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향기: 한시(韓詩)로 읽는 역사와 인물 (5)
동방의 향기:
한시(韓詩)로 읽는 역사와 인물 (5)
"시대의 나그네 가을비에 길을 잃다"
< 秋夜雨中 (추야우중) >
-- “비 오는 가을밤에”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쓸쓸한 가을바람에 마음 괴로워 읊조린다.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랴.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깊은 밤 창밖에는 가을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불 앞 초조한 마음 만리를 달려가네.
고립무원(孤立無援). 참으로 암담하다. 치원은 일찍이 청운의 꿈을 품고 당(唐) 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한껏 문명(文名)을 떨쳤다. 왕의 부름을 받아 천년 왕국 신라를 중흥하기 위한 웅대한 구상을 품고 귀국하였지만 조국은 그가 그리던 나라는 아니었다. 실력이 아니라 족벌과 신분에 따라 관직이 주어졌고, 새롭게 등극한 진성여왕(眞聖女王, 재위 887-897)은 현군이기는 커녕, 삼촌인 각간(角干) 위홍(魏弘)과 불륜관계를 맺어 그에게 국정을 일임하였다. 여왕은 급기야 남색에 빠져 정사(政事)에는 관심이 없고 어린 낭도와의 정사(情事)만 탐닉하는 황음무도(荒淫無道)한 군주가 되었다. 국기는 문란해지고,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나니, 백성은 도탄(塗炭)에서 허덕이고 있다. 귀국 후 이내 외직으로 내몰려 10여년을 허송세월하였다. 시무책을 올려 아찬(阿湌) 벼슬을 받아 다시 국정에 참여하는가 싶었으나, 신분제의 벽은 그가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
도서 출간 협의를 위해 본 시화(詩話)의 컨텐츠를
별도 보관한 베타 버전(Beta Version)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저자의 이메일(solonga21@gmail.com)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
"그런 즉, 독자 제위(諸位)께서는 부산 해운대엘 가시거든 아찔한 고층건물과 밀집한 인파에만 눈길을 주지 마시고,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1,100여년 전 독자께서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위대한 선조가 품었던 천년의 고독을 느껴 보시기를 앙청(仰請)하나이다."
깊은 밤 창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는데
등불 앞 초조한 마음 만리를 달려가네
사진: 제령(霽嶺) 장원영(張元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