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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환 Jan 01. 2019

1# 정치란 무엇인가.

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정치란 각자의 선호가 대립하여 발생하는 부득이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색하는 과정이며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자신의 이익 추구에서 발생하는 갈등, 둘째는 자신의 안전 위협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개인이 이익을 추구함은 먹고살기 위해서이며, 안전은 자신이 보유한 재산과 신체를 지키고자 함이다. 그리고 이익을 논할 때는 경제론, 안전을 논할 때는 정치론이 등장하며 각 국가가 취하는 경제론과 정치론은 다르다. 


 그런데 경제와 정치 중 어느 것이 우선될까. 사람들은 돈벌이가 어려워지면 나라 경제를 걱정하고 이를 바꿔줄 정치에 의지하게 된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경제가 우선이며 정치는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경제론을 통해 개인과 국가가 부강해지고 이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정치론이 필요해지는 순환이다. 경제론에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체제라고도 하며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의 생산 및 거래를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시장체제다. 공급자는 자신이 만든 상품을 팔아 최대의 이익을 남기려고 하지만 지나치게 가격이 높으면 수요자들은 외면한다. 따라서 수요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적정 가격으로 상품을 시장에 내놓게 되며 이렇게 공급과 수요에 의해 자연히 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이러한 자유 시장은 저마다 이익 추구의 동기를 가지게 되며 경쟁적인 생산과 판매가 이뤄짐으로써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과 국가는 부강해진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이러한 공급과 수요의 자유시장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며 그의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은 정부의 개입이 없는 자유시장경제가 유지될 때 개인은 물론 국가도 부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부르주아지라 불리는 신흥 유산계급층인 자본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정부의 간섭을 피해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그들의 이해 논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분명 국가는 부강해지는데 다수인 노동자는 가난해지기만 한 것이다. 정작 노동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은 계속 가난해지고 이들을 고용한 자본가들은 놀고먹으면서도 계속 부유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왜 노동자들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자본가들만 부유해지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어느 한 경제학자는 자신의 일생을 바친다.

 

 그는 그의 저서 자본론(Das kapital)에서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기계, 노동이라는 3요소가 필요하며 재료와 기계는 목표 생산량에 따라 그 소요량과 수명이 정해져 있지만 노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낸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정해진 임금만을 주고 더욱 많은 일을 시키면 임금과 노동 생산량의 차이만큼 이윤을 남기므로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았으며 실제로 당시 노동자의 삶은 비참했다.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꼬박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해도 손에 쥐는 것은 경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낮은 임금이었고 학교도 가지 못한 채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 노동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오늘날의 상식에서는 상상도 못 할 노동환경이었다.     


 자본론을 저술한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경제학자로 꼽힌다. 그는 자본주의를 연구하여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가 자본론을 저술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며 자본주의의 분업체계는 장인을 멸종시키고 노동자를 단순 생산을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노동과 자본의 지위가 뒤바뀌는 노동가치의 역설이다. 장인(匠人)은 상품의 모든 생산과정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말한다. 장인에게는 상품 생산에 투여되는 재료 및 도구와 같은 자본이 단지 생산수단일 뿐이지만 자본주의의 분업체계는 장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이 자본에 종속되고 상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불만이 극에 달한 노동자들의 혁명에 의해 자본주의가 스스로 붕괴되고 공산국가가 출현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그가 예견한 자본주의의 붕괴는 오지 않았다. 세계경제대공황, 오일쇼크 등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위기를 넘겨왔다.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가진 결정적 문제인 부의 불평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었다면 후세대인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수정자본주의와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신자유주의는 동일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정부의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다투는 문제였다. 이러한 경제철학은 대한민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경제주의에서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게 된다. 


 진보는 큰 정부로서 정부의 적극적 시장개입과 복지정책을 추구한다. 반면 보수는 작은 정부로서 정부의 시장개입을 제한하고 소극적인 복지정책을 추구한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경제의 흐름은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고 그에 맞는 입장을 적시에 적용해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이는 이미 수정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로 전환되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으며, 따라서 우리는 때로는 진보를 또 어떤 경우는 보수를 등용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치는 철학의 관점이 아닌 단순히 편 가르기 싸움이 되어 가고 있다.     

 정치인의 집권을 위한 권력의지는 당연한 것이지만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정책경쟁이 아닌 색깔론, 친일 몰이 등 자극적인 여론정치를 하고 있으며 이에 깊이 빠져든 상당수의 시민들이 있다. 철학이 없는 정치는 독재를 위한 공갈에 불과하다. 


 사상가들의 철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정치인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애덤 스미스가 자본가들의 편이라는 선입견과 마르크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붕괴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이상주의자라는 편견은 이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애덤 스미스는 국가가 부강해지더라도 가난한 이들이 많다면 그것은 진정한 국부가 아니라고 하였으며 ‘세금은 자유의 배지‘라는 말을 통해 자유시장경제로 얻은 부를 다수와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마르크스는 ’왜 수많은 노동자들이 가난해야만 할까 ‘라는 의문과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일생을 경제학 연구에 바쳤다. 


 두 사람 모두 ‘만인이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공통된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자의 소신과 방법으로 저마다의 생각을 세상에 던진 것이다. 노동자를 위한 공산국가의 건설을 내세웠던 소비에트의 몰락은 애당초 그 시작부터가 철학의 부재였고 독재를 위한 교묘한 공갈로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소신은 그저 생각만이 아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의지로 실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철학이 규범으로 구체화되고 규범이 다스리는 법치국가는 새로운 체제를 경험해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체제 속에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판단하고 이를 보완할 또 다른 철학을 만들어내는 순환이 필요하다. 


 즉 철학과 법 그리고 역사는 하나의 톱니바퀴다. 이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정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神)의 권능에 가까운 행위이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본질이다.

 

 현재의 정치철학은 규범으로 작용하여 내가 내는 세금의 양을 다르게 하고,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며, 급여가 오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입시정책, 대출이자, 집값, 대학 등록금 등 수많은 것들로 변화하여 내 삶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먹고사는 문제를 논하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가져야 정치인들이 나의 눈치를 보고 나를 위한 정책을 내주며 내가 보다 잘 살 수 있게 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그들의 입맛대로 결정을 내린다. 그 입맛이란 자신들이 가진 현재의 권력을 지속하기 위한 기득권 보호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정치인에게 요구하고 감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과거와 현재의 정치사를 알아야만 한다. 과거사의 반성으로 발전적이고 보완된 현재의 정책이 나올 수 있으며 현재의 정책은 미래의 거울이 되므로 계속적인 보완을 위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애인에게 지속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떠나듯, 정치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나를 떠나고 내 삶은 피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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