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리프트 길 바로 아래 일직선으로 뻗은 슬로프에서 빠른 속도로 할강하는 스키어들이 장난감 병정인 양 귀엽게 내려다보인다. 매우 즐거운 리프트 산행이었다. 슬로프로 걸어서 호텔로 가는 길에 어제 버스에서 만난 여성 중 한 명이 스노우보드를 들고 서있다가 인사를 한다. 엊저녁 숙소에 갖다가 짐을 못찾아서 오늘 가기로 한 알틴 아라산을 취소하고 스키 타러 왔단다. 참으로 Cool한 여성들이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한 장 건넸다. 그러나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늙은이의 기우(杞憂)쯤은 그냥 웃어넘긴다.
리조트 옆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를 시켜서 요기를 하고, 호텔 로비로 와서 근무자를 통해 다시 Go Bus에 연락을 취했다. 그제서야 응답한다. 버스 트렁크 문이 열렸으니 시내 어느 주차장으로 와서 가방을 회수해 가란다. 그리곤 내 What’s App으로 주차장 지도를 전송해 주었다. 처음부터 이러리란 예상은 했지만, 고객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그런들 내 어찌 하리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6시경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숀선교사님 차로 시내로 향했다. 당초 예정에 있던 악수(Aksu)온천이 위생검열에 적발되어 무기한 영업정지상태란다. 산길의 눈이 녹아서 도로가 질퍽질퍽하다. 패인 곳을 피해서 운전하느라 숀선교사님이 고생하셨다. 가르쳐 준 주차장을 찾아가니 학교 운동장만한 공터 저 구석에 우리가 타고 온 Go Bus가 정차되어 있다. 웬 어려 보이는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짐을 꺼내서 가는데도 무심히 앉아 있다. 정작 내가 짐을 들고 가서 내 것임을 확인시키고 들고 나왔다. 트렁크엔 단단히 묶어 놓은 큰 가방 두 개만 남아있다. 한국 여성들의 짐인 것 같다.
이제 밤 11시 55분까지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사려 깊으신 선교사 내외분께서 벌써 일정을 준비해 놓으셨다. 숀선교사님이 자기 집 근처 이시쿨 호반을 구경가자고 권한다. 카라콜 시내를 가로질러서 북동쪽 교외로 향했다. Pristan란 자그마한 호숫가 마을이다. 쑥쑥 자란 포플러나무 사이사이로 소비에트 시절의 집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가 황량해 보이지만 여름이 되면 낭만적인 호반마을의 정취가 가득할 것 같다. 아직도 호숫가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있고, 저녁 햇살을 받은 눈빛이 푸른 색조를 띄어 호숫빛도, 눈 쌓인 설원도, 마을까지도 연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호수 건너 톱니처럼 삐쭉삐쭉한 설산산맥의 준봉들만 하얗게 빛나고 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따뜻한 호수’ Issy-Kul의 푸른 호면에 잔물결이 살랑인다. 갑자기 나타난 4명의 침입자들에게 놀란 오리 떼가 물살을 가르며 퍼득이고 날아오른다. 마을의 강아지들도 일제히 짖기 시작한다. 내 가슴 속 숨겨진 무협지적 상상력이 날개를 편다. 그래 이 분들은 필시 강호(江湖)에 숨어사는 무림의 고수들이다. 호수에 일엽편주를 띠우고, 곧은 낚시 바늘로 세월을 낚는 절예(絶藝)의 무공을 지닌 서역(西域)의 노사(老師)들. 보기는 젊어 보여도 비전(秘傳)의 양생술을 연마하여 실제 나이는 수백살일지도 모른다. 보라 세속의 일을 티끌로 여기고, 이곳 설산 아래에 숨어사는 은둔자의 삶의 모습이 어찌 범인(凡人)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랴.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보검을 어깨에 멘 무림의 고수들이 극강의 경공술로 지붕을 가볍게 날아서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나 이곳은 현실의 공간이었다. 구 소련의 해군들이 극비리에 최신 어뢰 개발 및 폭발 훈련을 실시했던 곳이란다. 지금 있는 아파트들 대부분이 그 당시 군인들의 관사였다고 한다. 아직도 호수 끝자락에 오래된 해군 함정 1척이 정박되어 있다. 말하자면 미-소 냉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군 비밀기지였던 곳이다. 숀선교사가 앞장 서서 길을 안내한다. 쌓인 눈 사이로 사람들이 다니며 다져진 눈길을 따라 호수 끝단을 빙글 돌아서 다시 마을로 들어섰다. 숀선교사님댁은 매우 낡은 아파트 1층이었다. 그래도 내부는 제법 깔끔하게 수리해서 사시는데 큰 불편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천조국 미국사람들이 이 골짜기까지 들어와서 현지 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경건해 보었다. 이제 날이 어둑해 진다. 앙상한 포플러 가지 너머로 황혼빛이 물들어 간다.
시내로 나가서 저녁식사를 하자신다. 다시 동남쪽으로 펼쳐진 설원 너머 석양빛에 비낀 장엄한 설산산맥을 바라보며 시내로 돌아왔다. 예약해 둔 식당은 시골도시 식당이라고 하기엔 너무 멋진 고급식당이다.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고, 매우 화려한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먼 길 떠나니 간단히 먹자고 해도 손님 접대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두분의 넉넉한 인심이 이것저것 마구 주문하신다. 우리 입맛에 잘 맛는 푸짐한 저녁이 준비되었다. 맛있게 감사히 잘 먹었다. 이제 우릴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고 그냥 귀가하시라고 하니 이 도시는 버스정류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길거리에서 승차하는 곳이니 찬바람 부는 늦은 밤거리에서 몇 시간을 기다릴 수 없노라고 하신다. 다시 지난 여름에 가보았던 ‘등대(Light House) 카페’로 갔다. 수익금을 선한 일에 쓰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 같은 카페다. 문득 어제 카라콜에 여행하러 온 다른 선교사님이 계시니 모셔서 교제를 나누자고 하신다. 얼마 후 선한 인상의 선교사님이 카페로 들어섰다. 얼굴만 선(善)한게 아니고 성씨도 선씨인 분이다. 선교사가 될 운명을 타고난 분이신지 성씨도 ‘베풀 선(宣)’인 목사님이시다. 오래 전에 키르기스스탄에 오셔서 유치원을 설립 운영하셨고, 그 과정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고초도 겪으셨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도 선한 인상이 가득하신걸 보면 필시 성경 많이 읽으시고, 기도 많이 하시는 성령 충만한 분임에 틀림없다. 돌아가신 집사람 엄마의 고향인 전남 고흥 근처의 벌교 분이셨다. 거기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동네 출신이니, 이 분도 뵙기는 순해 보이지만 한 주먹하시는 무림 고수일지도 모르겠다. 카페가 문 닫는 10시까지 이 애기, 저 얘기 나누다가 이번엔 숀선교사께서 저녁 숙소로 잡아놓은 아르고 게스트하우스로 옮겨서 얘기꽃을 피웠다. 너무 무안하게도 우릴 밤늦게까지 환대하시려고 본인들의 숙소까지 마련하신 것이다. 러시아 출신 아줌마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나름의 분위기와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내가 그리스 신화의 아르고호 여행기에서 이름을 따왔냐고 물으니 반갑게 그렇다고 한다. 거실에 전시된 쇠로 만든 범선이 바로 아르고호 모형이라고 한다. 11시까지 얘길 나누고 먼저 선선교사님을 숙소에 모셔다 드린 후, 숀선교사님 차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마침 길거리에 Go Bus가 정차해 있었다. 숀선교사님 내외분께 감사와 작별인사를 드렸다. 이틀 뒤 조지아로 Vision Trip을 떠나실 예정임에도 우리를 위해 하루를 할애해 주신 정성에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버스에 올라서 제일 앞자리 3,4번 좌석에 당당하게 앉아있었다. 차장이 오더니 우리더러 자리를 비키라고 한다. 예약 버스표를 보여주었더니 우리 차는 11시 55분차고 이 차는 11시 20분차란다. 어? 분명히 Go Bus 밤차는 11시 55분 1대 밖에 없었는데? 할 수 없이 다시 짐을 들고 나와서 근처의 주유소 상점에 가서 20여분 정도 휴대전화 충전도 하고 쉬었다가 다시 밤거리로 나왔다. 아까 그 자리에 버스 1대가 정차해 있는데 Go Bus가 아니다. 이러다가 또 낭패 당하는게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하면서 버스에 가서 Go Bus냐고 하니 그렇단다. 한숨을 내리 쉬고 지정석에 다시 앉았다. 이제 앉아서 자고 가기만 하면 된다. 11시 55분, 만석이 된 버스가 출발했다. 맨 앞 열 운전수 옆쪽이니 운전하는 모습이 아래로 굽어보인다. 젊은 운전수는 길이 패여 울퉁불퉁한 도로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질주한다. 위험천만한 난폭 운전이다. 그야말로 스릴이 넘친다. 그러나 어쩌랴. 장갑을 꺼내 끼고 좌석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비포장도로에서 약 3시간을 흔들리다가 촐폰아타를 지나자 차의 흔들림이 줄어들었다. 4시간을 달려서 갈 때 들렀던 휴게실에서 20여분 쉬고는 운전수를 바꿔서 비슈케크로 향했다. 이젠 포장도로라서 한결 승차감이 좋다. 그제서야 지그시 눈을 감고 휴면을 취할 수 있었다. 아침 6시 비슈케크 승리광장에 도착했다. 우리 차가 얼마나 속도를 냈는지 35분전에 먼저 출발한 Go Bus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카라콜산의 선계(仙界)를 떠나 혼탁한 도시 비슈케크의 속계(俗界)로 되돌아 왔다. 먼동이 트려면 아직 먼 어두컴컴한 도심길을 가로질러 30분간 터벅터벅 걸어서 귀가했다. 공연히 들고 갔다가 열어 보지도 못한 채 그냥 되들고 온 짐가방이 유달리 무겁게 느껴진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따지고 보면 살아오면서 이랬던 적이 어찌 이번뿐이랴. 밤차에 흔들리며 오느라 카라콜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이 벌써 여러 해 전의 추억인 양 아득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하루 종일 비몽사몽간에 누워서 잤다. 아내의 표현대로 머리는 깨도 몸이 깨어나지 않는다. 다시는 밤차 타지 말자고 홍알홍알 거리면서... 잠에 취해서 누워있던 오후, 한국 여성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제 짐 찾고, 오늘 아침 3시간 동안 말 타고 눈쌓인 산길을 헤쳐서 알틴 아라산 산장에 무사히 도착했노라고... Oh, My God!
이번 여행은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와 아름다운 이들을 만난,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꿈이 아닌, 잃어버린 짐을 찾아 헤맸던 1박 3일, 43시간동안의 우스꽝스런 여정이기도 했다.
(기록: 2025년 3월 11일)
<추신> 키르기스어로 '카라콜'은 '검은 호수'가 아닌 '검은 손'이라고 직장 동료가 정정해 줌. '검은 호수'란 뜻의 '카라쿨'은 타지키스탄 파미르고원에 있는 호수의 이름이라고 함. 왜 '검은 손'인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듣지 못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