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공포-完

Finale- Silent

by NickA

요즘 친구들과 통화하면

늘 같은 말을 한다.


“아… 요즘 진짜 리얼한 사람 없어. 그지?”


말은 거창하지만

실은 그냥 세상이 피곤하다는 뜻이다.


이런 전화는 괜찮다.

말이 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용한 토론이 된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반면 어떤 전화는

술에 취했을 때만 온다.

말이 쏟아지고,

정리는 없고,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나는 늘 받아줬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예전에는 그게 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전화가 울리는 순간

나는 조용히 거실로 걸어가

얼음물을 준비했다.


돌아오자

부재중.


나는

콜백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의 선택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용한 결별이었다.



군대에서,

나는 GOP에 있었다.


사수와 부사수로

밤마다 철책을 돌았다.


그날도 평소처럼

박격포 진지 뒤로 숨어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


부사수는 담배를 안 피워서

나는 뒤쪽에서 가볍게 불을 붙였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밤에 간부들이

소리 없이 순찰 도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또 왔나 싶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대대장이랑

정확히 같은 체형, 걸음걸이.


정면으로,

일직선으로,

우리 쪽으로.


우린 그대로 굳었다.


나는 담배 불을 끄고

진지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앞에도,

옆에도,

길 위에도.


밤공기만

멈춰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진지 뒤쪽은

숲이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

길도 없고,

빛도 없고,

발소리가 날 수 없는 곳.


까맣고,

비어 있는 숲.


나는

그날 본 것이

사람인지

그림자인지

지금도 모른다.



요즘 들어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사람들은

전화로 나를 잡아 끈다.


세상은

말을 요구한다.


하지만 숲은

설명하지 않는다.


귀신도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공격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계속 서 있는 존재다.



그날 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을 때

문득 떠올랐다.


혹시

그때 숲에 서 있던 것도


지금

내가 피하고 있는 것도


같은 종류의 ‘무언가’일까.


말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다가오는 것들.


나는

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어둠과 함께 누웠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 존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부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쉿.

너만 알고 있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