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연결

Quiet Connection

by NickA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보다 혼자가 편했다.


편해서가 아니라,

안전해서.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무심하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그냥… 난 사람이 싫어.”


사실, 내가 제일 잘 안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작은 상처 하나로도

세상이 뒤집혀버리는 사람이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의견이 다르면

누가 맞는지를 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싸움 끝에

내가 얻는 건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친구는 많지 않다.

그 소수는

지금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산다.


우리는 가끔 연락한다.


영상통화 몇 분.

짧은 안부.

그리고 늘 비슷한 마무리.


“너도 살아.

나도 살아.”


서로 안 맞는 부분도 있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똑같이 까다로운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각자의 시기에 만났다.


10대의 친구들,

20대의 친구들.


유독 30대에는

없다.



나는 안다.

평소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걸.


하지만

정말 큰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도와줄 거라는 것도.


그게 우정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냥

운명처럼 남은 연결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마음속에 감춘 구멍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대신, 한강.

카페.

밥.

클럽.


클럽은 유흥이었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했다.


지금도 그렇다.


사람은 각자의 결핍을 들추는 게 어렵다.

왜냐면

열어보면

별게 아닌 해결책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시절,

나는 아르바이트로 영어 과외를 했다.


10살짜리 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냥 영어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바람이 전부였다.


과외 첫날,

나는 부모님과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이를 유학 보내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내 유학생활의 서러움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어머님, 지금은

이 아이가 사랑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1-2년 정도 가르쳤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이 아이를 지킨다고 믿었다.


아주 조그만 방식으로.


그리고 동시에,

내 안의 결핍 하나도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주저 없이.

두려움 없이.


그때 알았다.


나는 이 아이를

영어를 가르친 게 아니라,


말하는 자신을 믿도록 만들어준 것이라고.


그래서,

그 아이가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을 즈음,


나는 선생님으로 남는 것을 멈췄다.


작별을 말한 것도 아니고,

교훈을 남긴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아이의 기억 속에만 조용히 자리하고


나는 사라졌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순간에

끝나는 것임을

그때 처음 배웠다.



나는 군대에 가서도

너구리를 봤다.


이번엔 밤도 아니고,

은밀함도 아니었다.


낮에,

대놓고 짬통을 뒤지고 있었다.


살짝 충격이었다.


얘는 얼마나 그런 삶을 살았을까 싶은 만큼,

너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동물은 털빨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애완동물도 털이 젖으면

그렇게 초라하잖나.


이 녀석은

물이 아니라

기름진 음식물 쓰레기에 젖어

털이 떡이 되어 있었다.


그냥…

더러웠다.


너구리보다는

너무 많이 먹은

들쥐 같았다.


근데

항상 혼자였다.


숨어 다니지도 않았다.


그냥

당당하게 걸었다.


그때 알았다.


이 녀석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라는 걸.


그게 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가장 안전했기 때문에.


생존에는

체면도 미학도 없다.


그저

살아남으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