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Connection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보다 혼자가 편했다.
편해서가 아니라,
안전해서.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무심하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그냥… 난 사람이 싫어.”
사실, 내가 제일 잘 안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작은 상처 하나로도
세상이 뒤집혀버리는 사람이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의견이 다르면
누가 맞는지를 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싸움 끝에
내가 얻는 건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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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많지 않다.
그 소수는
지금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산다.
우리는 가끔 연락한다.
영상통화 몇 분.
짧은 안부.
그리고 늘 비슷한 마무리.
“너도 살아.
나도 살아.”
서로 안 맞는 부분도 있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똑같이 까다로운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각자의 시기에 만났다.
10대의 친구들,
20대의 친구들.
유독 30대에는
없다.
⸻
나는 안다.
평소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걸.
하지만
정말 큰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도와줄 거라는 것도.
그게 우정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냥
운명처럼 남은 연결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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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속에 감춘 구멍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대신, 한강.
카페.
밥.
클럽.
클럽은 유흥이었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했다.
지금도 그렇다.
사람은 각자의 결핍을 들추는 게 어렵다.
왜냐면
열어보면
별게 아닌 해결책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
어느 시절,
나는 아르바이트로 영어 과외를 했다.
10살짜리 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냥 영어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바람이 전부였다.
과외 첫날,
나는 부모님과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이를 유학 보내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내 유학생활의 서러움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어머님, 지금은
이 아이가 사랑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1-2년 정도 가르쳤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이 아이를 지킨다고 믿었다.
아주 조그만 방식으로.
그리고 동시에,
내 안의 결핍 하나도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주저 없이.
두려움 없이.
그때 알았다.
나는 이 아이를
영어를 가르친 게 아니라,
말하는 자신을 믿도록 만들어준 것이라고.
그래서,
그 아이가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을 즈음,
나는 선생님으로 남는 것을 멈췄다.
작별을 말한 것도 아니고,
교훈을 남긴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아이의 기억 속에만 조용히 자리하고
나는 사라졌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순간에
끝나는 것임을
그때 처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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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대에 가서도
너구리를 봤다.
이번엔 밤도 아니고,
은밀함도 아니었다.
낮에,
대놓고 짬통을 뒤지고 있었다.
살짝 충격이었다.
얘는 얼마나 그런 삶을 살았을까 싶은 만큼,
너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동물은 털빨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애완동물도 털이 젖으면
그렇게 초라하잖나.
이 녀석은
물이 아니라
기름진 음식물 쓰레기에 젖어
털이 떡이 되어 있었다.
그냥…
더러웠다.
너구리보다는
너무 많이 먹은
들쥐 같았다.
근데
항상 혼자였다.
숨어 다니지도 않았다.
그냥
당당하게 걸었다.
그때 알았다.
이 녀석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라는 걸.
그게 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가장 안전했기 때문에.
생존에는
체면도 미학도 없다.
그저
살아남으면 되는 거다.