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많은 순간을 지나오면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였을까?”
그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나는 어떤 날엔 아들이었고, 어떤 날엔 친구였으며, 어떤 날엔 연인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날엔 그저 이름 없는 행인이었을 뿐이다.
나를 정의하는 수많은 역할과 관계가 있지만,
그 모든 껍질을 벗겨내면 남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남는 건 단순하다.
살아 있었다는 사실.
그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의미를 찾는다.
일의 의미, 사랑의 의미, 삶의 의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의미는 어디에도 ‘준비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미를 만든다. 우리가 부여한다.
“이건 괜찮은 실패였어.”
“그건 나를 단단하게 했어.”
이런 말들은 사실, 그때의 고통에 우리가 나중에 붙여놓은 이름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표 덕분에 우리는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의미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는 것이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고통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도 고통 곁에서 피어났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상실도 깊었고,
열망이 컸던 만큼 좌절도 컸다.
그런데 그 고통 덕분에 나는 비로소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고통은 아름다움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고통 없는 삶은 평온하겠지만, 동시에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들리고 부서질 때마다, 삶은 우리에게 또 다른 결을 선물한다.
때로는 삶이 너무 무겁다.
책임, 후회, 불안, 사랑… 모든 것이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또 어떤 순간엔, 삶이 터무니없이 가볍다.
웃다가 눈물이 나고, 사소한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무거움과 가벼움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진짜 문제는 어느 쪽이 맞는가가 아니다.
그 무게와 가벼움 모두가 ‘나의 삶’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답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하는 게 아니라, 질문 자체가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답 없는 문제를 품고도 여전히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방식이다.
돌고 돌아 결국 나는 고요로 돌아온다.
폭풍을 지나고, 미로를 헤매고, 사랑에 무너지고, 타인과 부딪히며 살아왔지만,
마지막에 남는 건 고요였다.
그 고요는 공허가 아니다.
모든 것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은 해답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또다시 말한다.
“모르겠어.”
그 말이야말로, 내가 끝까지 붙잡고 싶은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