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ugh said
이미 끝난 질문
나는 원래
주목받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에너지 써가면서까지
일부러 주목받고 싶진 않았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학교는 계속 술렁였다.
“야, 이번에 전학 온 애
일본 사람이라는데?”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내 자리에 모였다.
질문을 던지고,
웃고,
속삭였다.
나는 무슨
동물원 우리 안에 들어간
새로운 동물 같았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 속의 호기심보다
시선 속의 거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얘는 우리랑 다르다”는 느낌.
그게 싫었다.
⸻
한국에 온 지 2–3년쯤 지났을 때,
나는 한창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부모님 얼굴만 보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다.
“난 왜 한국 사람이 아니야?”
그 말속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국적의 피로가 섞여 있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학교에서
졸업 앨범을 만들 거라며
각자 집에서 컴퓨터로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예전에 있었던
그 스쿨1xx4라던 사이트…
화면 속에서
눈, 코, 입, 머리 모양, 옷을 골라
‘나’를 만드는 게임.
이곳엔
다들 어찌나 멋있고 싶었는지,
히어로물 주인공처럼,
만화에서 튀어나온 문제아처럼,
머리 색은 비현실적인 형광색이었다.
각자의 캐릭터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으쓱거림이 따라붙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거기서도
어떻게든
실제 나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다.
눈매, 머리 길이, 얼굴형…
최대한 현실에 맞게.
화면에
내 캐릭터가 떴다.
그때
한 아이가 말했다.
“와, 완전 똑같이 생겼다!”
아이들은 웃었다.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애매한 표정으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무슨 결론이 났는지는
굳이
전해질 필요가 없었다.
⸻
한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나자
나는 여전히 부모님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목에서 도망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목소리를 조금 줄이고,
손동작을 덜 쓰고,
나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하고.
“나 이런 사람이에요”를 말하기보다
그냥
모른 채 지나가는 쪽을 택했다.
주목이 쏟아지는 순간마다
내 마음 한가운데엔
이 문장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주목받아서…
나한테 이득 되는 게 뭐지?”
⸻
지금,
이 숲 안에서
나는 주목이 아니라
정반대 상황에 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
나를 부르는 이름도 없고,
궁금해하는 질문도 없고,
웃음도, 웅성거림도 없다.
나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왜 여기 있는지,
묻는 사람이 없다.
이상하게도,
그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큰 위로였다.
⸻
그때
그 실루엣이 다시 보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더 가까운 나무 옆에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었다.
빛인지, 그림자인지,
사람인지, 사람 아닌지,
형태는 분명한데
정체는 알 수 없는 존재.
나는 멈춰 섰다.
예전에 나는
원하지 않는 주목 속에서
억지로 웃고,
억지로 말하고,
억지로 나를 설명해야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보이고’ 있었다.
⸻
그 실루엣은
나를 빤히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여기 있다”는 듯한 태도.
나는 묘하게 안심했다.
주목도 아니고,
관찰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감정.
그건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
같은 것이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숲 사이로
바람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주목받지 않아도
누군가와 같은 장면에
서 있을 수는 있지.”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조금 덜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