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밤의 주인들

Night Creatures

by NickA

작은 밤의 주인들

1. 엄마의 상담실


정신과 상담은 몇 번 받아봤다.

하지만 그날은, 엄마가 상담받는다길래

흥미로워서 따라갔다.


우리 아주머니께서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가

단순히 궁금했다.


그날 나는

“나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안도감을 들고

그냥 뒤에 앉았다.


그 방심이

수문을 열었다.



상담사는 나를 보자마자

한 박자 늦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너도 알고 있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 순간부터 불길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한국어를 거의 못했다.

말이 느린 게 아니라,

언어가 다른 아이였다.


일본 시골 공립학교를 다녔고,

집에서도 부모님과는 일본어로 대화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학교에서 일기를 써야 했던 날들.


나는 일어로 아무 말이나 뱉었다.


“오늘은 해가 쨍쨍해서 더웠다.”

“문방구 가서 삼백 원짜리 아이스크림 먹었다.”

“맛있었다.”


그 말을 엄마가 받아 적었다.

나는 그냥 말만 했다.

그게 제일 귀찮지 않아서.


곱셈도 한국말로 못 했고,

지금도 암산할 때

머릿속에 일본어가 먼저 뜬다.


그건 비밀이 아니라,

그냥 오래된 습관이다.


상담사는

이미 엄마로부터 내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잠깐 나를 훑어보더니

첫 질문으로 곧장 내 아킬레스건을 밟았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시작된 한 문장으로,

이 오래된 게임을 끝내려 했다.


나는 바닥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그냥 울었다.


어른 울음이 아니라,

애가 터질 때 나는 울음.


숨이 넘어가고

말이 엉키고

방 안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절규했다.


“저 이해해 달라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어차피 몰라요.

겪어본 사람만 아는 거잖아요.”


상담사는

내가 눈을 들지 못한 채

말을 쏟아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엄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 아이는

그 나이에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일을

혼자 버텼던 거예요.”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나는 말했다.


“오늘 한 건 심리상담이 아니라,

법정에서 판사가 엄마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 같았어요.”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다시 어른이 되어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내 나이는

분명 30대 초반이었지만.



2. 유학 시절, 쓰레기통 뒤편


유학 시절 묵었던 하숙집 뒤편엔

오래된 쓰레기통들이 줄지어 있었다.


밤마다,

작은 주인들 두 마리가 나타났다.


처음엔 무서웠다.


근데 며칠 지나자

내가 침입자 같았다.


그들은

밤과 쓰레기와 어둠을

원래부터 자기 것처럼 썼다.


나는 그저

낯선 애였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았다.


말도 없고

경계도 없고

심지어 도망가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나는 점차

그들이 없으면 걱정될 정도로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게

당연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평온이었다.


나는 그 한쌍에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미안, 방해 안 할게.”


아무도 듣지 않았고,

아무 의미도 없었지만


그 말이

그날의 나는

조금 괜찮아지게 했다.



3. 지금, 이 숲에서


나는 지금

또 숲에 있다.


다리가 풀리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순간을 지나

겨우 호흡이 돌아왔다.


여긴

말이 없고

설명도 없고

결론도 없다.


그래서

살 것 같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이해하려는 것도

극복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을 뜨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만으로

오늘은

조금 기적이다.


그리고

그 생각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