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의 봄
키르기즈의 봄은 늦게 온다.
그러나 그만큼 빨리 펼쳐진다.
4월초면 와르르 봄이 몰려온다.
길가에 개나리가 피는가 싶더니, 땅 위로 파란 잔디가 솟아나고,
잡초 속에서 콩알보다 작은 보랏빛 제비꽃이 어느 틈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 개인 어느 날 아침,
밤새 돋아났는지, 앙상한 가지 위에 푸르른 이파리가 돋아난다.
하루 이틀 뒤면 연녹색 작은 이파리들이 나무줄기 위에서 미풍에 흔들린다.
학교를 방문한 손님들에게 흔드는 수백명 어린이들의 환영의 손바닥처럼
초록빛 이파리들은 한겨울을 지내고 아직도 으스스한 행인들에게
힘내라고 허공에서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꽃들이 피어난다.
화단에 심어 놓은 튤립들이 원산지의 땅 냄새를 맡고 유달리 싱싱하게 피어오른다.
머리에 깃털이 달린 아름다운 전통 모자를 쓴 키르기즈의 소녀들이
봄꽃 만발한 공원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동화 속 왕국의 신데렐라 같다.
오월이 되면
키르기즈의 들판은 마법에 휩싸인다.
민둥산 언덕 위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 위로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앞 다투어 피어오른다.
노랑색 민들레, 유채.
보라색 팬지, 아네모네, 라벤더,
빨강색 개양귀비가 두루 엉켜서
아득히 먼 지평선 끝까지 야생화가 가득 피어난다.
이때쯤 들판은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물감을 흘려 놓은 듯 화사해진다.
그리고 그 너머 구름 위로 설산의 연봉들이 우뚝 우뚝 솟아 있다.
장엄한 야생화 천국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꽃만 피는 것이 아니다. 잡초도 무성해진다.
인간세상도 그러하더라.
화려하게 치장한 봄 처녀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겨우내 숨어 살던 배고픈 민초(民草)들,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구걸하는 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부쩍 눈에 띈다.
허기져서 고개도 못가누는 듯 뼈만 앙상한 부인(?)을 휠체어에 앉히고 거리를 활주하며 구걸을 하는 아랍인 복장 차림의 장대한 구레나룻 아저씨도 다시 나타나고,
지 얼굴은 마스크로 둘러쓰고, 어린 딸(?)만 배기가스에 노출시킨 채 큰길 한가운데서 아슬아슬하게 구걸하는 비정한 어미(?)도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거지들도 봄에는 한결 유순하고 너그럽다.
어디서 저 잔인한 겨울을 넘기고 나타나셨는지,
이제 봄볕에 살아 있음만으로도 안도하고 계신 듯 태연한 얼굴이다.
막연하나마 다시 한 번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계절이다.
봄은 아름답다. 그러나 착각의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또 다시 절망으로 변할 세상을 잠시 희망으로 물들이고 있을 뿐이다.
계절이 변한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이 더러운 세상에서
봄은 단지 환상일 뿐이다. 뽀얗게 분장한 얼굴, 한편의 연극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다.
유별나게 아름다워서, 유별나게 잔인한 키르기즈의 봄,
그래서 더욱 서글픈
키르기즈스탄의 5월이다.
초안: 2025년 5월 15일
완성: 2026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