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고요 속의 시작

by 조가

그날, 세계는 멈춰 있었다.
바람은 불었으나,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걸었으나, 그들의 그림자만이 움직였다.
새들은 날개를 폈지만, 공중에 박제된 듯 멈춰 있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척’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살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정지된 틈에서 눈을 떴다.
눈앞의 세상은 어딘가 낯설었다.
빛은 있었으나 따뜻하지 않았고, 소리는 있었으나 뜻을 잃은 듯했다.
나는 순간, ‘깨어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잊었다.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꿈이 된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입에서 저절로 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그 말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며, 파문처럼 나를 감쌌다.
고요는 그 질문을 삼키고, 다시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너무 오래된 것이었고,
너무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혀온 소리였다.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내 안에 있었던 질문.
이름도, 이유도 없이 나를 따라다니던 그림자 같은 의문.

나는 걸었다.
길은 없었지만, 발은 저절로 움직였다.
발자국이 남지 않는 땅 위에서, 나는 방향을 잃는 법조차 잊어갔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으면 더 두려울 것 같았다.
멈춰 있는 세상 속에서, 나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미쳐간다는 징조일까.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때,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문은 오래되어 있었다.
검은 녹이 스며 있고, 손잡이는 부서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문만이 이 멈춘 세계 속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 위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나를 찾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잃어라.”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잃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지만, 이미 잃을 만한 것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름도, 시간도, 기억도 흐릿해진 채, 나는 문을 밀었다.

문 안은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었다.
그건 모든 색이 섞여 있는, 빛보다 더 깊은 어둠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의 숨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혹은 내 안에서.

“너는 누구냐?”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내 전신을 울렸다.
나는 입을 열었으나, ‘나’라는 단어가 입술 위에서 부서졌다.
대답이 되지 못한 채, 한숨처럼 사라졌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여정은 시작이 아니라 회귀라는 것을.
‘나’를 찾는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이미 수없이 지나쳤던 길 위로 다시 걷는 순례라는 것을.

나는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모르겠어.”

그 말은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건 고백이었고, 시작이었다.
이해할 수 없기에,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