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좋아서 사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by NickA

퇴사하고 난 뒤, 정말 오랜만에 알람을 맞춰 일어났다.

은둔처럼 지내던 몸이라 그런지

초침 소리가 작게 울렸다가

천천히 방 안으로 번져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은 낯섦은 아니었다.

그냥… 어제부터 머릿속 한쪽에 붙어 있던 말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 문장이 가슴 안쪽까지 스며들어

아침 공기마저 잿빛으로 보였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와 헤어지고,

회사도 그만둔 지 한 달.

내 안에서는 좌절, 자책, 후회가

좁은 방 한가운데서 서로를 스치며 흔들렸다.


어떤 건 나를 탓했고,

어떤 건 세상을 조용히 밀어냈다.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괜찮아질 거야” 같은 말을 쉽게 던진다.

근데 나는 그 말을 정말 싫어한다.


그 말 하나 붙잡고 버텨온 시간이

내 청춘의 가장 허무한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말도 쉽게 믿고 싶지 않았다.


위로라는 말보다

차라리 방 안 공기가 더 솔직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여전히 어둡다.


군대 말년 어느 날이 떠올랐다.

행보관님이 중얼거리다

한 병사를 붙잡고 말로 몰아붙이던 장면.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와중에 이 말 하나만 또렷하게 남았다.


“여기 좋아서 군인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그 문장은 그땐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저 먼 배경음처럼 흘러갔다.

쓸려 나가던 욕설들 사이에 섞인 말 한 줄일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묘하게 그 말이

내 안의 허한 자리를 건드렸다.


좋아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

그 무게를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불합리한 걸 잘 못 견디는 편인데

정작 내 삶이 기울어질 때는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버티는 게 괜찮은 줄 알았다.


그게 내가 계속 미끄러진 이유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조용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만든 합리화였는지

그땐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스나이퍼 같은 인간인데

평생 활을 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멀리 보고, 정확히 보는 감각은

어쩌면 예전부터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정작 내 손에 쥐어진 건

내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 도구뿐이었다.


그러니 계속 빗나가는 것도

어느 정도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 생각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문장을 떠올린 순간

내 마음 어딘가에 작게 숨구멍이 생겼다.


거창한 희망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숨은 쉬어지게 만드는 정도의 구멍.


지금도 완전히 괜찮진 않다.

무섭고, 막막하고, 자신도 없다.


그래도 멈춰 있는 것보단

한 칸이라도 움직이는 게 나을 거다.


오늘은 이 글로 한 칸.

내일은 한 칸 더.


거창한 말은 못 하겠다.

지금은 그 정도면 된다.

그게 오늘 내가 버틸 수 있는 전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