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진주, 바투미
2024년 10월 31일(목): 제7일차
(조지아 바투미에서)
푸근한 쿠션 속에서 아침 8시까지 포근하게 잘 잤다.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조식 뷔페가 제공된다. 세계 여러 인종들이 모여서 식사한다. 동양인들은 우리 일행 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도 사람들은 적잖게 발견되었다. 앞 테이블에는 터키계로 보이는 가족들이 앉았다. 여고생 또래의 두 딸이 접시만한 큰 빵(라바시)을 각자 하나씩 통째로 들고 와서, 테이블 보 위에 내려놓고, 손으로 큼지막하게 뜯은 후, 심각한 표정으로 소스에 꾹꾹 눌러 먹는 모습이 재미있다. 오늘은 여행 중 처음 맞는 ‘어슬렁 데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천천히, 민망할 정도로 여러 번 접시를 비우며 식사를 즐겼다. 낯선 나라의 창가에 앉아, 한가하게 이국적 식사와 차를 마시며, 이방인이 되어 보는 경험, 이것이 여행의 참 멋이다.
10시, 차를 몰고 나가서 인근 바닷가 공원 앞 길가에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멋진 해변공원이 펼쳐져 있다. 넓직한 잔디밭과 숲 사이로 돌고래 모양의 조각상이 있는 화려한 분수, 각종 조각상이 얹어져 있는 그리스식 기둥들, 한 구역 가득 빽빽이 자라나는 엄청 굵고 높은 대나무 숲 단지, 등등. 어떻게 이렇게 도시계획을 잘해놓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100미터 이상의 바닷가 넓은 해변을 자연 그대로 훼손하지 않은 채로 보전한 상태에서 폭 5미터 넓이의 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고, 그 다음 약 30미터 폭의 숲이나 잔디를 조성한 후, 약 3미터 넓이의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고, 다시 폭 10미터쯤의 숲이나 잔디가 있고, 그 다음에야 2차선 차량전용 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그 다음에서 시작한다. 군데군데 폭 100미터는 됨직한 나들목 공원이 길을 가로지르며, 그 위에 각종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놀랍다. 그리고 말도 안된다. 내 평생 어느 선진국에서도 이렇게 잘 조성된 해변공간을 구경하지 못했는데, 코카서스 변방 약소국의 소도시에 어떻게 이런 멋진 해변공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삼천리 반도 모든 해변마다 바닷속으로 파들어 가면서까지 횟집, 여관, 상점, 축대로 (요즘은 멋진 카페가 들어서는 추세라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뺑둘러 쌓여진, 완전히 망가진 우리나라의 해변을 보고 개탄을 금치 못했던 내겐 정말 경이로운 항구도시다. 같은 흑해라도 지난 해 가본 터키의 오르두(Ordu)에서는 질퍽한 진흙해변이었는데, 바투미 비치는 몽돌해변이다. 어디서 흘러 들어온 돌들인지 파도에 씻기고 닳아서 동글동글, 보기도 예쁜 수억개의 자갈들이 해변가 전체를 눈길 닿는 데까지 뒤덮고 있다.
어느 바다가 다르랴만 “그래도 흑해에 왔으니 흑해 바다에 몸을 담가 봐야지”하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바다 속으로 몇걸음 들어갔다. 바투미는 비가 많이 오는 도시라서 “비 내리는 태양의 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 오늘은 그저 부드러운 하늬바람만 스칠 뿐, 10월말이지만 날씨도 화창하고 파도도 높지 않아서 그다지 차지 않다. 바다빛은 하늘빛을 담는다더니 맑은 하늘이라선지 오늘따라 흑해의 바다빛깔은 검지 않고 그저 푸르를 뿐이다. 파도가 센 날이라면 자갈마당에서 물 빠지는 소리가 배토벤 교향곡 「운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더 장엄했을 것 같다. 문득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 몇 명이서 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태종대로 가서 어스름한 저녁 몽돌해변에 앉아서 듣던 그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자갈들의 합창소리와 그 장면이 떠올랐다. 우린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물 위에 떠있는 황혼의 그림자,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라는 노래를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자갈마당 물 빠지는 소리는 파도소리와 공명하여, 어둠에 잠긴 시커먼 앞산까지 우르르 진동했었다. 비록 내일 아침에 무시무시한 담임선생님의 폭력에 노출될 불안감도 없지 않았으나, 우린 잠시나마 숨막힐 것 같은 입시지옥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오십 몇 년이 흘렀다. 이제는 그 몽돌해변도 파헤쳐지고, 같이 갔던 녀석 중 하나는 시드니에서, 또 한 녀석은 시카고에서, 그리고 또 다른 녀석은 지리산 아래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노친네는 중앙아시아의 천산산맥 아래 키르기스스탄에서 살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다시 모여 정담을 나눌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구나...
아~ 센티멘탈 쟈니여...
몽돌해변에 앉아서 자그맣고 예쁜 자갈을 주섬주섬 주워서 배낭에 담았다. (이 돌들은 키르기스스탄까지 들고 왔다.) 흑해 바다 위로 해적선 모양의 유람선이 지나간다.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가락이 흑해의 수면 위로 널리널리 퍼진다. 흥에 겨운 탑승객들은 갑판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 바다 건너 우크라이나 해변에선 이 순간에도 젊은 군인들이 포연 속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수행 중일텐데, 이 곳은 마냥 화평하기만 하니 부끄럽다.
해변공원을 따라 포토존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해서 걷는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겠다. 바다로 돌출된 곶(串)까지 왔다. 북쪽 해변으로 흑해의 해안선이 들쑥날쑥 겹쳐져 보이며 울창한 숲과 현대식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고 풍요로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바투미 구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장소다. 역시 초현대식 디자인의 늘씬한 고층빌딩들이 즐비하다.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아마도 러시아와 터키 부호들이 투자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글자라기 보다는 도형에 가깝게 생긴 조지아 알파벳 33개를 모아서 구성한 ‘글자탑’을 지나자 바투미에서 가장 유명한 조형물이 보인다. 바로 ‘사랑의 탑’이라고 불리는 ‘알리와 니노’의 움직이는 조각이다. 아제르바이잔 작가 쿠르반 사이드의 소설 주인공인 아제르바이잔 귀족 출신의 회교도 알리와 기독교도인 조지아 공주 니노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각품이다. 은빛 금속파이프로 미로의 비너스상 모양의 8m크기의 남녀를 만들고 이 둘이 10분 간격으로 각각의 궤도를 공전하면서 서로 겹쳐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모바일이다. 국적과 종교를 넘나드는 두 남녀의 사랑의 여정,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조지아의 여류 조각가인 타마라 크베시타제 (Tamara Kvesitadze)의 2010년 작품이다. 역시나 잘 조성된 해변공원을 끼고 걷다가 한굽이 돌자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마리나가 나온다. 길가 노점상인이 솥단지를 걸고 옥수수를 팔고 있다. ‘옥수수 귀신’인 집사람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5라리(약 2,500원)를 주고 솥에서 꺼내 준 옥수수는 가히 내 팔뚝만하다. 내 평생 본 옥수수 중에서 가장 큰 것 같다. 거대한 옥수수를 쥐어들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내를 보니 나도 행복해 진다. 그러나 맛은 우리나라 찰옥수수의 쫀득한 맛을 따라가지 못하노라고 품평한다.
길을 건너서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이곳은 건축물 애호가들에겐 숨겨진 보물이다. 바투미의 역사를 반영하듯 터키식, 러시아식, 그리스식, 서유럽식 등 다양한 건물들이 산재해 있다. 19세기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기 전까지 오토만 치하에서는 상당수의 네덜란드인과 벨기에인들이 살았던 구역이라고 한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오래된 이태리 도시 광장에 있을법한 삼각형 지붕의 멋진 시계탑 건물이 보인다. 언뜻 보면 유럽 시계탑 건물의 원조격인 이태리 시에나의 시계탑을 연상시키나 붉은 벽돌에 유리창문이 혼합되어 훨씬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지은 시계탑이다. 시계탑 건물 앞으로 전체 약 5,700 제곱미터(약 1,800평) 정도의 광장을 멋진 레스토랑, 카페 등이 둘러싸고 있다. 여기가 피아자 광장(Piazza Square)이란다. 뭐야? 이태리어와 영어의 동어반복이잖아? 광장 한켠에 가설무대가 설치된 모양새가 밤이 되면 전자기타와 드럼의 굉음과 더불어 무언가 시끌벅쩍한 라이브 공연이 열릴 것 같다. 분위기는 꽤 오랜된 느낌인데 바자 오르벨라제(Vazha Orbeladze)란 현지 건축가가 베니스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서 디자인하고 2010년에 개장했다고 한다. 아하~ 그래서 광장 이름이 이태리어로 광장인 Piazza를 사용하는구나. 그래 그러고 보니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깜빠닐레(Campanile) 시계탑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비록 높이는 반밖에 안되어 보이지만... 광장 바닥 한가운데엔 직경 10m 크기의 유럽에서 가장 큰 인물 모자이크 원형 대리석 작품이 있다. 중앙에 인어가 그려져 있고 이를 둘러싼 5개의 원안에는 빨강, 파랑, 자주, 분홍, 초록색 옷을 입은 바다의 신들이 장식되어 있으며, 가장 외곽에 있는 8개의 둥근 원은 바투미를 둘러싸고 있는 온 세상의 평온한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항구도시의 이미지를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안 알려져서 그렇지 이곳은 이미 ‘리틀 이태리’란 별칭으로 꽤 유명한 공연장소였다. 플라시도 도밍고, 스팅 등 세계적인 가수와 팝스타들이 와서 공연을 한 곳이라고 한다.
연도의 다양한 건물들을 기웃거리며 걷다보니 잘 정돈된 정원 한가운데, 카이저 수염에 책을 들고 앉아있는 한 점잖은 신사의 동상이 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강대국의 압력에 맞서서 투옥과 시베리아 유배를 거듭하며, 바투미를 포함한 아자라(Adjara) 지역을 조지아공화국의 일부로 만드는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자이자 작가인 메메드 아바시데즈(Memed Abashidez, 1873-1937)의 동상이다. 그는 현판에 설명된 문구처럼 “아자라의 형제들과 나는 우리의 조국 조지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건만, 결국은 한때 바투미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였던 스탈린에 의해 1937년 ‘대숙청’ 기간에 사살되었다. 그는 아직도 조지아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그의 손자인 아슬란 아바시드제(Aslan Abashidze)는 1991년 소비에트 블록 붕괴 이후 할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아자라자치공화국’의 수장이 되었으나, 폭압적인 독재정치가로 군림하다가 2004년 ‘장미혁명’ 때 축출되었다고 한다. 못된 손자는 모스크바로 도망쳐서 아직도 1급 수배자로 비겁하게 숨어 지내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맞고 있으니 여기서 다시 한 번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약 5분쯤 더 걸어가니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화려한 광장이 나온다. ‘유럽광장(Europe Square)’이다. 이 광장은 19세기 후반 오토만터키 지배시기에 건설되었고, 20세기 들어서 러시아 지배 시절 바투미가 인기있는 바닷가 휴양지로 부각되면서 오페라 하우스 등의 공공건물들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을 휩쓴 예술적 풍조였던 ‘벨 에포크(Belle Epoch, 아름다운 시절)’의 영향으로 화려한 조각과 예쁜 첨탑으로 장식한 로코코 스타일의 웅장한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물결 모양의 첨탑지붕과 시간뿐 아니라 별자리까지 보여주는 천문시계(Astronomical Clock Tower)가 설치된 옛 국립중앙은행 건물이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땅바닥에서 꼬부랑 물을 뿜어내는 현대식 춤추는 분수가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주변 건물들에는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여 광장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게다가 광장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고전적 건물 너머로 늘씬한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겹쳐서 19세기의 우아함과 21세기의 화려함이 썩 잘 어울리는 경관이다. 어느 서유럽 도시 중심부 광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예술적인 광장이다. 그러나 ‘유럽광장’의 랜드마크는 따로 있다. 바로 ‘메데아(Medea) 여신상’이다. 주름진 드레스와 황금관을 쓰고, 오른손에 황금양피를 들고 이집트 오벨리스크 스타일의 네모 난 하얀 기둥 꼭대기, 높은 위치에서 흑해를 응시하며 서있는, 검은 얼굴의 여신상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 여신상처럼 강인하고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이자, Amadeo Modigliani의 초상화 그림처럼 아주 긴 목을 가진 연약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둥 중간에는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아손(Iason)이 타고 온 배 아르고호와 이아손이 그녀의 도움으로 용과 불을 뿜는 황금소를 물리치는 장면 등이 새겨져 있다. 바투미가 그리스 신화 속의 아르고호 용사들이 도착한 도시라는 신화적 연원을 만방에 선포하는, 2007년 조지아 조각가 Davit Khmaladze가 제작한 설치조형물이다. (아르고호 원정기는 일리아드, 오디세이와 더불어 모든 그리스신화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환타지 영웅 스토리다. 여기서는 수많은 일화가 실려 있는 장편 서사시를 메데아의 일화를 중심으로 아래 <상자 글>에 요약 설명해 놓았다.)
<상자 글> 아르고호 원정기 -- (요약)
BC 3세기경 로도스섬의 시인인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Apollonius Rhodius)의 서사시집인 『아그로노티카(Argonautika)』에 서술되어 있는 아르고호 원정대와 황금양털가죽 탐험기는 그리스 도자기와 폼페이 유적 벽화에서도 발견될 만큼 고대부터 인기있는 신화다. 많은 그리스 신화가 그러하듯 이 이야기도 신들 사이의 원한과 사랑의 업보가 겹쳐서 시작된다.
테살리(Thessaly)왕국의 창시자인 아타마스(Athamas)는 구름의 여신인 네펠레(Nephele)와 결혼하여 쌍둥이인 아들 프릭수스(Phrixus)와 딸 헬레(Helle)를 얻는다. 후일 아타마스는 테베의 왕 카드무스(Cadmus)의 딸인 이노(Ino)에게 반해서 다시 결혼한다. 네펠레가 홧김에 왕국을 떠나자 가뭄이 시작된다. 전처 소생에 질투를 느낀 후처 이노는 이들을 죽이려고 비밀리에 왕국의 모든 씨앗을 볶아버려서 싹이 자라지 못하게 한 후, 신관을 매수하여 농부들이 찾아오면 프릭수스와 헬레를 제물로 바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게 한다. 아카마스왕은 마지못해 이를 허락하고 이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감금해 둔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린 엄마 네펠레가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황금양을 보내서 두 남매를 탈출시키며, 황금양이 바다 건너 먼 안전한 왕국으로 너희들을 데려가겠지만, 절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그러나 딸인 헬레는 엄마의 당부를 잊고 아래를 굽어보았다가 양에서 떨어져서 바다(헬레스폰트라고 불렸던 오늘날 이스탄불의 다르데넬레스 해협)로 추락하여 익사한다. 흑해를 건너 무사히 콜키스(Colchis) 왕국에 도착한 프릭수스는 감사의 표시로 황금양을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Poseidon)에게 번제 드리고 (그 양이 하늘로 올라가 양자리 성좌가 됨) 그 황금양피를 보관한다. 한편, 콜키스의 왕인 아에테스(Aeetes)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의 아들로 그리스 본토 코린트 지역의 왕이었으나, 왕위를 헤르메스(Hermes)의 아들인 부오노스(Buonos)에게 넘겨주고, 바다를 건너 흑해 동쪽 해변에 콜키스왕국을 개국한 사람이다. 아에테스왕은 프릭수스를 환대하며 그의 딸인 찰시오페(Chalciope)와 결혼시키고, 이에 감격한 푸릭수스는 황금양피를 아에테스왕에게 헌정한다. 아에테스 왕은 그 황금양피를 그의 궁정의 참나무에 걸어두고 잠들지 않는 용에게 지키도록 하였다.
한편 이노의 악행에 분노한 결혼의 여신인 헤라(Hera)는 아타마스왕을 돌아버리게 만들고, 광인이 된 아타마스는 이노와의 사이에서 난 자기 아들인 레아르쿠스(Learchus)를 죽인다. 이노는 미쳐버린 아타마스를 피해 달아나다가 또 한명의 자기 소생인 멜리세르테스(Melicertes)와 함께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래서 나중에 바다의 여신이 된다.) 나중에 정신이 든 아타마스는 자기의 소행을 통탄하며 왕국을 떠나 황야로 향한다. (모든 신화처럼 이 줄거리도 여러 가지 다른 버전으로 줄줄이 이어져 간다. 그러나 아타마스와 이노에 관한 줄거리는 이쯤에서 그치기로 한다.)
얼마 후, 이올쿠스(Iolcus) 왕국의 적통 왕자지만 광야에서 숨어서 살아 온 이아손(Iason, 영어명 Jason)은 왕위를 불법 찬탈한 숙부 펠리아스(Pelias)에게 왕좌를 넘겨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펠리아스는 만약 황금양피(golden fleece)를 찾아오면 왕위를 넘겨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이에 이아손은 아르고(Argo)호로 명명된 배에 헤라클레스(Heracles)를 포함한 50명의 기사들로 구성된 탐험단, 아르고노츠(Argonauts)를 조직하여 북쪽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 이들은 작은 왕국들과 위험한 해협을 거치면서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콜키스왕국에 도달한 후 아에테스(Aeetes)왕에게 황금양털가죽을 넘겨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왕국과 왕권의 상징물인 황금양피를 호락호락 넘겨줄 리가 만무하다. 아에테스왕은 만약 숨 쉴 때 마다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황소에 쟁기를 씌우고 아레스 평원을 갈면 가져갈 수 있노라고 한다. 그리고 들판에 용의 이빨을 심어둔다. 불가능한 미션을 측은히 여긴 여신 헤라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그녀의 아들인 에로스가 아예테스왕의 딸인 메데아(Medea)가 이아손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마력을 가진 메데아의 도움으로 이아손은 황소의 불길로부터 보호받고, 용의 이빨에서 변신한 용사들을 주술이 걸린 들판의 돌을 던져서 서로 싸우게 하여 전멸시킨다. 그리고 메데아가 준 묘약을 용의 눈에 뿌려서 잠들게 한 후 황금양피를 훔친다. 메데아는 이아손을 따라서 왕국을 탈출하고 추격하는 남동생 압시르투스(Apsyrtus)를 간계로 죽여서 시체를 갈가리 찢어서 바다에 뿌린다. 아예테스왕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느라 추격을 포기한다. 이아손 일행의 잔인한 행보에 분노한 제우스신은 이들이 흑해를 순항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결국 아르고노츠 탐험단은 다뉴브강을 따라 아드리아해로 가서 아드리아해를 한바퀴 돌면서 고생하고, 다시 알프스를 건넌 후 이태리반도 서안의 티레네해를 거쳐 동지중해를 뺑뺑 돌면서 아프리카 북쪽 해변에까지 밀려갔다가, 결국 크레테섬을 거쳐서 겨우 그리스 반도로 귀향한다. 그들은 귀향길에서 출발여정보다 몇배 더 길고, 훨씬 더 많은 난관을 겪는다.
이올쿠스왕국에 도착한 이아손은 황금양피를 펠리아스왕에게 바치고 왕권을 요구하나, 펠리아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이에 분노한 메데아는 펠리아스의 세 딸들에게 아버지를 회춘시켜주겠다고 꾀면서 늙은 양을 토막 낸 후 약초를 넣고 삶아서 어린 양으로 환생시키는 마술을 보여 준다. 어리석은 딸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토막 내어 삶지만 메데아로부터 약초를 얻지 못해서 환생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왕위는 이아손에게 오는 대신 펠리아스의 아들인 아카스투스(Acastus)가 차지하고, 아카스투스는 이아손과 메데아를 코린트로 귀양 보낸다. 코린트에 온 이아손은 어처구니없게 코린트왕 크레온(Creon)의 딸인 크레우사(Creusa)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사랑의 약속이 깨진 것을 깨달은 메데아의 잔인한 복수가 시작된다. 우선 그녀는 저주받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크레우사에게 보낸다. 이를 입은 크레우사는 불길에 휩싸여 죽고, 딸을 구하려던 크레온왕도 불타서 죽는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메데아는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난 두 아들도 죽이고, 그녀의 할아버지인 태양신 헬리오스가 보낸 용이 모는 마차를 타고 아테네로 떠난다. 후일 이아손은 영웅 아킬레스의 아버지인 펠레우스(Peleus)와 함께 이올쿠스 왕국을 함락시키고 아카스투스왕을 죽인다. 이올쿠스의 왕좌는 이아손과 메데아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로, 엄마의 살해를 모면한 유일한 아들인 테살루스(Thessalus)가 차지한다. 헤라의 저주를 받은 이아손은 이제는 폐선이 된 아라고호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던 중, 이물이 떨어져 나가면서 압사한다.
사각형 유럽광장의 꼭지점 부근과 연결된 또 하나의 광장으로 들어서자 광장 끝으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코린트식 기둥들로 입구를 장식한 단아한 오페라하우스와 잘 가꾼 정원이 보이고, 광장 한가운데에 정교한 장식의 멋진 분수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 해당되는 로마의 신 넵튠(Neptune)을 형상화한 분수다. ‘유럽광장’이 그리스 신화의 공간이라면, 이 곳은 로마 신화의 공간이다. 물의 신인 넵튠은 웬만한 유럽도시 중심부 분수대의 단골소재다. 로마, 마드리드, 베를린, 플로렌스, 베르사이유 궁전까지... 분수대 한가운데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넵튠이 삼지창을 꼬나 든 채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고, 물줄기 뿜어져 나오는 사이사이로 늘씬한 나체의 인어공주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니 얼마나 세속적 욕망과 잘 어울리는 분수인가? 바투미의 분수도 넵튠과 사방벽에 설치된 방패를 금빛으로 도장하여 문자 그대로 화려하다. 그러나 이 분수는 르네상스 후기 1566년에 완공된 이태리 볼로냐의 넵튠분수대를 모방한 작품으로 2010년에 완성된 것이기에 독창적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는 높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금빛 창을 꼬나 든 넵튠의 뒷 배경으로 금빛 회전전망대가 설치된 바투미 최고층 빌딩 ‘르 메르디앙호텔’의 뾰쪽한 첨탑이 겹쳐 보이면서 연륜만 뽐내는 유럽 도시의 낡은 분수대보다 훨씬 신선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내륙국에서 10개월을 지내다 왔으니 항구도시에서는 생선요리를 먹어야겠다. 여러 관광안내 책자에서 소개해 준대로 차를 몰고 도시 외곽의 수산시장으로 갔다. 주차공간을 찾기 힘들어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자 웬 할머니가 손짓까지 하면서 친절하게 저 쪽에 주차하라고 공터 한 켠을 가르킨다. 참 상냥하시다 생각했는데 밥 먹고 나중에 나올 때 보니 어김없이 주차료라면서 약간의 돈을 징수해 간다.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식당에 요리를 부탁하는 시스템이라고 들었기에 수산시장으로 걸어가노라니 저마다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고 나서는 호객질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영어도 곧 잘하는 웬 잘 생긴 젊은이가 나타나서 그럴 듯해 보이는 식당을 가리키며 저 곳이 자기네 식당이니 자기가 잘 안내해 주겠단다. 젊은이를 따라가노라니 우린 언질도 주지 않았건만 다른 작자가 나타나서 자기가 찜한 고객을 왜 낚아채 가느냐고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한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청년을 따라 들어간 수산시장은 불과 열 댓개 남짓의 가게에, 생선도 별로 많지 않은 초라한 시장이다. 그리곤 자기 이모라면서 웬 생선가판대로 우릴 데리고 간다. 그런지 어쩐지, 그냥 자그만 철갑상어 1마리와 꽁치 등 잡어 몇 마리를 바구니에 담아서 지불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법 비싸게 지불했다. 상술인지 서비스라며 생선 알 4개를 담아준다. 청년은 생선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앞장서서 걸어간다. 그리곤 골목길에서 마주친 어느 중년 남성에게 우리를 인계한다. 그리고 우린 엉뚱한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그 미남 청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소위 말하는 ‘삐끼’였다. 그리고 우린 그 잘생긴 청년에게 낚인 ‘생선’인 셈이다. 어쨌건 모든 식당들이 바다 속으로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바다로 돌출한 야외 데크에 앉아서 독일제 바스타이너(Wasteiner) 맥주 1병을 나눠 마시며 요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바스타이너는 독일 브레멘에서 유학한 후배가 자기네 동네 것인데 세계 최고의 맥주라고 거품 물고 칭찬하던 바로 그 맥주다. 몸 컨디션도 안좋은 상태에서 서늘한 바닷가 날씨에 차가운 맥주를 마시니 세계 최곤지 최전지 그저 차가운 느낌뿐이다. 게다가 한참을 기다려도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1시간 반쯤 있다가 겨우 나온 요리는 우리 것이 아니다. 상어가 없다. 또 약 20여분을 기다려서야 요리가 나왔다. 튀김 반, 구이 반이다. 시장이 반찬이라선지 제법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칼칼한 밥반찬과 더불어 먹는데 익숙한 한국인들에겐 밋밋한 빵과 겨우 1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 뻑뻑한 생선요리가 뭔가 빠진 것 같이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2시간가량 덜덜 떨며 기다리다가 먹었으니... 수요자보다 공급자가 많은 불완전경쟁 시장. 호객행위와 바가지가 횡행하는 난장판.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시장이다.
사령관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 차로 그보다 더 높은 산위에 있는 수녀원엘 가자고 한다. Good Idea! 도심에서 동북쪽 방향의 뒷산으로 향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더니 산 속에는 의외로 많은 단독주택들이 숨겨져 있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을 올라가서 다시 숲속 길 몇 굽이를 돌고 나니 절벽 위에 자그마한 주차장이 보인다. 도심 기준 약 10km, 수산시장에서 20분쯤 운전해 온 셈이다. 차를 세우고 엉성한 철문으로 막아 놓은 경내로 들어서서 다시 울창한 숲길을 7-8분 걸어 올라가서야 교회가 있었다. 조지아 말로 성삼위일체인 사메바(Sameba) 교회는 아자라-구리아 산맥 외곽의 해발 400m 작은 봉우리 산마루에 한 송이 장미처럼 오똑하게 서있다. 바투미시와 광활하게 펼쳐진 흑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굽어보노라니 저 아래 케이블카 종점 전망대가 손톱만하게 보이고, 콩알만한 케이블카가 무궤도열차인 양 공중에서 일직선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Breathtaking!! 수산시장에서 맺혔던 답답한 마음이 싹 사라지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탁 트인 전망이다. 교회는 웅장하기 보다는, 조지아식 삼각형 지붕의 균형미를 갖춘 단아한 건물 2채로 구성되어있다. 세월의 흔적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깔끔한 외관의 교회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사는 문자 그대로 역경(逆境)이었다. 교회는 19세기 중반에 신축되었지만, 1877년 러시아-터키 전쟁 중 오토만터키 제국 군대에 의해 폭파된 후 70년동안 농산물 저장창고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1947년에야 다시 교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1976년 화재로 전소되어 버린다. 그리고 4반세기가 지난 후, 2002년에야 러시아에 사는 조지아 출신 사업가의 재정지원에 의해 현재의 교회와 수녀원이 건립되었다. 수녀원의 부속 교회로 사용되고 있어서인지, 본당 안 정면에는 금빛 바탕에 자주색 드레스를 걸치고 두 손을 벌려 환영하는 비잔틴 양식의 성모 마리아상이 크게 그려져 있다. 벽면의 그림들도 전체적으로 금색이 주를 이루어 화려면서도 깔끔한 느낌이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벽화들로 가득한 예배당이다. 그러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나이 지긋하신 서양인 수녀님이 오가는 관광객들에겐 무심한 척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서를 읽고 계셨다. 교회 안 기둥 뒤에서 살짝 촬영을 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으나, 그 거룩하신 모습을 거스려서는 안될 것 같기에 아예 사진기를 꺼내지 못했다. 대신 본당 입구 출입문에 새겨진 예수님의 12제자의 조각상, 두 교회 사이 회랑 돔 천정에 그려진 금빛 성모 마리아상과 그 아래의 베드로, 요한, 바울 3성인의 금빛 성화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제 서쪽 방향 흑해 위로 태양의 그림자와 벌건 윤슬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얼마 후에 저녁놀이 피어오를 조짐이다. 서둘러 내려가서 힐튼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일몰을 감상하기로 했다.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서 시내로 돌아 왔다. 흑해 바다로 떨어지는 태양을 못 볼까봐 조바심 내면서 주차를 하고, 서둘러 최상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좌석을 배정 받을 틈도 없이 우선 야외옥상으로 나가 서쪽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차! 쌍둥이 건물에 걸려 낙조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의 붉은 기운만 바라보면서 “아하~ 이 것이 흑해 일몰이로구나”하고 위안을 삼았다. 차라리 석양 햇살이 비껴 조명되어 희미한 붉은색조가 드리운, 그래서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동쪽 방향의 고층건물들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잘 조성된 도시의 경관이 훨씬 아름다웠다. 동남서 어느 방향으로도 흑해는 막힘없이 잘 보였다. 요리조리 한참 사진을 찍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스카이라운지의 창가 자리는 이미 다른 손님들이 다 차지했기에 2열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높은 천정의 통창 유리라서 바깥조망은 여전히 멋있다. 좀더 어두워지자 유리창 밖 도시경관과 반대창에 비친 도시의 불빛,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까지도 되반사되어 우리가 바라보는 통창에 비현실적인 장면이 어른거린다. 한참 바라보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핫차푸리 빵, 퀘사디아, 까르보나라 샐러드 등을 주문하고, 자랑스레 와인 쿠폰을 내밀었다. 배달된 테이블 와인 3잔은 갓 담은 와인인 양 신선하나 깊은 맛은 전혀 없다. 프랑스에선 햇 와인인 보졸레 누보(Besujolais Nouveau)가 11월 셋째 주에 출시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조지아에선 10월말인데도 첫 와인이 나올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기가 위도가 더 높고, 세계 최초의 와인 생산국이라는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셋이서 붉은 와인이 담긴 반짝반짝한 유리잔을 사그랑 부딪치며 또 한번 “Happy Birthday, Happy Journey”를 나지막하게 외쳤다. 그렇게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 바투미에서의 둘째 날, 내 인생 60대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