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mallest things stay.
사라지는 줄 알았던 것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다.
어릴 때의 나는
숲을 무서워하기 전에
먼저 들여다보는 쪽이었다.
집에는 늘 곤충 대백과가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잠자리채와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들고
집 앞 공터로 나갔다.
모기에 물리든,
잔가지에 긁히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작은 것들이 움직이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 시절의 나는
작은 것들이 세상을 다 설명해 준다고 믿었고,
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곤충채를 들고 뛰쳐나가기 직전,
현관 앞에서 엄마가 모기 스프레이를
온몸에 뿌려주던 순간.
내가 나중에 벌레들을 방 안에 풀어둘까 봐
살짝 싫어하면서도
그 의식은 빠지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밖의 세계’와 ‘집’ 사이에 놓인
내 첫 장벽이었다.
나는 그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다.
⸻
나는 벌레를 잡아둔 게 아니라
돌봐준 거였다.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걸 챙겨주면
오래 산다고 믿었다.
그래서 먹이를 주고,
숨 쉴 구멍도 뚫어줬다.
근데 아무리 해도
애들은 죽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한 게 ‘보살핌’이 아니라
‘가둠’이었다는 걸.
겨울이 오면
우리의 공생도 끝났다.
아이 하나가
있는 힘껏 돌본다고 해도
기온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작은 생명이 죽을 때마다
나는 통을 들고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갔다.
그리고 조용히
물 위에 띄워 보냈다.
그게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
곤충을 잡으러 다니던 시절,
나는 늘 혼자였지만
가끔 함께 하는 채집 파트너가 있었다.
내가 살던 멘션의
경비 아주머니.
어느 여름
아주머니와 산에 올라
내 인생 첫 장수풍뎅이를 잡았다.
잠자리, 매미, 사마귀 정도밖에 모르던 내가
처음 본 ‘희귀한 존재’였다.
하지만 며칠 못 가 죽었고
나는 그 죽음을
아주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아주머니는
작은 몸을 비닐에 싸서 들고
나를 시냇가까지 데려갔다.
그리고 말했다.
“물에 보내주자.
이 물은 끝까지 가면
따뜻한 곳으로 닿는대.
그러니까 울지 마.”
그 말은 장례식도, 철학도 아닌—
작은 생명을 위한 단순한 존중이었다.
나는 그걸 완전히 믿었고
그 후로 모든 벌레들을
그 물길에 실어 보냈다.
⸻
우리 집은
부처님께 기도하는
불교 집안이다.
한 시기
너무 일이 안 풀릴 때가 있었다.
뭐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혼자 절로 올라가
주말마다 기도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내가 가둔 건
벌레가 아니라,
나였던 것 같다는 생각.
작은 통에 끌고 와서
폐쇄된 공간에 두고
죽음을 앞당긴 건
생명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세계를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
불교에는 살생이 금물이라는데
혹시 그게 지금
카르마처럼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닐지.
시냇물에 띄워 보냈던 애들 중
모두가 따뜻한 곳으로 간 건 아닐 텐데,
어쩌면 몇몇은
날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기도할 때
나는 가끔 속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그 말이
누구에게 닿았을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 한쪽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졌다.
⸻
그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갑자기 떠오른 건
아마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숲 때문일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숲 안에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다리가 풀리고,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지금은
간신히 호흡이 돌아온 상태다.
숲은
처음보다 더 조용해졌고,
조용한 곳일수록
더 많은 소리가 들렸다.
아직 완전히 괜찮진 않지만
곤충을 들여다보던 아이처럼
나는 다시
주위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나무는 생각보다 가까웠고,
바람은 아주 천천히
내 쪽으로 기울어왔다.
패닉의 잔재는
아직 등에 남아 있지만—
내 발끝은
분명 어딘가를 향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길을 모르지만,
적어도
눈은 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