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은 늘 그렇다. 조용한데, 괜히 짜증이 난다.
1. 세상은 그대로였다
전역하고 돌아왔을 때
세상은 아무렇지 않았다.
바뀐 건… 나였다.
해방감 같은 건 없었다.
대신, 내가 서 있던 자리만
살짝 어긋나 있는 느낌.
요즘 아침처럼
공기는 고요했고,
나는 괜히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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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용하게 시작된 균열
나는 제일교포라
사실 군대를 안 가도 됐다.
근데 그땐
여기서 계속 살아갈 거라 생각했고
병역 기피 논란이 매일처럼 터지던 시기라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걸렸다.
군대가
가고 싶지도,
싫지도 않았다.
딱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나는 대사관에서 국적 변경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의 공기와 흐름이
나를 그쪽으로 데려간 것뿐이었다.
그 시절, 나는 반골기질이 한창이었고
어른들이 뭐라 하면
말대꾸부터 나가던 나이였다.
그때 어떤 형이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항상 이렇게 잘랐다.
“너 군대 안 갔다 와서 그래.”
그 문장이
자존심을 눌렀다.
괜히 오래 남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입영 통지서를 들고 있는 나를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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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검, 그리고 1급
입대 전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심리검사도 같이 했다.
그곳에 있던 청년들이
어디가 안 좋다며 골골대던 이유를
그땐 몰랐다.
그냥
춥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다들 그런가 보다 했다.
모든 검사가 끝난 뒤
안내 음성이 흘렀다.
“축하합니다! 1급입니다!”
축하라는 말이
그때만큼 허무하게 들린 적이 없다.
아… 그냥
이쪽으로 흐르겠구나.
그 정도 느낌이었다.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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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도치 않은 낙인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관심병사가 됐다.
상황은 단순했다.
심리검사 도중 상담관이
기분 나쁜 말을 던졌고
나는 그냥 사실처럼 말했다.
“이 나라가 나한테 뭘 해줬다고
이렇게까지 날 보내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한 줄로
내 라벨이 바뀌었다.
그 후로 상담관은 자주 왔다.
물어보고, 적고, 다시 묻고.
군대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다른 칸으로 옮기는 세계라는 걸
그때 조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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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역 후, 다시 마주친 사람
시간이 지나고 전역 후
어느 자리에서 그 형을 다시 봤다.
예전처럼
군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를 꺼냈다.
나는 듣다가
그냥 말했다.
“별거 없던데요.”
도발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그 말밖에 안 나왔다.
그 형은 멈췄고
그 뒤로 군대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침묵의 의미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예전의 나는 아니라는 걸
그 순간 조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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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흔들림은 전역 후에 왔다
전역 후의 일상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 버거웠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사람들 사이에 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에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어느 날부터 벽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은
내 안에서 자라나는 숲 같았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고
길이 흐릿한 숲.
누가 만든 숲도 아니고
내가 만든 숲도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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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
어느 날
그 숲이 조용히 나를 삼켰다.
다리가 풀려
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머리를 감싸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큰 소리도 없었고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냥.
무너졌다.
근데 그 순간에도
멀리 아주 작은 빛 하나가 보였다.
확신은 없었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 빛이 있던 방향으로
한 칸 정도는 걸어봐도 될 것 같았다.
딱 그 정도.
그게 그날 내가 버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